안녕하세요 te verde입니다. 어허허ㅓ허허허ㅓ허허 제가 반년가까이 글을 안썼네요. 모두 돌을 던져주시긔...

    오늘은 케케묵은 백화점들의 부동산 투자에 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해용. 이번에 특집이라고 적은 이유는 이번호는 메코형과 제가 콜라보로 진행하기 때문이죠. 2편은 메코형이 올려줄겁니당. 저는 앞의 내용들을 커버하고 메코형이 현안을 다룰거에요 잇힝.

  저번에 영등포 백화점 전쟁 을 많은 분들이 즐겁게 읽어주신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이번편도 재밌는 글이 되었으면 하네요. 그러면 시작해보겠습니다.


1. 백화점은 무엇으로 사는가

    다들 학창시절에 읽었을 러시아의 대게이 대문호 톨스토이의 작품이 있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여기서 결론은 '사람은 사랑으로 인해 살아간다' 였습니다. (스포일러 ㅈㅅ...) 그렇다면 백화점은 무엇으로 살까요?

당연히 물건팔아 먹고살지 무슨 헛소리를 하려고..

    아 아니... 드립치려는게 맞긴 한데;;;; 물건팔아 먹고산다는건 좀 다시 생각을 해보세여 고갱님. 대한민국에서 백화점이 그동안 물건만 팔아서 돈을 벌었을까요? ㄴㄴ 한국 백화점그룹이 돈을 버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으요. 


1. 백화점 공간을 임대해 주면서 버는 수수료

 그리고....

2. 부동산 이 있습니다.


< ㅇㅇ 그러하다>


    눈치가 보통 이하더라도 아시겠죠? 지난 수십년간 우리나라 부동산 가격은 꾸준히 올라갔죠. 특히 백화점들은 건물을 짓기위해 넓은 면적, 금싸라기 땅들에 돈을 부어놨습니다. 그리고 그 부동산들은 가치가 어마어마하게 올라갔죵. 롯데백화점 명동점을 판다고 생각을 해보세요. 


 2011년, 12년 명동의 땅값을 볼까요. 


    저기서 중구 충무로라고 써져있는데도 다 우리가 명동이라고 부르는 곳입니다. 그러고나면 다 명동이라는 결론이 나죠. 고로 12년 기준으로 상업용지에서 제일 비싼곳은 강남? ㄴㄴ 명동이에요.  이런 명동에서도 노른자에 위치해 있는 백화점이 롯데백화점 본점입니다. 


     게다가 롯데 본점은 1979년 개장 후 100일만에 누적 방문자 1천만명을 돌파, 1980년 이후로 대한민국에서 단 한번도 백화점 매출1위를 놓쳐본적이 없는 백화점계의 절대강자입니다. 매출액을 잠깐 볼까요. 1999년 한국 백화점사상 최초로 연 1조원 매출을 돌파하여 현재는 1조 6천억원 가량의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다른 지점은 다 매출이 까져도 롯데 본점은 거의 매년 매출이 향상되었죠.


    이런 롯데백화점 본점? 쌩으로 수조원을 부어도 살 수 있을까 말까 할걸요? 이런 매물이 있어야지 사던말던 하지. 백화점 주변가는 항상 도시의 중심지로 성장하게 되어있습니다. 결국 백화점은 어마어마한 자산가치상승을 덤으로 얻게 되지요.


 

2. 하지만 땅을 안가져도 장사는 할 수 있나니

    그러면 땅 안사면 백화점 못할까요? ㄴㄴ 아니죠. 땅을 빌리면 되요. 다시 말하지만 우리나라는 지난 수십년동안 지속적으로 개발을 해왔죠. 이 말은 새로운 도시들도 계속 생겼다는 것이고, 기존 도시들도 확장을 거듭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도시계획은 누가하죠? 그러쳐. 국가. 가버먼트. 정부. 거깁니다 거기. 그런데 정부도 무작정 땅을 홀라당 팔 수는 없거든요. 고로 정부 또는 지방정부가 도시계획을 세울 때 상업용지(특히 백화점예정지) 등으로 내놓는 곳을 임차하면 되요. 아니면 그냥 자산가 또는 종교단체한테 20년씩 장기임대해서 건물을 짓고 영업을 하면 되죠.

    그리고 백화점이 새로운 지점을 내기 위해서는 부지 매입비 또는 리스비, 건축비 등이 필요해요. 그런고로 백화점들은 부동산의 비중을 과하게 늘릴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현금이 필요하면 매각을 해야 하죠.


    이러한 배경 속에서 신세계 그룹이 성장해 올 수 있었습니다. 신세계는 91년 삼성에서 계열분리가 시작되면서부터 백화점, 마트 매출을 제외하고는 큰 현금흐름이 발생할 캐시카우가 없었어요. 롯데같은 경우는 신격호 회장이 꽉 잡은채로 모든 계열사를 굴렸으니 어디서든지 융통이 쉬웠지요. 따라서 신세계는 항상 롯데보다 총알이 딸려서 화끈하게 막 사대고 그럴수가 없었어요. 


