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CO


Disclaimer

Homo Surplus 일부 필진의 글은 Team Chatterbox의 공식 입장 내지는 일치된 견해를 반영하지 않습니다. (특히나 이 글은) 어디까지나 해당 글을 쓴 필진의 개인적 견해일 뿐이므로 문제제기는 그 필진에 대하여 해주실 것을 부탁 드립니다.




나른한 어제 오후였다. 적어도 한가로운 나의 트위터 타임라인에 그 글이 올라온 것은. 그리 길지 않은 글이므로 (기억나는) 그대로 옮겨보자면 “성적으로 왕성한 남성 동성애자가 HIV 감염에 취약한 건 사실”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불어닥친 토론의 소용돌이는 그야말로 광풍과도 같았다. 아, 그 토론의 맥락을 정리하고 내 의견 한 줄을 덧붙여 넣기 위해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믿고 싶다). 자신이 논리를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꽉 막힌 벽과도 같은 다수의 의견을 다시금 누군가의 언어로 번역하여 옮기는 행위란, 그 얼마나 많은 결락과 왜곡을 불러올 것이며, 또한 누군가에게 답답한 벽으로 다가갈 것인가. 그 이전에 정리를 하는 과정이 내 혈압을 보증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토론에서 등장한 전제 몇 가지를, 일반론이라는 당의정을 입혀 그 근간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보고자 한다.






제국 이태원(Itaewon Empire)이라 하는 건 물론, 식민군(Colonial Army)의 진주를 전제로 한 표현이다. 지금까지 이런 표현을 쓰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고, 아마 앞으로도 나 이외에는 없을 것이다.


조금 젊잖은 사람들은 이와 같은 표현을 하기도 한다. 식별가능한 퀴어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동성애자, 혹은 그 중에서도 게이들이 전체 퀴어 인구의 어젠다를 선점하였노라고. 그리고 그건 퀴어 인권운동마저 잠식하여 마치 게이들의 문제가 퀴어 전체의 문제로 둔갑하는 경우 또한 존재한다고. 어제의 토론은 나에게 전형적으로, 이런 경향성이 도드라진 사례로 다가왔다.


게이, 퀴어, 혹은 퀴어-프렌들리한 이성애자이고자 하는 독자들은 인터넷 세계의 변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심 궁금해할 것이다. 그래서 준비한, 개인 블로그에 쓰려 했던 글 두 개 정도를 갈아 넣은, MECO 식의 순도 높은 정황 설명.



토론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전제를 잘 정리하는 것일 터다.


우선 문제가 된 트윗은, “성적으로 왕성한 남성 동성애자가 HIV 감염에 취약한 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내가 처음 본 문제제기는 “성적으로 왕성한 남성 동성애자” 부분에 대한 것이었다. ‘남성 동성애자’와 ‘성적 왕성함’의 결부에 대한 불편함의 제기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뒤에서 따로 논한다.



그런데 사태가 요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이는 사실 인터넷 상에서 호모포비아와 게이들의(편의상, 이렇게 정의) 오랜 전쟁의 양상 때문인데, 호모포비아들은 “게이는 HIV에 취약하다, 그러므로 게이들은 더럽다/금지되어야 한다/바람직하지 않다/권장할 수 없다”와 같은 일련의 논리구조를 채택하고, 게이들은 이 전제를 흔들기 위해 많은 수단을 택한다.


논리적으로 저 짜증나는 명제를 분석해본다면 아마도 이렇게 될 것이다.



1. 게이들은 애널섹스를 많이 한다. 사실 애널섹스를 하는 사람들 중 절대다수는 게이이다.


2. 애널섹스는 HIV 감염에 취약한 섹스 방식이다.


3. HIV 감염에 취약한 섹스 방식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하다.


4. 그 이후의 여러 소모적인 매도들. 게이는 더럽다. 모두 감방에 가둬야 한다. 여자 맛을 못 봐서 그런다 등등.



4번 이후의 매도는 사실 사람 취급해 주기 힘든 애들이나 하는 소리일 것이다. 정작 문제는 3번에 있다. HIV 감염에 취약한 섹스 방식과, 그런 섹스 방식을 선호하는 사람들을 “HIV에 취약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다운그레이드해 보는 왜곡된 관점.


이 관점의 왜곡성을 지적하는 글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게이들의 반박은 1+2번에 치중해 있다. ‘게이는 HIV 감염에 취약하다’는 명제 자체에 불편함을 느끼고,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 것. 이를테면 이런 방식이다.


2번 명제에 관해, 애널섹스를 하는 사람만이 HIV에 감염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을 하게 된다. 그러나 대한에이즈예방협회는 보통의 성관계에 0.1-1% 정도의 HIV 감염률을, 그리고 애널섹스에 0.3-5% 정도의 감염률을 상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결국 포비아들의 논지는 약간 수정하여, HIV 감염률이 더 높은 섹스 방식과 그 섹스 방식을 선호하는 사람들을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은 유지하게 된다. 그러므로 논의의 방향은 자연스레 1번 명제로 가게 된다.


소위 말하는 “나는 게이지만 애널섹스를 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바로 그런 것. 어떠한 형태를 띠든 결국은 게이=애널섹스의 도식을 파괴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어제 또한 그랬다. 원래의 트윗은 성적으로 왕성한 남성 동성애자가 HIV 감염에 취약하다는 점을 지적하였으나, 여기서의 ‘성적으로 왕성한 남성 동성애자’ 부분에 생략된, 그들이 애널섹스를 더욱 자주 한다는, 그리고 섹스 과정에서 HIV 양성의 파트너를 만날 확률이 높다는 부분에 대한 반론이 있었다.


나 또한 게이=애널섹스의 도식을 100% 인정하지는 않는 편이지만[각주:1], 그와는 별개로 이 파괴에는 어떤 불순한 목적성이 존재한다. 1, 2번 명제와 3번 명제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하는데, 바로 1, 2번 명제는 HIV 감염 취약성을 논증하기 위한 중간다리에 가깝고, 3번 명제는 남성 동성애자가 HIV에 취약하기 때문에, 그들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일종의 잘못된 가치판단과 논리비약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의 결락과, 그를 지적하는 공격의 움직임은 당연히 3번 명제에 집중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1, 2번 명제에서 근본적인 불편함을 느끼는 일부 게이 및 ‘자칭’ 인권운동가들의 직관은 결국 게이와 HIV가 어떤 식으로든 결부되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각주:2]


굳이 HIV 감염인과 게이의 상관계수를 논하지 않더라도 – 그 와중에 ‘변인통제’와 같은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지만, 이는 넘어가고 – 개념적으로도 그렇다. 더 쉽고 취약한 논리적 맹점 대신, 통계의 맹점과 오류를 만들어가며 굳이 1, 2번 명제를 공격하는 것은 결국 1, 2번 명제 자체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바로, 동성애와 HIV의 연결고리.


이걸 깨려고 하는 것은 어떤 심리일까? 결국 이들에겐 HIV가 남의 문제,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이기 때문일 수밖에 없다. 논의 과정에서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HIV와 동성애자를 결부 짓지 말아야 할 어색한 논거의 각종 변주가. 그런데, 왜 HIV와 동성애자를 결부 짓는 것이 불편한가?[각주:3] 그 질문을 던진 사람은 없었고, 당연히 답도 없었다. 아니, 없지는 않았는데 꼰대들의 오독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쪽이 정확할 것이다. “그러니까 제가 에이즈포비아인 건 아니에요”라는 말도 많이 보았다. 그런데, 그게 에이즈포비아라고 밖엔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논리이기 때문이다. “게이는 싫지만, 그렇다고 제가 호모포비아인 건 아니에요.”




첨언하자면, 사회적 소수자가 모든 면에서 바람직하며 다른 소수자 인권에 민감해야 한다는 규범적 요청은 어떤 의미의 이중 잣대라고 생각한다. 소수자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선해서가 아니라는 나의 옛 주장들과 같은 취지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소수자가 자신의 인권보장을 요구하며 했던 주장과 논리모순, 자가당착에 빠지는 일은 적어도 없어야 한다. 소수자 사회의 사다리 걷어차기(Kicking away the ladders) 현상과도 같을 것이다. 자신들은 같은 취지의 주장으로 어느 정도의 입지를 확보한 후,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자신들이 당했던 억압논거로 찍어 누르는 것과 같은 일들 말이다.


또한 AIDS/HIV 문제가 게이의 문제가 아닐까? HIV 양성 감염인은, 게이와 전혀 다른 사람들일까? 심지어 이는 HIV 감염인들 사이에서도 존재하는 인식이라는 글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게이가 HIV에 감염되었다고 하여 게이가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은 HIV에 감염된 게이가 될 뿐이다. 그렇다고 그 사람의 인권을 박탈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시민권이 면탈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조금 더 특수한 형태의 사회적 보호가 필요해질 뿐이다.








많이 돌아왔다. 그래서 이는 제국 이태원 현상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동성애자/퀴어 인권운동 신(scene) 내부에 깊숙이 밀착되지 않은 내 입장에서, 적어도 겉으로 드러난 구호는 매우 즉물적이고 직관적이다. 즉물적이고 직관적인 구호는 정서적 공감을 통해 전파되고, 이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의 수와 뗄레야 뗄 수 없는 문제가 된다.[각주:4]


퀴어, 조금 더 대중적인 용어로는,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확보한 입지는 게이가 이뻐서, 레즈의 사고방식이 올바르기 때문에 주어진 것이 아니다. 결국은 사회가 소수자를 어떻게 포용하고, 그들이 상처받지 않고 사회 구성원으로 공존할 수 있을지 고민 끝에 찾은 타협점에 가깝다. 그 타협점이 보이는 협상력과 정치력이 결국은 다수를 차지하는 게이들에게 독점되는 현상이 분명 발생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일부 게이들의 설익은 사고방식이 많은 사람들에게 주류 퀴어 운동의 목소리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소위 말하는 퀴어-프렌들리한, ‘인권감수성’[각주:5]을 갖춘 이성애자들 또한 저 목소리를 전사하게 된다. 아웃팅 방지가 퀴어 인권운동의 알파요 오메가며, 거의 제1가치로 평가 받는 이런 현상, 혹은 게이들의 즉물적인 HIV와의 비결부 요구가 마치 인권적으로 선진적인 주장이기라도 한 양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과 공감을 얻어 전파되는 이런 현상들.