    그러다보니 


95년 신세계 광주점 : 금호그룹으로부터 터미널부지 20년 장기임대

97년 신세계 인천점 : 인천시로부터 터미널부지 20년 장기임대

2000년 신세계 강남점 : (주)센트럴시티[각주:1]로부터 20년 장기임대

2010년 신세계 충청점 : 천안버스터미널 부지에 (주)아라리오로부터 장기임대

2012년 신세계 의정부점 : 의정부역 부지에 민자역사개발 30년 장기임대

<스타워즈 돋네....>

내 땅이 없ㅋ엉ㅋ

   2000년 이전에 이미 가지고 있던 마산점, 본점을 제외하고는 센텀시티, 경기점만이 자사 소유일 뿐, 전부 다 건물까지 임차한 상황입니다. 롯데는 37개 점포 중에서 오직 다섯개만 임대하고 있지요... 부동산 재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세계는 이렇게 땅을 빌려서 장사를 잘 해옵니다. 업계 2-3위권에서 현대백화점과 항상 엎치락 뒤치락했지요.
    실은 아들한테 물려줄 이마트 장사할 땅 사느라 돈이 없엉(...)
(신세계 그룹은 이마트관련 회사들이 아들 정용진 부회장에게, 신세계백화점 관련 회사들은 딸 정유경 부사장에게 상속되도록 계획되어있습니다. 이마트가 매출규모가 훨씬 크거든요) 

3. 그리고 2012년 9월
    여기서 잠깐 우리나라 백화점들의 시장점유율 순위를 살펴볼까요. 
    전자공시에 들어가서 2012년 백화점 시장규모와 롯데, 신세계, 현대 3사의 백화점 시장점유율을 살펴보았습니다.

시장규모(총판매액)(억원)

시장점유율(%)

 총 시장규모

290,881억원

100% 

 롯데백화점

129.174억원

44.4%

 신세계백화점

60,246억원

20.7%

 현대백화점

55,558억원 

19.1% 

 3사 합계

244,978억원

84.2%

<총 판매액은 매출액과 다릅니다. 백화점에 입점한 모든 업체의 판매액을 더한겁니다>


    상위 3사를 합치면 시장의 84.2%가 됩니다. 대다내..... 롯데가 압도적 1위를 지키는 가운데 신세계와 현대가 뒤따르는 형상입니다. 이렇게 셋이서 나눠먹는거면 사이좋게 나눠먹을법도 하지만.... 안타깝게고 백화점이 들어설 수 있는 지역은 어느정도 정해져있습니다. 따라서 이 셋이서 피튀기게 싸우는 형국이지요. 만약 새로운 백화점 낼 자리가 생기면 눈에 불을 켜고 들어가고, 상대가 장사가 잘 되는 지역이라면 목숨걸고 비집고 들어갑니다.


    그렇다면 인천으로 잠시 눈을 돌려볼까요. 인천에는 총 다섯개의 백화점이 있습니다. 롯데백화점 인천점, 롯데백화점 부평점, 신세계백화점 인천점, 신세계백화점 인천공항점, 서경백화점(지역백화점).

    이 중 서경백화점은 백화점이라 보기엔 규모가 너무 영세하니 제외하고, 인천공항점은 일종의 출장소입니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인천시민들이 이용하는 백화점은 롯데인천, 롯데부평, 신세계 인천점 이렇게 세 곳입니다.


    여기서 롯데백화점 인천점은 2012년 매출이 2315억원, 부평점은 1276억원입니다. 반면에 신세계 인천점은 매출이 무려.......


7400억


<2012년 전국 백화점 매출순위>


    인천지역의 백화점 매출 약 1조 1천억 가운데 약 67%에 해당하는 매출을 혼자서 올리고 있는 엄청난 곳입니다. 전국구 규모죠. 전국매출 9위, 신세계 백화점 중 4위의 매출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신세계 백화점 매출중 15%를 차지함과 동시에 지난번 영등포 백화점 특집에 나왔던 현대백화점 목동점과 비슷한 규모죠.
    신세계가 인천에서 잘나가게 된 계기는 90년대 초 영등포에서 롯데한테 쳐발리고 교통에 '가까운'게 아니라 아예 '붙어있어야' 한다는 점을 깨달으면서 터미널을 적극공략한 결과입니다. 

그런데 그거 이제 롯데백화점 꺼

    망해쓰요. 

    다들 아실텝니다. 전임 인천시장 안상수(전 국회의원 안상수랑은 다른 안상수입니다. 안상수가 둘이여...)가 인천시를 4조 5천억 가량의 빚더미에 (관련 공기업들 부채도 합치면 7조원) 올려놓고서 현 송영길 시장은 부채에 허덕이게 됩니다. 아시안게임을 때려치고 싶은데 그럴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시 소유의 각종 자산들을 매각하기 시작합니다. 인천버스터미널부지는 그 중 가장 자산가치가 높은 부동산이었죠.