이 현상은 결국 즉물적인 게이 어젠다의 한계를 그대로 퀴어 커뮤니티의 문제로 전사한다. 게이 커뮤니티에서 존재할 수 있는 HIV 감염인에 대한 색안경은 그대로 퀴어들의 자가당착이 되며, 나이브하게도 통계자료와 해석방법에 대해 던진 엇나간 문제제기는 그대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너무도 크고 반복적이어서, 내부의 자정작용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혹은 다른 소수자들의 또한 시급한 이야기도 들리지 않는다.




내부의 자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항상 계도적이고 도덕적으로 완벽할 수는 없다. 평소 운동 신에 훈수를 두는 꼬장한 “올드 스쿨 게이”들이 아니꼬울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을 이기는 수단은 결국 더 철저한 논리가 되어야 한다. 말꼬리를 잡는 건 부끄럽고, 솔직히 뭘 말하는지 이해도 못하는 건 더 부끄러운 일이다. ‘위트’ ‘버튼’과 같은 기믹에 휘둘리지 좀 말고.


상대의 도덕적 미결이 나의 논리적 흠결을 감추어주지는 않는다는 것. 특히나, 들어야 할 사람이 상대방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일 때는 더더욱 말이다.




그보다도 중요한 것은, 결국 다른 퀴어들의 합리적이고 심층적인 문제제기를 묻어버리는 이런 답습이 업스트림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번 사태에 있어 개구리밥 님이 제시했던 여성의 성적 욕망과 같은 부분들. ‘성적으로 왕성한 남성 동성애자’라는 발언이 이를 위배했다고는 보지 않지만, 확실히 평소 배려가 결여된 부분이란 지적도 피할 수는 없다. 더욱 적극적으로 개구리밥 님이 제시하는 논거들을 보면 레즈비언 섹스에 대한 안내 지침의 부재와 같은 것이 있다.


또한 STD(Sexually Transmitted Disease: 성병)에 있어 어젠다가 나뉘어 설정되어 버렸다는 사실 또한 큰 문제다. HIV는 그야말로 남성 동성애자의 문제가 될 뿐이고, 같은 의미에서 HPV(Human Papilloma Virus, 여성의 자궁경부암을 유발)는 중년 여성, 혹은 고작해야 예방접종의 대상이 되는 젊은 여성들의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정작 HIV 감염인 절대 수는 이성애자가 더 많으며(당연한 일이지만, 그리고 비율상 동성애자 HIV 감염인의 비율이 넘사벽이겠지만), HPV 예방 백신인 가다실이 콘딜로마(HIV와 함께 STD계의 양대 공포, 곤지름)를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은? 결국 질병을 하나의 성정체성과 결부하게 되는 방식은 효율적인 방식도 아니며, 위험하기까지 한 결락을 불러오게 된다. 이 또한 업스트림의 목소리에 묻혀, 지적과 개선의 움직임은 요원하기만 하다.




정리하자면, 인권운동의 현장 구호가 즉물적 호오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 그런데 그 호오는 결국 퀴어 운동현장의 다수를 차지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결정한다는 것. 그러다 보니, 게이 사회 내부에서 정제되지 않은 단순 호오가 표면에 대두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 이런 어젠다의 잠식을 나는, 퀴어 사회 지분을 다수-소수자가 독점하는 현상을 현현한 ‘제국 이태원’의 전형적인 일례로 본다.


그렇다면 단순히 퀴어 사회의 새로운 독재자로 군림한 게이, 혹은 그에 편승하는 일부 알파-레즈비언들을 척결하면 되는 문제일까? 사태를 그렇게 바라보고 싶어하는 이들도 없지는 않아 보인다. 그러나 새로운 게이-마초성을 가정하고 죽창으로 이를 해결하려 드는 방식을 우리 모두가 바라지는 않는다고 가정하고, 조금 더 생각해봐야 한다.


누군가를 마초-비마초로 나뉘어 판단하여, 마초를 배격한다는 이원론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현재의 독점체제를 문제시하는 방법은 너무 단순하다. 그런 판단의 결과로 게이가 퀴어 사회 지분을 잠식하였다는 문제인식에 공감할 마음도 없다. 이는 어디까지나 자성에 가까운 판단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해결 또한 그 방향에서 나와야 한다. 게이라면, 그리고 더군다나 메인스트림이라면, 의식적으로 성정체성-성지향의 모든 조합이 가능하다는 가정적인 시뮬레이션을 계속적으로 시도하는 수 밖엔. 그것이 게이에게만 강요되는 것은 물론 아닐진대, 이러한 조합을 당연히 숨쉬듯 할 수밖에 없는 성정체성-성지향의 사람들도 존재하므로, 결국은 그 곳까지 상상력을 뻗어나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나마, 우리에겐 이러한 상상력이 그렇게 낯설지만은 않다는 점을 새겨보는 것도 좋을 법하다. 누군가에게 이 세상은, 혹은 대한민국은, 게이가 없고 앞으로도 없어야만 하는 청정구역이기도 하다. 그들이 얼마나 무지몽매해 보이는지 다시 한 번 새기면서, 더욱 정진을.






첨언 1. llello 님의 이 글, 그리고 이 글은 지금껏 이 사태에 관해 쓰인 가장 좋은 글이다.


첨언 2. 위와 같은 의미에서 동인련 HIV/AIDS 팀의 인권교육은 좀 가자. 나부터도, 내가 이런 걸 잘 모르고 있다는 판단이 선다면.

  1. 그럼에도 나는 애널섹스를 하는 게이이고, 저러한 형태의 주장이 일종의 선긋기로 나와 같은 사람들에 대한 배제의 맥락으로 받아들여진다 주장한다. 그렇지만 이런 나의 주장을 오히려 헉하며 받아들인 사람은 전혀 다른 층위의 주장을 하고 있었던 - 그러므로 애널섹스를 하지 않는 게이들의 주장에 대해 심정적 동조를 하는 것에 가까웠던 - 게이가 아닌 퀴어들이었다. [본문으로]
  2. 또한 나는 일군의 이런 주장에 관해 성엄숙주의에 젖어 있다고 비판한 바 있지만, 여기서는 관련성이 덜하여 굳이 논하지 않는다. 하지만, 애널섹스를 하지 않는 게이의 존재를 들어서까지 HIV와의 분리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렇다면, 자신들이 탈출하고 남은 애널섹스를 하는 게이들은 HIV와의 연관성을 그대로 인정하며, 그들에 대한 색안경을 끼게 되는 것인지 조금 더 자아성찰을 요구하게는 된다. [본문으로]
  3. 어느 모로 생각해보나 AIDS/HIV는 악이 아니다. 걸린 사람들의 불행을 연만하고, 나에게 걸릴 가능성이 있음을, 그리고 그 가능성이 항문성교를 상대적으로 덜 하는 듯한 이성애자에 비해 높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러면 어떻냐는 당당한 태도로 임하는 수밖에 없다. 그나마 관리가능한 질병이 된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이 감사할 뿐. [본문으로]
  4. 참고로, 여기서의 인권운동 신이라는 것은 본격 운동을 하려는 사람들만을 일컫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공감공감을 얻기 위해 트위터에 트윗을 하여 그것이 RT를 통해 전파되는 층위까지도 포섭한 개념이다. [본문으로]
  5. 인권+감수성이라는 이 단어는 상당히 웃기다. 인권이 언제부터 감성의 문제였을까? 물론 인권 지표와 관련 토픽에 민감하게 반응하여야 한다는 취지는 이해를 한다만, 이 단어의 사용례는 사실상 인권을 감성적으로 해석하게 되는 일군의 주류 이데올로기를 놀랍도록 탁월하게 묘사해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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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언제나 그랬다. 내가 열두 시간 전까지 있었던 게이바와 게이클럽에 굳이 비싼 돈을 주고 들어와 춤을 추겠다는 건 양반이고. 게이 카페에 가입하여 소위 '인증'글을 모조리 캡쳐 뜬 블로그가 있었네, 검색 크롤을 통해 들통이 나자 게이들을 조롱하고 자신들끼리의 서로이웃 블로그로 전환을 했네 하는 이야기들. 이미 모든 커뮤니티는 그들에게 뚫려 있었다. 심지어 위치기반 소셜 데이팅 어플리케이션(지오소셜)에 자신의 얼굴 사진을 당당히 걸어둔 여자도 있다. 친구를 만들고 싶다며 왜 말을 걸지 않느냐고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로 당당한 그들에겐 "faghag"라는 말의 경멸적 어조까지 어울린다.


그런데 아뿔사, 이번엔 심지어 지오소셜을 캡쳐하여 누구나 볼 수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렸다고 한다. "게이이기 아까운 훈남들"이란 제목으로. 이런 미친! 분노와 경악은 당연하다. 나의, 우리의 입장에서 이는 갑작스레 나의 영역을 침범한 흙 묻은 맨발이기 때문에.





아웃팅 배척의 예외성




하지만 조금 다른 이야기로부터 시작해보자. 게이인 당신은 사회적으로 핍박받는다고 느끼는가? 그렇다면 그 핍박은 어느 지점에서 오는가? 자신을 드러내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현실, 사람들의 편견, 손가락질, 과도한 관심과 배척, 불이익, 차별과 같은 지점 아닐까.


게이/퀴어의 목소리 중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 아웃팅 방지에 대한 요구이다. 아웃팅은 범죄이며, 심각한 삶의 위협이라는 것이다. 헌법에 규정된 국민의 권리인 사생활의 자유를 끌어온다. 누구에게나 사생활을 누릴 자유가 있는 법인데 그 사생활에 대해 남들이 왈가왈부하는 것은 헌법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하지만, 헌법은 그런 방식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헌법이 가장 강한 규범으로써 의미를 가지는 것은 국가에 대해 무언갈 요구할 때 뿐이다. 그 이외, 개인과 개인의 문제가 있을 때 헌법은 도덕책보다도 쓸모 없는 수준이다. '친구를 때리면 안 되요. 근데 쟤가 나 때려요' 같은.


조금 더 나아가보자. 아웃팅이 범죄라고 이야기할 때 대부분의 논의는 직관적으로 명예회손명예훼손의 법리를 끌어온다. '사회적으로 핍박'받는 성정체성인 게이라는 사실을 남에게 밝히는 것은 나의 명예를 훼손한다는 것이다. 형법 제307조는 두 항목으로 나뉘어져 있다. (1) 공연히 사실을 적시한 경우와 (2)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한 경우. 즉 아웃팅을 한 사람을 명예훼손으로 잡아넣기 위해선 그렇다면 "A는 게이다"라는 말이 사실인지, 허위의 사실인지를 검증받아야 하는 과정이 남는다. 게다가 형량을 보면, 게이를 게이라고 말하는 것이 게이가 아닌 사람을 게이라 하는 것보다 죄질이 가볍다. 이게 뭐야?!


명예훼손의 개념으로 들어가봐도 모순과 의문점이 남기는 마찬가지이다. 게이라는 사실이 나의 명예를 훼손한다는 게 이 쪽의 주장이 된다. 그리고 같은 입으로 게이임은, 퀴어임은 잘못된 게 아니라는 주장을 하게 된다. 우린 모두 어떤 지점에서 퀴어한 사람들입니다. 남들과 다르지 않아요. 이렇게 태어난 걸요. 교정치료 같은 걸 할 필요 없이, 그냥 이대로 우리를 있는 그대로 보아 주세요.


그런데 제가 게이라는 걸 남들에게 말하면 제 명예가 훼손됩니다. (/두둥!)



물론, 대한민국 사회에서 게이라는 사실을 자신의 통제영역 너머에서 까발려지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것이 아니다. 다만 아웃팅 방지 운동은 어디까지나 현실적 필요성에 의해 생긴 것이며, 게이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철폐하라는 주장과는 논리적으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한 극단적인 이야기이다.[각주:1]


아웃팅이라는 건 우리의, 아니, 나의 생활에 있어 현실적으론 꽤 중요한 문제이긴 해도 게이로서 사회 개선을 꾀하고자 할 때 가장 중요한 가치일 수는 없다. 그건 '이렇게 해달라'는 요구가 쉽지 않은 문제이기 때문이다. 설령 게이가 대통령이 되어 퀴어 프렌들리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하더라도, 아웃팅이 제1가치라면 무얼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아웃팅을 범죄로 규정하고, 위반하는 자에게 실형을 살게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제 어디까지는 아웃팅이며 아웃팅이 아닌지에 대한 혼란이 빚어질 것이고, 더 문제적으로 '너 게이야?'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될 것이다. 심지어는 나 자신이 '나 게이야'라고 선언했다 하더라도, 아웃팅을 극단적으로 염려하자면 내가 혹시 말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남들은 거기에 대해 왈가왈부하면 안 된다. 이런 금기의 장벽을 쌓는 것이 진정한 퀴어 해방일까.





문제는 그 지독한 타자화




물론 내가 지오소셜 앱에 대한 이러한 침탈, 그리고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핍박과 지독히 사물적인 호기심에 대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니 넘어가자'고 주장하려는 건 절대 아니다. 나는 이걸 아웃팅이라는 프레임 하나로 단순히 묶어버리는 걸 반대할 뿐이다. "그거 아웃팅이야"라는 말은, 많은 양식 있는 사람들의 입을 즉각 묶어버리는 효과는 있지만 가끔 전가의 보도로써 남용되곤 한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서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 처럼.


오히려 이번 사건을 터뜨린 년들사람들의 사고를 조금 들여다보면 어떨까. 그들은 왜 우리에게 그렇게 많은 관심을 기울일까. 게이에게 선망을 가지는 여성들의 기저심리에 관한 이야기는 많지만 자신과의 섹슈얼한 텐션이 없다는 것과, 핑크장갑 님과 같은 패션 게이들, 혹은 주변의 보통 남성과는 나눌 수 없는 여러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다는 점을 높이 사는 것 같다. 정도는 다르지만 동인소설에 심취하여 게이에 대한 비이성적인 관심을 보이는 자들 또한, 결국은 그 근저에는 호감이 베이스된 것 같다.


호감을 베이스로 깔고도 이런 파괴적인 행동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 어긋난 관심, 삐뚤어진 애정이란 것일테다. 나는 문제의 핵심이 그들이 게이를, 다른 퀴어들을 이해하려고 했다기보단 그저 게이라는 사물을 소비하려는 데에 있다고 본다. 아웃팅이 개입되었다는 점은 어디까지나 문제의 부차적인 층위일 뿐이다. 이것이 아웃팅이라는 사실 자체보다도, 그들이 그토록 선망하는 게이라는 존재가 이러한 소비에 반발할 때 그들의 말에 귀기울이는 대신 오히려 비아냥거리는 반응이 나오는 것이 더욱 문제적인 상황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퀴어 운동은 그러한 비아냥을 배척하고 도태시키기 위한 역사와도 같았기 때문이다. 설령 그것이 비아냥의 형태를 띠고 있지 않을지라도.



예를 들어, 이런 글은 어떨까?


아웃팅이 개입되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오히려 퀴어들에 대한 공격을 비난하는 어조의 글이지만, 이 글에서도 비슷한 타자화를 읽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런 문단:



지금껏 내가 ‘배운’ 바로는 퀴어들에게는 오직 사랑밖에 없다. 그들에게는 세상의 명예와 부, 그리고 그것을 위한 전쟁을 좇는 삶이 무의미하다. 나는 나의 퀴어 친구들을 알고 사랑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읽고 또 읽었다. 그것은 그들이 만든 시이거나 음악이었다. 그들이 왜 총을 들기 싫어서 국가를 버리는지, 왜 전쟁 말고 사랑을 외치는지 나는 이제 조금 알게 되었고 그래서 조금 더 사랑을 존중하게 되었다.


양효실, 서울대 미대 동성애 혐오작품 논란, 시사IN 225호 中



'사랑으로 충만한 퀴어'라는 상을 하나 세워두고 그 상에 근거하여 퀴어를 존중하자는 주장을 펼치는 이 문단은, 히피 문화에 대한 묘한 향수를 가지고 퀴어들을 신인류로서 제시하는 퀴어 낭만문학으로 흠잡을 데 없다. 그렇다면 양효실 강사의 주장에 의하면 애인 없이 하루하루를 밀리터리 덕후질로 보내는 거함거포주의자 육식 게이는 존중받을 가치가 없는 것인가.

선한 사회적 소수자의 허상이란 게 존재한다. 사회적 소수자는 선하기 때문에 보호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들이 얼마나 착하고 순박한 사람들인데, 그저 이 사회적 구조란 것이 그들을 짓누르고 있다며, 그 구조를 걷어 주면 그들은 특유의 선함으로 우리 사회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으므로 공리주의적인 관점에 의거해 이들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그러한 낭만적 주장. 이러한 주장이 주는 문학적 카타르시스는 인정한다. 하지만 사회적 도움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긍정적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세태는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Faghag 팬덤의 인터넷 아웃팅이든, 물처럼 맑고 순한 게이의 허상이든 결국은 타자화로부터 시작된다. 커밍아웃한 연예인이 TV에 등장해 게이 개그로 많은 사람들의 웃음과 호감을 사는 시대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여러 게이들의 얼굴은 모호해진다. 나의 일상 생활 속에 게이가 있을 거라는 그런 생각을 아직 누구나 하지는 못하는 그런 시대이다. 그들에 대한 여러가지 형태의 환상(幻想)이 자리하고, 환상에 들어맞지 않을 때 그들은 당황하고, 더러는 반감을 가진다. 왜 내가 가진 상(像)에 너희는 들어맞지 않느냐며.




그래서 어쩌라고



MECO는 형이상학을 하는 사람이라는 오해가 생길 지경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공부를 해본 적 없는 사람인데. 그래서 독자들이 던질 질문을 나 스스로 던지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일단 벌어진 아웃팅을 대체 어쩌자는 건가?

명예훼손은 웃긴 소리다. 이건 전기통신기본법상 전기통신설비를 이용하여 일어난 범죄이므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처벌을 구해야 한다. 법 제49조에 규정된 "정보통신망에 의하여 처리ㆍ보관 또는 전송되는 타인의 정보를 훼손하거나 타인의 비밀을 침해ㆍ도용 또는 누설"에 해당하는지 부분을 입증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해당 지오소셜이 누구나 설치하면 볼 수 있다는 점은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지만, Terms of Services는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특별법상 고소에 더하여 민사상 위자료도 해볼 수 있을 것이고.

엇? 이게 전부? 그건 아니다. 그러나 사회적 타자화에 대응하는 방식은 누구나 다를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 벽장 밖으로 나오고 싶어하는지도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당신과 내가 같은 게이란 이유로 정치적 견해가 일치하리란 것 또한 하나의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게이란 점은 일정 부분에서 같은 주장을 공유할 수는 있다. 그 지점에서 연대의 신비가 작용할 것이다.

만일 당신의 포지션이 현재 이 곳의 인권신장을 바라는 과격파라면, 당신이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인권 가치에 따라 그걸 보장 받기 위한 길을 걸으면 된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다시피 인권신장을 이야기하며 아웃팅을 우선적 가치로 주장하기란 쉽지 않다. 아웃팅으로 오늘도 상처받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아프지만, 결국 퀴어 인권운동의 방향은 아웃팅의 낙폭, 즉 아웃팅이 있더라도 그 결과가 그렇게 심각하지 않도록 만드는 쪽일 수밖에 없다.