    2012년, 인천시는 인천교통공사 소유 터미널부지를 매각선언하면서 신세계, 롯데, 현대 백화점에 접촉을 시도합니다. 그 중 현대백화점은 관심이 없어서 바로 철회, 신세계와 롯데에 접근하게 됩니다. 그런데 신세계가...

 '우린 6500억 아니면 안사 풉ㅋ' 이라고 생깠죠..  감정가가 8500억인 건물, 토지에다가 저런 깡을 부린 신세계의 패기. 


    무슨 깡으로 그랬냐구요? 당시 신세계 백화점은 한창 증축공사를 진행하면서, 새로 짓는 공간에 대해 20년간 장기임대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입니다. 백화점 바로 옆에 위치한 주차타워와 증축공간인 5천평 가량의 매장은 2031년까지는 죽이되나 밥이되나 신세계가 운영하게 되어있는 상황이었습니다. 1층부터 5층은 롯데백화점, 6층은 신세계백화점 이런건 말이 안되니 결국 인천시가 자기네들한테 팔던지, 매각을 포기하던지 할거라는 생각이었죠.

    그러나 인천지역 상권에서 근 20년간 물먹어온 롯데가[각주:2] 출동하면 어떻게 될까?


롯!!

 데!! 


<고만해 미친놈아>


롯데가 8천 751억으로 입찰. 그리고 낙찰 땅땅땅

   

 방심하던 신세계는 20년동안 백화점 열심히 키워서 롯데한테 헌납하게 생겼지 뭐에요. 롯데가 착한마음을 먹으면 곱게 월 12억의 임대료만 받겠지만, 롯데는 이미 거기 다 밀어버리고 롯데몰로 바꿔버릴 생각. 덕분에 신세계는 앉아서 매출의 15%를 잃어먹게 생겨쓰요 ㅋㅋㅋ


    실은 신세계는 인천점까지 매입할만한 여유가 없었습니다. 처음에 말했지만 신세계는 애초에 롯데백화점 매출의 절반도 안되는데다가 상속과정에서 계열분리로 떨어져나온 회사기에 여유현금도 적고, 부산의 센텀시티, 죽전민자역사, 의정부 민자역사등을 이미 계약한 터라 있던 현금도 바닥나고 있었거든요.


조잘조잘

     물론 신세계는 그 이후에 소송, 가처분소송 등으로 맞서싸웠지만 개쳐발리고... 대신 공정위가 독과점 방지 차원에서 일종의 조치를 취해주긴 했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세한 이야긴 다음편에서 메코형이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90년대 롯데에게 엿먹은 이후로 두 번째 빅엿을 먹은 신세계, 이 사건 이후에 신세계는 무리해서 투자자금을 끌어모아 서울 고속터미널에 있는 신세계 강남점 부지를 인수하게 됩니다. 신세계 백화점에서 유일하게 1조 매출을 넘기는, 신세계 백화점의 심장과도 같은 강남점도 비슷하게 롯데나 현대한테 뺏기면 그때는 진짜 혀깨물고 죽어야하는 상황이 생기니까요. 


세줄요약

- 백화점은 부동산도 중요하다

- 내가 우선순위라고 착각해서 방심하다간

- 모가지 날아가요<3


 이 글에 관심있었던 분은 제 이전글  건물에 관한 무언가3. 영등포 백화점 전쟁: 롯데 vs 신세계  

 서울의 공공건축들 1.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  서울의 공공건축들 2.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도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즐겁게 읽으셨다면 밑에 손가락 버튼도 꾹꾹 눌러주세용!


참고자료

http://dart.fss.or.kr/dsaf001/main.do?rcpNo=20130401002106

http://dart.fss.or.kr/dsaf001/main.do?rcpNo=20130401002279

http://dart.fss.or.kr/dsaf001/main.do?rcpNo=20130515001495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1041339831&sid=0104&nid=004&ltype=1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30416017014

http://m.mt.co.kr/new/view.html?no=2013041509571094858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3261142291&code=950201

http://news.einfomax.co.kr/news/articleView.html?idxno=55695

http://isloco.com/attach/121/836096.jpg

 

  1. 통일교 계열자금입니다 [본문으로]
  2. (롯데는 인천점을 늦게, 살짝 안좋은 위치에, 작은 규모로 내는바람에 인천상권에서 근 20년을 쳐발렸습니다) [본문으로]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안녕하세요 te verde 입니다.

저번엔 한강예술섬을 했으니, 오늘은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를 해보도록 할까요.

이전 글을 읽으시려면 서울의 공공건축들 1.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로 와주세요~

오세훈찡의 ‘놓칠 수 없어, 나의 대.권.’ + ‘명품환장人st’ 한 성격이 비벼져 만들어진 DDP (Dongdaemun Design Plaza - 이건 뭐 농약도 아니고...)  이 합쳐져 만들어진 알흠다운 프로젝트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시작하겠습니다.


1.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너는 누구니

2006년 9월. 동대문 운동장 공원화 계획이 수립됩니다. 말은 공원화였지만 현실은

 ‘디자인’  디자인 디자인 디자인.....

서울시의 드자이너 오세웨후운찡.

 ‘나으 대선을 위해선 큰 거 좀 해치워야 하는데^^’ 

+ ‘어머 유럽의 명품들은 한 벌에 저렇게 많이 남겨 먹는단 말이야?’ 

+‘동대문엔 의류상가들이 밀집해 있지’  

+ ‘동대문 운동장이 쓸모가 없네 ^^’ 

 =  그.. 그래!! 디자인!! 디자인 플라자가 좋겠다!!!

그리하여 2280억원 짜리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계획이 수립되었습니다.  저 프로세스는 농담이 아님. 

설계는 유명 건축가를 서울시가 초청하는 방식인 지명현상설계. 

국내 건축가는 최문규, 유걸, 승효상, 조성룡,  해외 건축가는 자하 하디드, FOA, MVRDV, 스티븐 홀이 초청되었습니다. 총 8팀이 벌이는 설계경쟁 잇힝.

 그 중에서 당선작은 2004년 프리츠커 상 수상에 빛나는 이라크게 영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환유의 풍경’ 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현상설계에 참여한 대부분의 건축가들이 동대문운동장의 역사성, 또는 300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동대문(흥인지문)과의 연계성을 살려낸 것에 비해, 자하 하디드는... 

없엉 

자하 하디드의 한국 경험은 ‘18년 전에 한국 사찰 잠깐 봄 ㅇㅇ’  + 서울시의 부실한 자료제공

덕분에, 자하 하디드의 디자인은 


‘동대문 운동장이었던 것을 드러내는 시설은 전광판 두 개 정도면 됨 ^^’

‘흥인지문? 먹는건가요?’ 

‘난 한국의 정원과 자연을 사랑함 ^^’  

이라는 결과를 빚어냈긔, 결국 동대문이라는 곳의 역사성과 고유성은 개나 주는 디자인을 툭… 아 시바... 심지어 운동장에서 2년동안 풍물시장을 운영하던 예전 청계천 상인들은 상권이 형성 되기도 전에 다시 쫒겨났어요. (뭐 자하 하디드의 해체주의적인 특성을 생각하면 어차피 이것들을 알았어도 별 다른 결과물은 없었을 거 같기도 하고...)

    그리고 자하하디드의 아스트랄한 설계능력 덕분에 시공비는 2011년까지 4200억으로 수직상승  예산을 두배로 불려야 겨우 건축이 가능한 놀라운 설계능력. 공모처에서 밀히 말하자면 조건으로 제시한 예산에 맞춰서 설계하는 것도 능력입니다. 무제한 시공비가 아니었잖아...

     그런데 현상공모 상금 3억, 실시설계비 70억. 그 이후에 자하 하디드의 스탭들이 한국에 체류하면서 쓴 돈들까지 다 합치면 모두 100억원이 넘는 돈이 자하 하디드의 손으로 들어갑니다. 짜..짱이긔. 외국 명품병 걸린 덕분이라 아니할 수 없다... 2등작인 조성룡 건축가의 설계가 훨씬 주변과 어우러졌지만... 세훈찡을 튀는거슬 원했긔

2. 지뢰밭 아. 아니, 유물밭 동대문 운동장 터

    2007년에 동대문 운동장을 헐어내고 기초공사를 위해서 계속 땅을 파던 2008년, 어마어마한 규모의 유적지가 동대문 운동장 터에서 발견됩니다. 

 일제시대 기와도로부터 시작해서, 

조선 후기 훈련도감의 일부 기관이던 하도감, 병영, 군수공방, 

조선 중기, 전기의 군사기구, 어영청 유적지 등. 거대 도시 한가운데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적 없는 거대한 규모의 군사유적들이 발굴되었지요.  

+ 270여미터에 이르는 동대문 성벽, 성벽의 수문이던 이간수문,  성벽의 부속 방어시설이던 치성 등등이 발굴됩니다. 

    이 정도 유적이면 로비만 잘하면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도 가능할 수준이죠. 한 국가의 수도 한복판에서 이렇게 큰 규모의 유적이 새로 발견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권을 향한 내 마음엔 브레이크가 없다네’

조까

놓칠 수 없어 나의 대선.

    원래 체육시설 등의 공원조성부지였던 곳에서 마침 성벽이 나왔기에 성벽의 일부는 복원하여 살리고, 이름을 ‘동대문 역사문화공원 & 디자인 플라자’로 변경. 그리고 건물이 올라가기로 예정된 하도감 부지는 그냥 공사 강행.

    거기서 발굴된 유물들을 이전, 보관했다고는 하지만, 유네스코에서 크게 강조하는 부분이 ‘장소성’ 이란 점을 생각하면 뭐... 물건너갔지요. 서울성곽을 모두 뭉뚱그려서 유네스코에 올릴 경우 일부분 포함될 수는 있습니다.