누구나가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하지만, 또한 누구나가 완전히 벽장을 나올 수는 없다. 당신이 벽장을 드나드는 사람이라면 결국은 아웃팅 방지는 스스로의 현명한 처신에 맡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든, 아웃팅의 낙폭을 줄이는 데에 조금이라도 기여한다면 당신의 불안 또한 최대한 빨리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타자화를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결국 타자화의 문제는 엄밀하지 못하다는 데에 있다. 아무리 답이 ㅇ벗는 faghag타자화된 호의의 표현이라 하더라도 우리 주변에서 그 정도의 호감을 얻기가 쉽지 않다는 것 또한 문제이다. 그리고 항상 이론적 정밀함만이 사태를 돌파하는 유일한 수단은 아니다. <인생은 아름다워>가 보여주었듯이 가족주의 또한 퀴어를 이해하고 포섭할 수 있다. 그것이 부작용을 쫙 뺀 담백한 이해와 포섭은 아닐지라도, 세상은 그렇게 누비어져서도 굴러가는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일에 움츠러들지 않는 것. 퀴어에 대한 반가치를 적극적으로 들고 나온 포비아가 개입되지조차 않은 이번 사안으로 혹시라도 겁을 먹고, 목소리가 수그러들지 않는 것.

오히려 더욱 기갈차게 외쳐주진 못할 망정,"너희 같은 무개념녀들이랑은 내가 이성애자라도 안 놀아." "왜 내 사진은 없냐! 내 사진도 캡쳐 좀 굽신굽신"숨어버리지 않는 것. 




이 글을, 이번 사건이 터진 후 지오소셜에서 수많은 훈나미들이 사라질 것을 가장 먼저 걱정한 Chatterbox 구성원들에게 바칩니다. :)

  1. 실제 지금 우리 사회 수준과 비슷했을 90년대 미국에서 게이 유명인을 아웃팅시키는 Queer Nation이라는 단체가 있었다. 물론 그들이 호모포비아라는 건 아니고, 오히려 게이 인권운동의 한 방향으로써 이를 도입한 것에 가까웠다. [본문으로]
Posted by MECO


블로그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특별 게스트 '핑크장갑'님께 패션에 대한 글을 수주하였...

게이라고 다들 옷을 잘 입는건 아니에요. 아, 물론 제가 본 게이들은 보통 평균 이상은 입고다니긴 합니다만..그렇다고 필진중에 대단한 패셔니스타가 있는것도 아닌 불편한 진실.

그래서 이번 코너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종종, 정규 필진 외 분들의 글을 받아 올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Team Chatterbox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핑크장갑입니다(이 글도 종이에 핑크색 팬으로 썼어요) 패션 관련 종사자는 아니지만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핑크게이죠. 근데 글은 왜 쓰냐구요? 보면 알거임(재수 돋는 소개글은 애교><) 제가 쓴 글은 패션 관련 글입니다. 거창하게 역사나 재무분석 같은 게 아닌 실생활에 관련된 소재입니다.

 

이 블로그는 너무 진지하니까 가끔은 가벼운 글도 필요하잖아요!?. 사실 패션 관련 글은 인터넷으로 조금만 찾아도 쉽게 접할 수 있는데요. 그래서 내용이 다소 중복되거나 지루할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나는 핑크장갑! 노히들과는 다룬 글을 쑤게써! 최대한 간단하고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보겠습니다.

 

 

 

1. 거울 안보니??

 

여러분은 거울을 얼마나 자주 보시나요? 샤워 후? 왁스 바른 후? 부탁이건데 평소에도 거울을 사랑해주세요. 게이빈에서 손거울 들고 화장하는 소년들을 배우세요! 그들은 자기에 대한 애정을 착실하게 아이라이너로 표현하고 있는 중이니까요.

 

옷을 잘 입기 위해선 거울이 필수입니다. 손거울 들고 화장하라는 게 아니고, 집에서 거울을 유심하게 보세요. 그리고 자신의 얼굴 형태, 피부톤, 머리카락의 색, 몸의 비율과 길이, 가슴근육·복근·등짝하앍, 신체적 특징을 분석해보세요.

 

피부톤은 검다, 희다 밖에 모르시겠다구요? 날씨 좋은 날 금박지 은박지 하나씩 사서 외출하세요. 그리고 조명판 마냥 아래에 대고 비춰봅니다. 둘 중 하나 어울리는 것이 여러분의 느낌입니다. 핏줄 색으로도 알 수 있다고 하네요. 초록빛이면 웜톤, 파란빛이면 쿨톤그래도 모르시겠다면 테스트 테스트!

 

 

 

 

 

2. 그게 옷이야??

 

쇼핑을 할 때 돈에 구애받지 않으신다면 이 글은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고민할 것 없이 퍼스널 쇼퍼 고용해서 마음껏 입고 다니세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일단 예산을 측정하세요. 10만원이면 셔츠하나, 15만원이면 바지까지, 300만원이면 발망의 파워숄더, 30만원이면 아우터까지 사겠네요. 뭔가 도중에 첩자가 하나 끼어든 것 같은데 기분탓일거에요.

 

예산을 짰으면 옷을 사야겠죠. 이제 무엇을 봐야 할까요? 컬러. 전 여름에는 밝은 색을 주로 입습니다. 검정색·회색·남색 등 어두운 색은 되도록 피합니다. 이유는 말 안 해도 아시겠죠? 다만 굳이 입을게 없거나 게이가 가장 기갈스럽다는 밤 9시경의 약속이라면 입고 나갑니다.

 

아무튼 지금 같은 여름에는 깨끗하게! 맑게! 자신 있게! 도전하세요. 마침 이번 시즌에는 파스텔 계열(민트, 오렌지)이 유행하더라구요. 참고로 오렌지 색은 속성 자체가 가벼워서 명랑해보이기도 하지만 자칫하면 되게 싸보일 수 있습니다. 정말 입고 싶은데 부담스럽다면 상의가 아닌 하의로 입어보세요.

 

마음에 드는 색을 골랐다고 사시면 안 돼요. 디자인도 봐야합니다. 이게 제일 중요해요. 사실 컬러는 유행이 지나도 크게 상관없이 입을 수 있습니다만 디자인은 그렇지 못해요. 7·9부의 어정쩡한 바지(반바지는 무릎 위까지의 길이가 제일 적당해요)나 더플코트를 요즘 보셨나요? 아마 버리기 아까워서 옷장에서 세균번식기로 쓰고 계실 겁니다. ‘유행이니까 하나 살까하시지 마시고 한 번쯤 생각해보세요. 싼 값이라면 상관없지만 비싸면 아까우니까 한 번 입고 말 옷일지, 그래도 최소 일 년은 입을지를 말이에요. 자신과는 안 어울리는 유행도 분명 있습니다. 그런데 뭐가 유행을 탈지 안탈지 모르시겠다구요? 이런 게 고민될 때는 심플한 옷을 사시면 되요. 심플한 디자인은 옷 자체의 변형이 아니더라도 악세사리를 이용해 다양한 연출이 가능하니까요. 사실 제가 즐기는 방법입니다.

 

이제 쇼핑을 갑니다. [게이는 야생의 지오다노(/) 발견했다! 마음에 드는 디자인! 구매를 사용했다!] 야메로! 이런 쇼핑은 모 야메룽다! 제발 쇼핑에 시간을 좀 들이세요. 날로 먹는 건 육회로 족합니다. 간단한 티나 바지라면 이런 방법도 괜찮습니다. 다만 아우터나 신발, 가방 같은 경우라면 발품을 좀 팔아보세요. 전 제 옷과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이 있으면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요. 왜냐구요? 나는 핑크장갑이니까!

 

뭐 사람 사는 게 거기서 거기라지만 발발거리는 신발 수준으로 자주 보인다면 차라리 안사고 말아요. 정말 특이한 디자인들이 홍대나 신사, 동대문에 숨겨져 있어요. 저는 선호하진 않지만, 빈티지 샵(이라 쓰고 헌옷가게라 읽음)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사실 저번에 가봤는데 독특한 디자인이 많아서 놀랐습니다. 명품 같은 경우도 디자인이 특이합니다. 예뻐요. 근데 이것도 보면 희소하지는 않아요. 월급 다 꼴아박아서 신상 구입하는 것이 애달픈 월급쟁이들의 묘미니까요. 이럴 땐 신진 디자이너들을 노리세요. 가격대도 높지 않고 예쁜 옷도 많거든요. 또 혹시 아나요. 유명해지면 덕 좀 볼지. 까르르!

 

기나긴 여정 끝에 옷을 샀습니다. 아니 근데 이게 웬일? 이 가게 저 가게 그냥 맘에 드는 대로 샀더니 불상사가 발생했습니다. 전혀 매치가 안 될뿐더러 집에 있는 옷과 너무 비슷하네요.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 ! ! ! 자신이 즐겨 입는 스타일, 컬러를 파악해 보세요. 보통 흰색, 검정색, 회색이 많지 않나요? 그러실거에요. 무난하니까 딱 이거든요. 자신의 옷들을 이미지화해서 기억하세요. 그리곤 쇼핑할 때 떠올리세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 번에 다 구입하는 경우는 드무니까, 옷을 기억해두면 한 벌씩 사도 조화를 생각하며 살 수 있습니다. 평소 입던 흰 셔츠에 새로 산 반바지를 조화시켜 서로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는 거죠.

 

옷 입을 때 소위 깔맞춤 많이 합니다. 중요해요. 그런데 깔맞춤이랍시고 정직하게 All In One 하시는 분들 있나요. 정장이나 유니폼이라면 상관없겠는데, 다른 소재의 다른 디자인으로 그러실 거면 차라리 색동옷을 입으세요. 정말 안 어울린답니다. 비슷한 채도와 명도로 옷을 입는 --(Tone On Tone) 방법을 이용해봅시다. 제일 쉬운 건 마법의 무채색을 이용한 코디! 흰색, 검정색, 회색의 옷이 많은 것도 이러한 이유겠죠.

 

 

아래의 표를 봅시다. 원을 돌면서 색이 배치되어있는데요. 색의 변화가 자연스럽지 않습니까? 이렇게 근접한 컬러들을 이용해서 코디를 하면 어색함이 없이 할 수 있다는 거죠. 좀 더 과감해지고 싶다면 보색코디도 도전해봅시다. 아래 두 개씩 짝지어져 있는 색들이 보색입니다. 확 들어오는군요. 다소 부담스럽다면 역시나 무채색을 이용하면 됩니다. ·하의에 보색을 이용하고 상의 속에 얇은 티 같은 것을 무채색으로 입어준다면 무리감 없이 소화할 수 있습니다.