원래 이러던걸

요정도 바꿈. 건물은 걍 두고 운동장만 싹.

세훈찡의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프로젝트의 부제는 ‘과거와의 단절’ 이었나봐용.

3. 속 빈 새둥지.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는 2013년 하반기 완공,  2014년 중 개관을 예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속을 뭐로 채워야 할지 도대체 모르겠슴.

    일단 오세훈 찡은 2009년부터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의 안을 무엇으로 채울 지 의뢰를 해 놓았다고 합니다. 자세한 결과물이 무엇이었는 지는 알 수 없지만 ‘디자인 디자인’ 돋는 컨텐츠였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긔. 그러나 상큼한 우리의 박시장께오선

‘전면 백지화’

시민참여형 공간으로 재구성하고자 하는 박원순 시장의 의견으로 인해서 시민제안 등으로 다시 컨텐츠를 짜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뭐... 세부진행 계획도 잘 없는듯. DDP 홈페이지를 가보겠습니다.


<에... 그러니까 우리 계획은 무계획이 계획입니다>

은 좀 뻥이고 7월자 기사를 참조하면 ‘함께 만들고 누리는 디자인’을 컨셉으로 한답디다. 1층엔 도서관, 시민전시관을 2층에는 동대문 패션과 세계 최신 기술을 소개하는 ‘디자인 아카이브즈’ 3층엔 사회적 기업 지원과 산학현렵을 하는 ‘비지니스 플랫폼’ + 한옥, 한식, 한류 등 ‘서울다움’을 알리는 공간. 4층엔 청소년과 디자이너가 함께하는 창작체험공간. 그리고 지하에는 글로벌 기업과의 콜라보 공간, 신진 디자이너 전시공간이 들어서도록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결국. 잡탕이라는 거죠.    

    의류상가와 디자이너가 밀집되어있는 동대문의 특성을 고려하면, 천 명도 넘는 국내 디자이너들이 세계 트렌드와 기술들을 배울 수 있는 교육공간, 그리고 그와 관련한 비즈니스 플랫폼이 위치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근데 애초에 오세훈 전 시장이 DDP를 설립할 때도 명확한 목적이 없었다는 것이 함정. 무슨 패션계의 퐁피두 센터를 만들겠다는 목적이 있던것도 아니고. 

    오세훈 시장이 DDP를 추진하면서 쏟아낸 발언들만 보더라도 건물을 짓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가 없습니다. 건물에서 ‘무엇’을 하겠다기 보다는, ‘이 건물만 지으면 서울도 디자인 도시’  이런 느낌?

    결국 유에포와 같은 4200억짜리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는 오늘도 서울시의 행정과 서울시의 황금같은 땅덩어리를 유유히 유영하며 사람들의 정신줄을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 날려버리고 있습니다.

'서울시의 개념을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 아핳하하핳하' 음... 오세훈 전 시장이랑 닮은거 같기도 하고 그러네요.

+첨언. 현재 동대문에 가장 시급한 문제는 주차장 문제입니다. 여기에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오픈 이후에는 더더욱 아름다운 교통체증이 발생하겠지요. ㅈ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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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공공건축들 1.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건축에 관한 무언가 4. 서울의 궁궐들 5궁 (上)

건축에 관한 무언가 5. 서울의 궁궐들 5궁 (中)

건축에 관한 무언가 6. 서울의 궁궐들 5궁 (下)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MECO


지난 6월 11일,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주디스/잭 할버스탐(Judith "Jack" Halberstam) 교수의 강연을 다녀왔습니다.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USC(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 여담이지만, 알비노 호랑이와 대화하다가 제가 그간 ‘남가주’를 South Carolina로 잘못 알고 있다는 점을 깨달아서 멘붕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네, 이 곳이 바로 그 남가주 대학입니다)의 페미니즘/영문학 교수입니다. 위키에서는 톰보이(남성적 매력을 지닌 털털한 여성)와 여성의 남성성(female masculinity)을 주로 연구한 사람이라고 하는군요.


사생활 측면에서 할버스탐은 레즈비언이며, 본인을 가리킬 때 Jack이라는 남성적 이름을 사용합니다.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떠있는 키노트에는 "Jack Halberstam, 2012"라고 적혀 있었지요. 그/녀의 연구는 아마도 다분히 자기경험적 측면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겠죠. 실제 소위 말하는 ‘부치’ 상이기도 하고요. 잘 생기셨더라고요.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이 아마도 물어보실 질문일, 할버스탐은 누구인가: 사실 여기에 답하기에 제가 적합한 사람은 아닙니다. 페미니스트로 이해되고, 퀴어 이론(Queer Theory) 하시는 분들도 이 분의 글을 읽기는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녀의 글을 한 번 제대로 읽어본 적도 없으니까요. 예전에 한 번 2005년 Social Text 紙의 서문을 읽었던 것 같긴 한데 제대로 기억나는 내용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런 글을 적는 이유는, 할버스탐 교수의 강연에 대해 국내에서 적힌 글이 이 정도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링크를 눌러보시면 알겠지만, 정말 한심할 정도의 독해이지요. 마돈나가 여성성의 극화 강조라면 레이디 가가가 여성성의 해체를 반영한다는 것까진 그렇다고 하겠습니다만, ‘심지어 동성애 지지’라던가, 남성을 찬미하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는 인식 등에서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우주를 느낍니다.







그러므로 강연을 들은 사람의 의무감에 정리를 합니다만, 제가 페미니즘을 공부해본 적이 있는 게 아니라서 깊은 이해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저 강연 내용을 최대한 성실하게 전달하는 정도의 노력이 한계가 아닌가, 그리고 그것 또한 나름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할 뿐입니다.

 


 


금번 할버스탐 교수 등의 소위 ‘핫한 페미니스트’들을 한국에 불러모은 것은 한국영미문학페미니즘학회의 2012년 컨퍼런스였습니다.



할버스탐에 한정하여 들은 바에 따르면 이 김에 연대와 이대에서도 강연을 하였다는데, 신촌에서는 애초에 강연 제목이 곧 나올 그녀의 신간인 <Gaga Feminism>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반면 서울대 강연의 제목인 ‘Queer Art of Failure’는 2011년 책의 이름이었죠. (하지만 강연 내용은 큰 차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선 강연 초반부에 failure에 대한 언급이 조금 있었습니다. 시험으로 채점하는 전통적 대학교육은 시험을 잘 보는 학생을 만들 뿐이며, 결국 조직화(Organization)는 그 자체가 목적달성에 저해되는 요소가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자신이 관심 있는 것은 이런 전통적 제도/대학에 포섭되지 못한 소위 ‘실패’들이며, 고위 추상화를 거치지 않고 의미의 더 낮은 층위를 다루는 것(lower register of meaning)이 Low Theory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듯 합니다만, 저는 여전히 Low Theory와 Queer Art of Failure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Low Theory에 대해 관심이 있으신 분은 영국의 문화연구이론가 Stewart Paul을 참조하면 될 것 같습니다. 고차원적이고 추상화된 ‘high theory’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고, High와 Low 둘 다 하지만, Low Theory라 함은 복잡한 것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는 추상적인 이야기를 저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할버스탐이 말하는 바에 따르면 라캉, 데리다와는 다르게 이건 여전히 이론이며, 자신은 이론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이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만, 그래서 그게 뭐야?!라는 질문을 던지는 즉물적인 저에겐 충분한 답이 되지는 못하더라고요.


랑시에의 “Ignorant Schoolmaster”를 인용하여 (지식의 주입이 아닌 함께 연구하고 공부한다는 지평을 연 18세기의 가상적인 교수와 교수법을 통해 학문 연구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한 책) 지적 해방을 위한 3가지 요건을 설명하던 중 1. 모든 사람은 똑같이 지적이다(All individuals are equally intellectual)는 부분에서, “not really…?” 로 모두를 터뜨리긴 했습니다만, 강연 제목과 아예 벗어나는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 살짝 언급한 <Queer Art of Failure>에 관한 부분에서는 기억나는 것이 이 정도 밖엔 없네요.

 




아무튼, 이런 이야기를 초반에 잠깐 하고서 이야기는 결국 신간 <가가 페미니즘(Gaga Feminism)>으로 넘어가게 되었는데요. 여기에서 결국 할버스탐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정상성의 종말(the end of normal)과 가족의 해체입니다.


이 과정에서 그녀가 도입하는 사례 – 그리고 누가 보아도, 할버스탐의 취향에 들어맞는 사례 – 가 몇 개 있습니다. 우선 자궁을 제거하지 않은 FTM 트랜스젠더 남성(여성 성염색체를 지녔으나 남성으로 성전환)이 출산한 것. 이것은 결국 전통적인 가정 형태와는 지독하게도 이질적인 ‘남성의 출산’이 되지요.





어느새 정상상태가 되어버린 ‘이혼’도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실 겁니다. 할버스탐은 심지어 ‘국제적’ 트렌드라고까지 표현합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51%의 가정이 이혼을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비율은 올라가고 있고요. 할버스탐은 이를 지적하면서 결혼의 성공률이 50% 이하로 떨어지게 되면 이제는 이혼이 새로운 정상이 되는 거죠(as soon as the success rate of the marriage hits 50% and less, divorce is the new norm)”라고 합니다. 이제 한 명의 상대와 성관계를 가지는 사람은 오히려 더 흔하지 않게 된 것이고, 정상적이지 않게 된 것이지요.







예전에는 ‘평생을 함께 한’다고 한다면 20여년 정도의 결혼생활을 상정하였지만, 이제 25세 젊은이들이 평생을 약속한다면 이는 평균수명의 상승으로 최소 60년 정도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것이 지켜질 수 있을 것인가? 할버스탐은 다시 한 번 숫자를 지적합니다. 이미 절반 이상이 이혼을 하지 않냐고 말이지요. 그리고 이 비율은 올라가고 있고요.