 

 

 

 

표로만 봐서는 모르겠다는 분들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건! 없습니다. 인터넷에 보면 코디법 많으니까요. 남들이 어떻게 입는가를 보고 배우는 것도 중요합니다. 저도 이런 사진들보고 많이 배우거든요.

 

사토리얼리스트페이스헌터가 떠오르네요. 스트릿패션을 찍어둔 블로그인데 정말 발칙할 정도로 창의적인 분들이 많이들 계신데 보니까 책으로도 나왔더라구요. 감이 안 온다 싶을 때 이런 걸 보고 따라하는 것도 좋아요. 다만 어느 정도 능숙해졌다 싶으면 그대로 입지 마시고 응용해보세요.

 

공자께서도 이럴 때 쓰라고 종심소욕불유거(七十而從心所欲不踰秬) (네이버에 치면 불유구라고 나오는데 불유거임. 우리 교수님이 최고임 ㅇㅇ)라고 하셨습니다. 하고 싶은 대로 다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말처럼, 입고 싶은 대로 입어도 어긋나지 않는 멋진 코디가 완성될 겁니다.

 

 

3. 미친 거 아니야?

 

 

 

가장 마지막으로 얘기하고 싶은 건 자신감입니다. 많은 분들이 패완얼(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고 합니다. 맞는 말이오! 아무리 옷 잘 사도 얼굴, 키 되는 놈한테는 안돼요. 뭐라구여? 여러분이 소지섭, 조인성 급이라구여? 그럼 나랑 사귀던지 꺼지던지

 

아쉽게도 우리 모두가 이들을 닮을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조연일거면 주조연이라도 되자 이거죠. 이를 위해 필요한 게 자신감이에요. 위와 같은 기본만 지켜주시고 자신감을 살짝 얹어주세요. 아무리 옷을 잘 입어도 본인이 어색해하고 불편해한다면 보는 사람도 느낄 태니까요.

 

당신이 마초라면 난 상남자야! 반대라면 내 기갈을 버텨봐라고 최면을 거세요. 문득 앨빈 토플러의 명언이 떠오르네요. ‘이겨도 병신 져도 병신이라면 이기는 병신이 되라이기는 병신은 옷은 못 입어도 자신감 있는 놈이고 후자는 옷도 못 입고 자신감도 없는 놈이에요. 여러분은 옷도 잘 입고 자신감도 있는 분들이 되는 겁니다.

 

, 이제 당장 거울을 닦고, 옷장을 엽니다. 새로운 모습이 기다리고 있을 당신을 위해!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원래 이 게시판은 그냥 '각자 일상생활이나 잡생각에 대해서 뻣뻣하지 않게 알아서 풀어써보자' 였는데... 메코형이 진지진지한 글을 두 편이나 쓰고 나니 다들 엄두를 못내는 것인지, 귀찮은 것인지. 뭐 암튼 그렇게 됐습니다. 하지만 전 막나가는 인간이니까 그냥 쓰려고요 이힝.


    조만간 거주지를 옮길 예정이라 얼마전까지 방을 알아보러 다녔습니다. 새삼 부모님이랑 같이 본가에 있는게 얼마나 쾌적한 환경인지 알게 되더군요. 서울은 대체... 사전조사로 살펴볼 방들 목록을 짜서 반나절동안 발발발 돌아다닌 끝에- 완전히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럭저럭 타협할만한 공간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가을부터는 학교 근처에서 살게 됩니다. 훈늉한 남자들을 구경하면서 대학다닐 생각하니 마음이 흐뭇하네요. 


    앤더슨 쿠퍼가 커밍아웃을 했습니다. 그가 게이인거 모르던 사람들은... 음... 안됐지만 정말 촉이 후지시다는 말 밖엔 드릴말이 없네요. 모두들 게이인걸 알지만 본인이 스스로 대중에게 커밍아웃하지 않는 사람들 보고 '유리벽장'에 들어있다고 한다죠. 앤더슨 쿠퍼씨는 전형적인 유리벽장게이였죠. 근데 그 분은 분쟁지역 리포터로 명성을 날린 분이었는뎅... 커밍아웃을 한 이상 이제 이슬람권은 취재가 불가능하겠네요. 솔직히 이제 나이도 있고 하시니 그냥 데스크를 지키거나 토크쇼 진행자로 방향을 완전히 틀려고 그러시는게 아닌가 싶어용. 아.. 방탄조끼 같은거 입고 마이크를 든 채로 분쟁지역 뛰어다니는 앤더슨 쿠퍼짜응의 모습이 참 ㅅㅅ했는데...  아 아닙니다.


    채터박스 팀에 대해서 궁금해 하시는분이 가끔 있을 것 같은데.... 나중에 방명록이나 이메일로 질문사항들을 접수 받아서 Q&A시간이라도 가져볼까요?  물론 다른 분들의 동의따위 전혀 없이 그냥 지금 생각나서 싸지르는 글이라 실현가능성은 미지수입니다(...) 


    채터박스 멤버들끼리는 나름 친합니다(다고 저는 생각하는데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만날 수 있는 분들끼리 번번히 계모임(..)도 하고 밥도 먹고 그럽니다. 홀로 외국에 거주하는 알비노 고양이 호랑이씌만을 빼곤요, 솔직히 밥 한 끼 먹자고 한국에 매번 올 수는 없잖아염...


    요즘 날씨가 끈적끈적하지 않나요. 그래도 비 아예 안오던 주보다는 훨씬 선선해서 괜찮은 것 같아요. 곧 옷깃만 스쳐도 살인나는 여름더위가 다시 시작되겠지요 ㅠㅠㅠ  전 여름을 무지하게 싫어합니다. 더위 자체를 많이 탄다기보단 땀이 많이 나는 사람이다보니.. 끈적거리고, 썬크림 녹아들고, 여드름폭발하는 여름이 싫어요 흑흑  여름의 메리트라면 냉면이랑 빙수, 그리고 훈훈한 남성분들의 반팔에서 보이는 근육정도...? 그거 말고 또 뭐가 있죠... 음.... 전 차라리 겨울이 좋아요. 한 살 더 먹는다는 것 빼곤.


    네. 잡답이라서 의식의 흐름기법으로 글을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한 2년동안 멍때리고 잔심부름 하는일만 하다보니 사고의 깊이가 화장품 샘플병보다도 얕아져서 지적인 향유를 즐길 수 있는 글을 쓸 수가 없네요. 뭐 이러니저러니해도 제가 다 게을러서 그랬던거죠 ㅠㅠㅠ 그리고 실은 2년 전에도 전 그냥 무지렁뱅이였긔... 


    그닥 길진 않았지만 산만한 잡담을 여기까지 할게요. 심심하면 또 블로그를 더럽힐겁니다. 그럼 안뇽.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안녕하세요. 꼭두새벽까지 잠도 못 자고 글쓰고 있는 stress surplus입니다.

 

이런 꼭두새벽까지 글 쓰느라 기갈도 다 고갈되고 없어 죽겠는데ㅠㅠ 글쓰려니까 피부도 늘어지는 것 같고 주름살도 느는 것 같아요. 살려줘요...

 

이렇게 징징대봤자 날 살려줄 멋진 남자 따위 나타나지 않을 건 아니까 글이나 후딱 써야겠죠. 가기 전에 재미있는 퀴즈나 한 번 하고 가도록 합시다 :) Just for fun이기도 하지만 여러분의 금융상식이 어느 정도의 수준에 해당하는지 테스트해보려고 하는 겁니다.

 

여러분께선 BC카드가 보유하고 있는 신용카드 상품 개수가 모두 몇 개인지 알고 계세요?

 

미리 말씀드리지만 BC카드사 홈페이지http://www.bccard.com 에 들어가서 직접 세보려는 시도는 가장 미련한 일이면서도 농담으로 드린 질문을 다큐로 받는 일이 될겁니다 :) 부디 그러지 마셔요... 상품도 안 걸려 있는데ㅋㅋㅋ

 

정답은 광고를 보면서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플레이 버튼을 눌러주세요!

 

사실 이 광고가 만들어진 시기는 2010년 하반기로 2012년인 지금과는 시기적 차이가 있죠. 그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을 수도 있을테니까요. 기사 하나 더 보고 가겠습니다.

 

클릭

 

 

놀라지 않으셨나요? 생각보다 카드상품 갯수가 많죠? 2010년 하반기에 방영된 저 광고에 따르면 다른 카드사를 제외하고 BC카드사가 보유하고 있는 카드 상품 갯수는 14507개입니다. 그로부터 1년 반이 흘러 2012년 3월에 올라온 기사에선 BC카드사가 대략 8700여종류의 카드상품을 보유하고 있다네요. 정말 별로 안 중요한 건데,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비씨카드사 홈페이지 카드 소개에 들어가서 하나하나 미련곰퉁이같이 세고 있어도 저 갯수 안나와요. 지들도 발급한 게 하도 많아서 홈페이지에 일일히 업데이트도 못했거든요. 그거 일일이 세려고 하셨던 분들은 일찌감치 갈무리하고 그 정성으로 솔로이신 게이 여러분들께선 남자들 찾도록 하세요.

 

하여튼 뜬금없이 BC카드 카드 상품 개수를 여쭤본 이유는 별다른 건 없고 여러분이 카드사에 대해서 알고 있는 부분이 어느정도 되나 스스로 되짚어보는 계기를 만들어 드리고 싶어서였습니다. 저 BC카드 광고 당시에 TV에서 작살나게 틀어댄 걸로 알고 있는데 저 광고에 나오는 남자가 이상형에 부합하는 남자(잘생긴 남자)라서 침만 줄줄 흘렸던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맨 마지막에 정답이 나오는 걸 보며 멘붕했던 기억도 나구요. 내가 알고 있는 카드는 몇 개 없는데 저렇게 많았나?  별걸로 멘붕하는구나 싶죠? 원래 저 이렇게 소심한 게이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도 가장 쪼잔한 분야를 맡아서 이렇게 글을 올리고 있구요 :)

 

각설하고 두 번째로 질문 던지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신용카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세요?