생물학적 성과 사회적 성의 맥락에서 결혼제도의 위기는 게이/퀴어 인구가 결혼을 요구하는 등으로부터 온다기보단, 오히려 이성애자들이 가장 크게 겪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성공적인 결혼생활은 줄고만 있으며, 남자들은 정액을 팔고, 여자들은 결혼 대신 스스로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으니까요.


그러면서 심지어 할버스탐은 남자와 여자는 근본적으로 너무 다른 것을 원하고, 남성잡지와 여성잡지를 보면 이게 정말 같은 사람이기나 한가 싶고, 그러다 보니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류의 책이 횡행하며, 서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노력과 통역이 필요하다고들 하는데 어떻게 보면 서로 너무도 다른 종이라서 처음부터 맞지 않은(incompatible) 것이란 결론을 낼 수도 있잖아요? 라고도 합니다. ㅋㅋㅋㅋ


요즘 젊은 여자들이 보는 책을 보면 어떻게 남자를 찾는지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면서, 게이들만 어떻게 사랑하는 상대를 찾는지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니란 이야기도 하지요. “게이들이 보기에 이성애자들은 상대를 다들 잘만 찾는 것 같지만, 사실 이성애자들도 엄청 어려움을 겪고 있는 셈이지요. 심지어 이성애자들에겐 쉽게 상대를 낚을 수 있는 게이바도 없어요!”




 

일단 이런 식으로 ‘정상’이 의미를 가지지 못하며 이성애정상성(Heteronormativity)이 버팀목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가장 쇼킹한 사실은, 이성애자들이 결혼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꾸고 있을 때야 동성애자들에게 결혼이 하나의 선택지로 제시된다는 점입니다. 할버스탐은 “잊어버리세요. 결혼 그거, 얼마나 비싼데요. 그리고 이혼이라도 할라치면 더 비싸요.” 라고 합니다만.


실제 많은 이성애자들이 이런 사고 끝에 단순 동거를 택하고, 이런 결혼제도의 취약성이 드러난 시점에 뜬금없이 미국은 게이/레즈비언들에게 결혼제도를 제시하지요. 샌프란시스코가 잠깐 동성결혼을 허용했을 때 이는 엄청난 경제적인 붐을 불러왔다고 합니다. 할버스탐의 분석은 결혼이 법적, 종교적인 문제라기보단 경제적인 문제라는 것인데, 결국 이러한 동성결혼 이야기는 결국 국가가 동성애자들에게 ‘결혼을 파는(selling the marriage)’ 과정이란 점입니다. “그리고 게이/레즈비언들은 '네 제발요. 우리도 이 대단한 제도의 혜택을 보고 싶어요. 지금까지 그러지 못했다는 게 너무 슬퍼요'라고 하는데, 정작 10년 뒤에, 제 말을 믿으세요, 게이 이혼이 새로운 문제가 될 겁니다.”




 

그리고 다시 아까 이야기했던 트랜스젠더 아버지의 임신 이야기로 돌아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가족들에게 ‘정상’적으로 아이를 제공하기 위한 생식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이러한 ‘비정상’이 가능해졌다는 것부터 우선 할버스탐의 구미를 당겼고, 이는 다른 사례들과 더불어 정상성이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증을 주게 됩니다.


레즈비언 엄마들의 사례가 있죠. 결혼을 통해서만 아이가 만들어지던 시대는 지났고, 이제 남자들은 인터넷에서 정액을 팔고 여자들은 남자가 누구인지 상관하지 않고 그 정액을 사서 수정을 합니다. (이렇게 표현하고 나니 정말 징그러울 정도로 물화되었네요. 그리고 한 남자의 정액으로 수정된 아이들을 일컫는 신조어로 twibling=twins+siblings이 있다고 합니다. 좀 찾아보니 이들이 서로를 찾아다니는 과정이 리얼리티 쇼 등으로 새롭게 조명을 받는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레즈비언 가정에서도 아이를 가지고 싶은 경우 이런 일들이 있고, 그렇게 생긴 가정도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런 레즈비언 엄마들의 가정은 상당히 긍정적이지요. 할버스탐은 우선 보통 가정에서 엄마의 역할은 매우 중요한데, 심지어 엄마가 둘이니 얼마나 좋을까? 라고 농담처럼 제시하지만, 실제로 미국에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성폭력이나 정서적 측면에서 매우 긍정적인 가정이 레즈비언 엄마들의 가정이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대중의 정서에도 상당히 잘 들어맞아 쉽게 받아들여진 측면이 있죠. (그럼에도 모유 수유를 하는 부치 엄마의 사진은 발칙하다고들 합니다)


 

 

 

이런 사례들은 상당히 재미있었지만, 결론을 내릴 시점에서 할버스탐은 살짝 서두르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신간 Gaga Feminism의 한 챕터로 강의를 했다고 하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요) 이와 같은 정상성의 붕괴 시대에 대안은 무엇인가? 아니, 대안이라는 것이 존재는 하나?