 

체크 카드 외에 존재하는 또 다른 상품? 과소비를 유발하는 원인이 되는 카드?

 

세상에서 제일 좋은 술이 공짜로 먹는 술인 것처럼,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카드는 엄마카드...좀 더 나이먹으면 법인카드:)  김태희가 말 그대로 천재적 카드생활을 했다면, BC카드가 아니라 법인카드를 쓴 거겠죠 ㅋㅋ

 

신용카드는 말 그대로 "소비자신용의 일종으로 카드발행사와 계약을 체결한 회원이 가맹(지정)소매점 등에서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입할 경우 발행회사가 교부한 카드를 제시하고 전표에 서명을 하면 현금의 지출 없이 구매가 가능한 카드"입니다.

 

여기서 유의미하게 바라볼 부분은 '카드발행사와 계약을 체결', '전표에 서명', '현금의 지출 없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체크카드나 직불카드와는 다르게 신용카드는 아무에게나 발행되지 않습니다. 체크카드나 직불카드는 결제계좌의 잔액 범위 내에서 사용한도가 제공되기 때문에 별다른 보증이 필요없지만, 신용카드는 '현금의 지출 없이' 구매가 이루어지고 다음에 돌아오는 결제일에 현금을 지불하게 되는 카드이므로 해당 사용자가 카드대금을 지불할 능력과 의사가 있는지 확인을 하는 절차를 거쳐 '계약을 체결'하고 카드를 발행해줘서 사용을 하게 하는 거죠. 그리고 그 카드를 제시한 사람이 신용카드사와 계약을 체결한 본인이 맞는지 확인은 '전표에 기입되는 서명'을 바탕으로 이뤄지고요.

 

 여기서 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한도는 신용카드사가 판단하는 해당사용자의 카드대금을 상환할 능력과 그 상환의사의 확실성에 따라 달라집니다. 일단 신용카드사 입장에서 그 사람이 경제적 능력이나 평가자산이 부실해 보이고, 카드대금을 상환할 의사도 분명치 않는 등 신용이 떨어지는데 뭘 믿고 한도를 많이 제공하겠어요?  실컷 사용하고 나서 배째라는 식으로 나오면 그 사람에게 채권추심이라든지 재판을 통해 사용금액을 되돌려 받는 절차를 밟아야하는데, 그 처리에 따른 추가비용도 발생할테고 여러모로 귀찮겠죠. 아무래도 경제적 능력이나 평가자산을 많이 가지고 있고, 다시 갚을 의지가 확실한 사람들에게 신용카드 사용한도를 크게 부여하는 게 카드사 입장에서 합리적인 선택이겠죠.

 

다시 생각해보세요. 혹시 그래서도 안되지만, 여러분이 카드사에게 카드대금 연체했다고 해서 한 달 전 카드 열라게 긁은 술집에서 니가 카드대금 결제하지 않아서 돈 못 받고 있으니까 빨리 결제하라고 독촉전화 오는 일은 없잖아요? 이미 카드사가 가맹점인 술집에게 여러분 대신 돈을 지급해줬고, 카드사는 그 지급해 준 금액만큼 미리 약속한 방식으로 해당 결제일에 여러분에게서 회수해갈 뿐인 거에요. 다시 말해 카드사가 여러분에게 부여한 카드한도는 여러분 대신 미리 가맹점에게 돈을 지급할 수 있는 한계를 말하는 겁니다.

 

 한도에 대한 이야기로 파고 들어가기 전에 '서명'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해보죠. 카드를 결제수단으로 받아든 가맹업주의 입장에서는 그 카드를 제시한 사람이 카드사와 계약을 체결한 본인인지 확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보통은 결제시 카드 뒤에 기입된 서명과 동일한 서명을 하는지를 통해 약식으로 본인확인을 하고, 보다 큰 금액을 결제할 때에는 여러분에게 양해를 구하고 신분증과의 대조를 통해 카드에 인자된 이름과 동일한지 인을 하겠죠. 물론 우리나라는 서명 대신 동그라미를 그리던 하트를 그리던 안 중요하게 여기고 카드 뒷면에 서명을 하든 말든 하나도 신경 안쓰는 좋은 곳이지만, 카드를 분실하고 타인이 부정사용했을 때 서명은 엄청 중요해집니다. 부정사용 이전에 분실신고를 했다면 시스템에서 자체적으로 승인거절을 하겠지만, 분실신고를 하지 못한 채로 부정사용이 이뤄진다면 타인이 계약자 본인의 서명처럼 동일하게 서명하지 않았는데 가맹점주가 본인확인절차를 거치지 않고 결제를 해 준 것에 대해 카드사는 가맹점주로 하여금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하겠죠. 하지만 그 과정에서 카드 뒷면에 본인의 서명을 하지 않았더라면, 부정사용의 책임은 카드사와 가맹점주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서명을 소홀리 한 계약자에게 돌아가는 거구요. 따라서 카드 관리 왠만큼 한다는 분들은 카드 뒷면에 서명을 하는 것은 반드시 누락하지 않고, 스캐너로 카드 앞뒷면을 스캔하여 보관하는 분도 계십니다. 추후 문제가 발생할 때 카드사에게 자신의 관리소홀로 인해 문제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죠.

 

아 더 쓰다간 죽을 것 같으니까 카드 사용한도에 대한 이야기로 빨리 넘어가죠.

 

제가 천재적 카드생활을 하다보면 다른 사람의 카드생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는데요.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놓고는, 필요이상으로 지를까봐 카드 한도를 줄여 놓고 사용한다는 분도 계시더라구요??

 

 

뭐 살다보면 지름신 앞에서는 한정치산자 심지어 금치산자의 수준에 도달하는 사람들(전 그렇게 멍청한 사람들을 친구로 삼지 않아서 잘 몰랐는데 제 주변에도 있더군요. 제게 있어 제일 가까운 사람인데 차마 말할 수도 없고 우짜지....)이 있는 법이니 그런 식의 처방이 무조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는데요. 그런 분들을 제외하고 보통에 해당하는 사람들께서 그런 카드사용행태를 보이는 건 카드사용의 본질을 잊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사용자 입장에서 지불수단으로써 현금이나 체크카드, 직불카드를 사용하지 않고 신용카드를 선택한다면 어떤 이점이 있을까요?

 

 

첫째로 기회비용의 관점에서 본다면(정말 얼마 안되는 금액이지만), 현금이나 체크카드, 직불카드를 사용했으면 소모되었을 현금자산을 투자해서 얻을 투자이익 등을 신용카드를 사용함으로써 얻을 수 있겠죠. 현실적으로는 해당금액을 다음 결제일까지 CMA에 넣어 얻을 수 있는 이자 정도일까요.

 

둘째로는 가처분자산의 증가를 들 수 있겠죠. 신용카드를 발급받음으로써 자신에게 부여된 신용카드 한도만큼 본인의 처분가능한 자산이 증가하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전 이 두 번째 이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뭐, 통장으로 치면 마이너스 통장 개설과 동일하달까요? 그런 부분에서 신용카드 한도가 왜 필요하나요라는 질문은 신용카드 사용의 본질을 망각하는 몰지각을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신용카드사가 여러분에게 신용카드 한도를 부여할 때, 걔네들이 기분내키는 대로 술먹고 아무 숫자나 무작위적으로 타이핑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의 경제적 능력과 신용도를 자산화, 수치화해서 나온 게 신용카드 한도인 거에요. 따라서 한도가 클수록 신용카드사가 여러분의 경제적 능력과 신용도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며, 한도는 여러분의 경제적 자산에 속하는 것이므로 다다익선인 겁니다. 그런데 남용할 것 같다고 스스로에게 부여된 카드 한도를 줄이다뇨? 이는 자기 돈을 땅바닥에 버리는 행위와 동급이라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군요.

 

 카드사로부터 이런 메일이 날아온다면, 당연히 뻐규 머겅~! 이라고 외쳐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어느 순간엔 여러분의 경제적 능력을 넘어서는 돈을 지출할 때가 분명히 옵니다. 건강에 이상이 생겨서 치료를 하느라 예상치 못한 지출비용이 생겼다든지 혹은 자가용 자동차와 같은 상당한 규모의 상품을 구매할 때도, 회사 사정이 열악해 월급이 다음달로 미뤄졌을 때도(대기업이나 공무원은 이렇지 않겠지만, 중소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은 이럴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포함이 되겠군요. 그럴 때 신용카드 한도를 줄여놓거나 과소비를 억제한다는 명목 하에 카드를 만들지조차 않은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실 작정이십니까? 신용카드 한도만 충분하고, 다음 달 수입으로 커버할 수만 있다면 이런 일이 있어도 걱정할 필요가 없을텐데 말이죠. 가장 분통터지는 경우는 분명 다음 달만 되면 이런 비용을 모조리 갚고도 남는데 지금 당장 돈이 없어서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경우 아니겠어요? 결국 번거로운 절차를 밟아야 하는 은행대출을 알아보거나 지난 번에 말씀드린 대로 저축은행과 같은 제2금융권을 찾아가거나...아니면 더 내려가서 대부업체라도 찾아가셔야겠죠. 아니면 설마 몸에 이상이 생겼는데 혹은 먹을 밥이 급한데, 치료도 안하고 밥도 안먹고 추가소득이 생기는 다음달까지 버티려는 건 아니시겠죠? 다행히도 여러분이 제2금융권 혹은 대부없체들로부터 대출을 받아 해결한다 해도 여러분의 신용도는 중력의 법칙을 적용받아 지하로 추락할 겁니다. 참 억울하지 않나요? 다음 달이면 충분한 돈이 생기는데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나...

 

 

여러분, 당장 필요치 않을지라도 신용카드 한도와 마이너스 통장 한도는 많으면 많을 수록 좋습니다. 필요하지 않으면 일단 발급받아놓고 장롱에 처박아 놓든지 분쇄기에 갈아버리든지 하세요. 필요할 때 언제든지 쓸 수 있을 수 있도록 준비만 되면 됩니다. 물론 현금이나 체크카드, 직불카드보다 신용카드가 과소비를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은 상당부분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사용행태에 있어서 눈으로 자신의 돈이 지갑에서 나가는 걸 보며 지출하는 것과 카드로 쓱싹 긁는 것은 무게가 다르긴 하죠. 하지만 그건 신용카드를 사이버머니 취급하면서 펑펑 써대는 여러분의 경제관념이 잘못된 것이지 신용카드가 무슨 죄가 있나요. 눈에 보이지 않으면 그것은 존재하지 아니라고 믿는 여러분의 고루한 관념이 신용카드를 돈 취급하지 않고 과소비를 유발하는 건데 말이죠.

 

 

 저는 적어도 신용카드를 가져다니면서 사용하는 이점은 이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손을 이리저리 옮겨다니면서 온갖 세균에 감염된 지폐를 신주단지 모시듯 지갑에 넣고 다니지 않아도 되고, 걸어다닐 때마다 쩔그렁거리는 동전 때문에 짜증내지 않아도 됩니다. 나날이 간소화되고 여러 개의 물건이 하나로 합쳐지는 합일화에도 지폐보다는용카드가 더 부합하는 건 최트루입니다.

 

 

 부디 이 글을 읽고 여러분이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며 현명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그리고 다시는 신용카드 한도를 스스로 줄였다는 이야기를 남 앞에서 자랑스럽게 하지 않게 되었다면 침침해져가는 눈을 비비며 이 글을 쓴 보람이 있다 하겠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부디 행복하게 하루를 보내시길 빌겠습니다.

stress surplus로 가득찬 삶을 살아가는 stress surplus 올림.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이 글을 쓰기에 앞서 저축은행 영업정지로 인해 금전적, 정신적 피해를 입으신 서민게이레즈 및 성소수자 여러분께 삼삼한 위로를 전합니다.)

 

여러분의 돈은 오늘도 안녕하십니까?

 

커피 향기가 아주 쥑이는 커피전문점에서 여러분의 이마주름뿐만 아니라 뇌주름까지 펴주겠다고 덤벼드는 진상손님을 맞아가며 일을 하든, 졸기만 하는 애물단지 과외돌이를 공부의 길로 이끌어 사람 만들어보겠다고 노력을 했든 여러분께선 오늘도 다양한 일을 통해 돈을 버셨을 겁니다. 젊은이들 사이에선 심지어 듣도 보도 못한 시체닦이 아르바이트의 벌이가 짭짤하다는 이야기까지 돌고 있다니 말다했죠. 이처럼 세상에는 제가 알지 못하는, 다양한 돈벌이방법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번 돈을 관리하는 방법 또한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여러분께선 그렇게 피땀 흘려 번 돈을 어떻게 관리하십니까? 이상하게도 돈을 벌기 위해서 여러분이 들이는 노력의 엄청난 양에 비하면 돈을 관리하는 데 들이는 노력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귀차니즘이 목까지 차오를 땐 그냥 은행 입출금계좌에 그대로 쌓아놓기 일쑤고, 그나마 어릴 때 소위 싱크빅 가지고 놀아봤다 하시는 분은 이율 좀 높은 예적금상품을 찾으며 발품을 팔죠. 하지만 그래봤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은행주위를 맴돌고 있습니다. 마치 지구가 태양 주위를 벗어나지 못하듯이, 은행 주위를 벗어나지 못하는거죠.

 

 돈을 관리하는 수단으로 은행이 절대적으로 부적절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집중적으로 받은 은행몰입식 교육이 여러분의 금융지능을 단순하게 만들고, 때로는 이상한 길로 이끌기도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기업은행은 기업만 이용하는 은행이 아니고 대한민국 여러분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은행이라고 친절하게 알려주시는 6,70대의 아이돌 송해 할아버지, TV에서 많이 보시지 않았나요? 기업은행은 기업만 이용하는 은행이 아니라고 하네요. 물론 :) 농협이 농업종사자의 금융기관이 아니듯 기업은행도 기업들만 드나드는 은행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혹시

여러분께선 저축은행은 어떤 은행인지는 알고 계신가요? 저축하는 사람들을 위한 은행

 

  이제 슬슬 이하늘, 김재박이 시도때도 없이 나타나 현X스위스라고 외치는 광고를 떠올리실 시점이 되었나 봅니다. 그보단 더 아시는 분은 국민은행이나 신한은행 같은 곳보다는 예적금 금리 더 주는 은행 정도로 생각하지 않으실까 싶기도 하네요. 사실 왠지 증권, 종합금융이라는 상호는 어색하고 낯선데 저축은행은 그동안 받아온 은행몰입식 교육에 어긋나지도 않고 제법 친숙합니다. 게다가 금리도 더 쳐주겠다고 광고까지 하지 않나요? 자연스럽게 여러분은 푼돈이라도 더 벌어보겠다고 저축은행으로 발걸음을 옮기기게 될 겁니다. 하지만, 제발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하시기 전에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제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최근...은 아니고 시간이 꽤 흘렀지만 2011년 말에 이어 2012년 중순에 내려진 저축은행 영업정지명령으로 꽤 시끄러웠던 적이 있죠. 신문을 비롯한 각종 언론사에서도 그쯤 되어서야 저축은행들의 회계장부 조작이 있었다든지 특정 대주주에게 대출한도를 초과해서 불법대출을 해줬다든지 차명대출이 이뤄졌다는 소식을 처음 알았다는 듯이 대서특필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축은행이 부동산시장의 기나긴 침체 때문에 프로젝트 파이낸싱에 대규모로 투자를 했다가 돈을 홀라당 까먹었다는 소식도 쉬쉬하다가 구조조정이 시작된 즈음에야 흘려보내기 시작했죠. 근데 속어로 싹수가 노랗다는 말처럼 저축은행 또한 그 싹수가 시작부터 노오랬습니다.

 

 

 일수(日收)와 계가 바로 그 노오란 싹수입니다.

 

 일수란, 채무자가 채권자인 일수업자들에게 원금과 이자를 하루씩 쪼개서 갚아나가는 대출방식입니다. 신용불량자나 영세한 자영업자들, 그리고 사회초년생들은 담보로 할 자산도 없는 경우가 다반사이며 상환능력 또한 입증할 수 없기 때문에 은행 등의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통해 돈을 빌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옛날에는 더 그랬구요. 지금은 은행에서 돈을 못 빌리면 제2금융권인 저축은행으로 가거나 1566-친구친구로 노래를 부르는 대부업체로 향하지 않습니까? 옛날엔 일수업자에게로 갔습니다.

 

 조상들의 전통과 얼이 담긴 계는 많이 들어보셨죠? 그놈의 상부상조 정신을 강조한 나머지 아름다운 공동체 정신으로 끼리끼리 계를 결성하여 계주에게 일정금액을 납입하고 순번이나 추첨을 통하여 일정금액을 받아가는 계^^말입니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계주가 곗돈을 가지고 잠적하는 사건이 빈번히 발생하여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사실상 대출의 성격을 띠는 면도 없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 일제강점기에 <조선무진업령>을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후 계는 법제화되어 무진회사(고리대금업자)로서 경제적 영역에서 활동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네요.

 

 그리고 시간이 흘러 해방도 되고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전후 복구를 위해 자금이 부족한 상태에서 투자수요의 급증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정부는 이에 팽창적 통화정책을 전개했는데 그러자 폭발적인 인플레이션이 발생했죠. 결국 제도권 금융회사의 자금공급은 이를 뒷받침하기 불충분했고 기업들은 사업을 하기 위해 높은 이율의 사채까지 끌어다쓰면서 재무구조가 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제아무리 성장률이 높으면 뭐합니까. 고리대금업자가 그 이윤을 가져가는데. 한 마디로 부실기업으로 전락하는 헬게이트가 열린 거죠. 부실기업 주제에 어디서 돈을 빌리겠습니까. 다시 고리사채업자에게 쪼르르 달려가는 수밖에 없겠죠. 이런 사례가 급증하자 전경련이 일못하겠다고 징징징댔고, 정부는 1972년 긴급명령권을 발동하여 8.3사채동결조치를 내렸습니다.

 

 정부는 그 후 사채를 양성화하려는 목적에서 단기금융업법을 제정하여 기업 사금융회사를 제도권으로 편입하여 단자회사를 만들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서민 사금융회사도 재정비해서 상호신용금고를 만들었죠. 근데 그 상호신용금고의 전신이 일수놀이를 하던 계모임의 업그레이드 버전, 무진회사입니다. 이후 단자회사는 은행으로 전환되거나(하나금융회사, 신한금융회사 등) 혹은 종금사로 전환되어 IMF시기의 주범으로 지목되었구요. 상호신용금고는 IMF시기를 거치면서 부실화되고 주인이 바뀌거나 폐업하는 사례가 속출, 1997년 전국적으로 231개가 있던 상호신용금고는 2001년에는 121개로 줄어드는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줍니다.

 

 상호신용금고는 이렇게 앉아서 망하는 줄만 알았는데, 2002년에 금고업 활성화를 이유로 상호저축은행으로 명칭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저축은행의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은행이라고 하니까 다 같은 은행인 줄 알고, 높은 이자까지 덤으로 준다고 써붙이니까 사람들이 장롱 안에 모셔두던 예금도 가져다가 맡기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저 이름만 바꿨을 뿐인데... 대체 왜?

더군다나 정부가 예금자보호한도를 2000만원에서 5000만원까지 늘려주는 은혜를 베풀어 제1금융권과 동일하게 하시니 진짜 은행’과 다를 바가 있겠습니까.

 

 분명히 알아둘 건, 상호저축은행은 동네일수나 무진업을 하는, 무늬만 은행인 금융기관이라는 겁니다. 국민은행도, 신한은행도, 하나금융지주도 모두 똑같이 무진업에서 출발한 회사지만, 상호저축은행은 비교조차도 할 수 없는 질이 훨씬 떨어지는 회사라구요. 은행이라고 다 같은 은행이 아니라고, 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최근 일련의 사고가 터지고 나니까 저축은행 명칭을 변경해야 한다고 말하기 시작하는 기사가 또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금융당국이 2002년 상호저축은행으로 명칭을 변경해줄 때 몰랐을까요? 알면서도 망해가는 상호신용금고를 살리기 위해서 그런 조치를 취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도 소홀히 하다가 2011, 2012년 이런 파국을 맞이한 게 아닐런지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가네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또한 이번 사태의 책임을 분명히 져야 할 것 같은데 아직 별다른 소식이 들리지 않는 걸로 봐선... 이것도 그냥 지나가리라?