물론 이토록 거대한 사회적 격변에 있어 한 레즈비언 학자에게 답을 요구하는 것이 무리라는 관점도 있겠습니다만. 결국 사회적 성역할로부터 자유로운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들(Children born and raised under Gender-queer parenting)에게 미래가 있다는 정도의 원론적인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Cisgendered”라는 신조어도 언급합니다. 이제 아무도 ‘정상’적이지 못하며, 당신의 몸과 사회적 성별이 일치한다면 당신은 성동일적(cisgendered)인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성다변적(gender-variant)이란 것이지요. 요즘의 미국 퀴어 커뮤니티에서는 이와 같은 언급이 횡행한다고들 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대한민국 퀴어 커뮤니티에 흔한 ‘일반(一般)’과 ‘이반(離般)’ 용어의 정제에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지 않나, 혹은 저 용어들의 탈맥락화가 이루어질 시점이 되었다 정도로 치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가가' 페미니즘인가? 버클리에서 강연할 때 나붙은 팜플렛에서는 할버스탐이 2008년 레이디 가가가 MTV에서 드랙을 하고 레이디 가가의 가상 남자친구인 것처럼 연기한 것에 충격을 받아 이론을 정립한 것처럼 나와 있습니다.





그럼에도 레이디 가가와의 연결지점은 여전히 분명하지 않죠. 할버스탐 교수 자신도 이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 듯합니다. 레이디 가가가 기괴한 모습으로 영감을 주었지만, 그녀는 하나의 상징에 불과할 뿐이라고. 결국은 이러한 정상성의 종말과 가족 체제의 붕괴에 대해 말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변명합니다.


정말로 똑똑하신 서리 님은 “할버스탐은 참 학문을 쉽게 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물론 전 그런 할버스탐도 잘 못 읽겠긔 ㅠㅠㅠ) 이는 질문과 답변에서 현장에 자리한 많은 변두리-전통적-페미니즘 학자들이 미국의 티 파티 등의 보수적이고 기독교적인 기치를 들고 가족제도를 ‘수호’하려 드는 움직임에 대해 코멘트를 요구했을 때, 할버스탐 교수의 답변에서 드러납니다.


“티 파티는 자극적이지만 그렇게 미국 사회에서 큰 지분을 차지하지는 못해요. 사실 가족제도의 위기는 벌써 왔고, 티 파티는 그 마지막 발악 정도일 뿐이지요.”


캘리포니아에 한정하여서는 그것이 실체적인 진실 그 자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대통령 선거판만 챙겨 본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해석할 수 있을지요. Homo Surplus의 필진 알비노 호랑이가 이에 대해서 할 말이 많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

 



아무튼 커밍아웃한 외국 퀴어 이론 학자(?)가 한국에서 강연을 하였고, 저는 다른 많은 퀴어 꿈나무들과 함께 가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왔다는 것으로도 참 의미 있다고 박수치고 싶은 경험입니다.


하지만 저와 같은 야매와 달리 제대로 칼을 갈아 학문을 하는 친구들이 하였던 한탄에 공감이 가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그 초청료라면 할버스탐의 저작을 세 권은 번역할 수 있었겠지요. 그리고 무엇이 더 필요한지에 대해 제가 감히 판단하지는 않겠습니다만, 할버스탐의 초청이 게이/레즈비언 커뮤니티에서 크게 회자되지도 못하고 이번과 같이 ‘영문학자들만의 리그’로 끝나고 만 것이 아쉽다면 저는 그 한탄에 조금은 더 공감을 하는 쪽일까요.


물론 한편으로는 지적 허영의 발로로, 백날 읽기만 하였던 저자들이 직접 와서 자기 저작을 해명하는 것을 보고 듣는 체험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될 것인가 굳이 옹호하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우리에겐 그런 시각화와 동기부여가 여실히 필요하죠. 그리고 저는 이런 글을 결국에 써내고 있으니, 조금이나마 죄질이 가벼워지지 않을까요? ㅠㅠ


그리고 정말로 재미있었어요. 그/녀의 글을 읽는 것과는 별개로, 강연을 듣는 것은 말이지요. 시험도 덜 끝난 퀴어 꿈나무들을 동아리방에서 선동하여 갔을 때는 못 알아들으면 어쩌나 조금 떨었는데, 정작 강연이 시작하자 빵빵 터지며 정신 없이 몰입할 수 있어서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흔치 않게도, 제가 이성애자가 아니었기에 조금 더 즐길 수 있었던 경험이기도 합니다. 저는 고정관념을 넘어 생각하는 걸 잘 하지 못해서, 저에게 가상의 것일지라도 이성애정상성이 당연한 것이었다면 웃고 있으면서도 이 강연이 불편했을 것이거든요.

Posted by ME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