 

 

 왜 그런데 어떤 분들은 뭘 믿고 저축은행에 피땀흘려 번 돈을 죽자사자 가져다 맡기고, 자금보호도 안되는 후순위채까지 사는 걸까요? 돈 앞에선 며느리도 아내도 못 믿는 게 사람이라던데...그런 '용감한' 행동의 배경에는 저축은행의 역사를 모르는 무지도 어디엔가 있겠지만, 재테크가 숫자 몇 개에 달려있는 양 호들갑떠는 나쁜 습관이 몸에 배어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1금융권의 수신예금금리가 많아야 4%였던 그 상황에서 이자율 7%를 넘게 제공하는 저축은행의 상품은 분명 매력적인 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보다 안정적인 재테크수단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벌충할 수 있는데도 그런 노력을 하기는커녕 편하게 앉아서 돈을 얻으려 하는 사람이 많지요. 고작 얼마를 더 벌자고 위험한 곳에 돈을 넣는지 알고 싶지 않으신가요? 이해를 돕기 위해 구체적인 숫자들로 예시를 들어드리겠습니다.

 

 수신금리가 연4%인 수시입출금 상품에 100만원을 예금할 경우엔 이자소득제를 제외하고 대략 34,000원이 이자로 들어옵니다. 월마다 2,833원입니다. 이율이 연7%인 저축은행의 금융상품에 100만원을 예치하면 59,500원의 이자를 얻을 수 있겠네요. 4,958원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아직 카드에 대해선 설명을 해드리지 않았지만, 카드를 사용할 때 영화할인이나 패밀리레스토랑 할인, 놀이동산 할인 등의 소비지향형 할인을 제외하고 사용하는 금액 대비 3~5%를 할인받을 수 있다면 체리피커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혜택을 얻기 위해서 요구되는 실적이 20만원이라고 할 때 6,000원에서 10,000원을 절약할 수 있는거죠. 이는 연7%이자를 제공하는 저축은행 상품 기준으로 120~200만원을 한 달 동안 예치해야 얻을 수 있는 금액입니다.

 

 하지만 그 금액을 피킹하자고 한 달에 쓰지 않아도 되는 금액 5만원을 써야 한다면 그 5만원은 연7%대의 저축은행 상품에 1,003만원을 한 달 동안 예치해야 얻을 수 있는 금액입니다. 즉 아무리 높은 금리의 저축은행 상품을 찾아다녀도, 제대로 하는 카드피킹만 못하고, 그런 카드피킹마저도 절약에 당해내지를 못합니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가장 훌륭한 재테크수단인 절약을 내버려두고, 조그마한 숫자에 이토록 목을 매는 걸까요? 미시경제학에서 잘 알려진 포트폴리오 이론에 따르면 기대수익률과 부담해야 하는 위험부담률은 비례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아무리 예금보험을 감안하더라도 저축은행의 금융상품에 가입하는 행위는 예상되는 기대수익률에 따른 위험부담률의 적정선을 넘어가는 위험하면서도 비효율적인 선택입니다. 적어도 정치인 테마주나 선물, 옵션은 기대수익률이라도 높은데 저축은행은 내세울 것조차 없습니다.

 

 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로 부각되는 이러한 모습들은 되려 숫자에 집착하다보니 정작 재테크의 중요한 본질을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앞서 올린 글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생각하는 재태크의 본질은 성소수자에 국한하지 않고 우리 모두가 회색빌딩숲으로 대표되는 차디찬 현실 속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웰빙에 있습니다. 얼마 되지도 않는 금리 차이에 집착한 나머지, 안전하지 않은 선택지에 돈을 몰빵하는 행위가 과연 여러분의 웰빙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것만큼 저축은행 영업정지가 초래한 고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진은 없을 겁니다. 생업을 팽겨치면서까지 굳게 내려진 셔터 바깥으로 달려온 그들의 고통스러운 심정은 아직 겪어보지 않은 저로선 알 수 없는 그 무엇이고, 솔직히 앞으로 몰랐으면 좋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잃어버리고만 것들, 즉 피땀어린 돈과 시간, 정신적 스트레스는 기대했던 수익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사실을 짐작해내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우리 모두가 이르고자 하는 웰빙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요인들일 겁니다.

 

부끄럽게도 앞으로 제가 쓰고, 써야할 글들은 이보다 더 자그마한 이익을 다투는 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작은 금액의 이익만이 있는, 그만큼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알아야만 필요가 있는 정보가 아닐 가능성은 더더욱 높습니다. 아직까지 우리에겐 아직도 채워지지 않은 공백이 많이 남아있으며 그 공백을 채우는 데 시간을 들이는 편이 웰빙에 이르는 데 더 빠른 지름길일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부족하디 부족한 제 글을 통해서 그동안 놓쳐왔거나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들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맞이하고, 이를 통해서 여러분들이 웰빙에 이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나마 글 쓰는 목적을 달성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다시 강조드리지만, 여러분 모두 (부자 되셔서) 행복하게 사세요.

 

-stress.surplus로 가득 찬 삶을 살아가는 stress.surplus 올림-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MECO



저 개인으로서 첫 글을 드디어 엽니다. 어떤 명작으로 찾아 뵈어야 하나 고민을 거듭했지만 별 것 없다는 것, 우린 사실 이미 잘 알고 있죠. 알아요, 저의 의도는 몇 번인가의 왜곡을 거쳐 결국은 여러분에게 의미 있는 만큼만 받아들여질 것이란 걸요. 이를 감수하고서 글을 쓰는 것이야말로 진정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니까 글과 공부를 멀리하고 남자를 가까이 하면 좋습니다. (?)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시를 잘 읽는 편이 아닌 내가, 저런 시를 읽어 주자 전 남자친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걱정도 고민도 없이 집의 애물단지로 잘 자랐던 그는 상처에도 불구하고 행복하려 든다는 걸 감히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런 그가 나와는 너무도 다르지만 사랑스러워 보여 수줍은 뽀뽀를 날려주었던 것 같다.





이태원, 적어도 3년 전



주말 한정으로, 해가 진 후 이태원과 종로는 유난히 상처가 많은 세상이다.

우악스러운 태도로 세상을 향해 끼를 떨며 게이들은 누구나 자신에겐 남모를 어려움이 많았음을 간증한다. 간증과 푸념이 게이의 전유물은 물론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주된 정조이다. 아니, 그런 듯하다. 태동기에 있는 퀴어적 표현수단 – 글, 소설, 시, 영화 등 – 은 결국 추억, 아픔, 고난을 조명한다. 그리고 심지어 그 고난에 극복 또한 예정되어 있는지조차, 잘 모르겠다. 적어도 ‘기적’ 정도로는 예정된 고난의 극복이라 하기엔 심히 곤란하다.


일종의 피해의식 또한 존재하는 것 같다. 나는 게이라서, 성소수자라서 이토록 내 삶이 힘들고 팍팍한 것이라는 종류의 피해의식 말이다. 성소수자라는 말조차 움츠러든 것처럼 들린다. 퀴어라는 말을 써 보자. 그러나 말은 말일 뿐이다. 그 말을 신성불가침으로 싸고 돌며, 맥락의 결락을 지적하면 소수자 집단 내 x맨 정도로 취급 받는 현상은 매우 흥미롭다. ‘나는 비판 받을 정도로 강하지 않다’는 것이 결론이라면, 공격은 최선의 방어이므로 이런 전략을 택한 것을 탓할 마음은 없다. 하지만 그것으로 좋은가?


내가 게이라는 사실이 나를 얼마나 결정한 것인가? 어쩌면 나는 우연히 게이일 뿐이고 이성애자로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내가 만나는 사람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는 것만 빼면) 지금의 나와 동일한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는 비현실적이다. 나는 게이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성애 고착적 관념에, 몇 가지 논리적 맹점에 민감하다. 이는 나를 너무도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런데 그건 전적으로 내가 게이이기 때문일까? 즉, 다시 말하자면, 나는 게이이다, 그러므로 존재한다(Gay, therefore I am)라고 말할 수 있는가?


숙연한 존재론적 질문으로 보이지만, 술에 취해 종로 바닥을 굴러다니며, 혹은 이태원 클럽에서 흐느적거리다가 한 질문이 바로 이것이다. 나의 성지향을 어디까지 탓할 수 있을까? 우린 게이라서 힘들다는 그 푸념을 어디까지를 인정해야 하나, 이는 막막하지만 중요한 질문이다. 결국은 내가 해명하고자 하는 질문은 이것으로 끝나지는 않을지라도, 여기에서 시작한다.




What comes up when you google "Manifesto"



A Gay Manifesto(게이의 정치적 선언)이라는 거창한 글을 쓰고자 무익한 시도를 벌이면서, 제목에 짓눌리지도 않고 다른 이들을 짓누르지도 않는 글을 어떻게 쓰고야 말 것인가 고민한 나의 결론은 유보적이기 그지 없다. 이 글과 앞으로 올라올 글은, 세 가지 중에서 한 가지에 대한 글이다.



첫째, 당연하게도 정치적 견지에서 관용적이지 못한 분위기를 배격한다. 전통적인 정체성-정치(Identity-Politic)의 영역에 포섭될 수 있는 글이다. 나는 전형적인 인권 투사의 분위기를 내뿜을 생각은 전혀 없지만, 본질이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내 감에 이는 대한민국이 글감을 제공할 영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에 관해 쓰겠노라고 감히 약속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 앞으로 이런 글을 쓸 일이 드물지는 않을 것이다.


둘째, 우리 내부의 합의점을 찾기 위한 일종의 교통정리를 시도한다. 게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생각을 공유한다는 것은 얼마나 비현실적인 가정인가? 다양한 사람들의 사회적 연대라는 정치성의 본질을 일구기 위해 우리가 이루어야 하는 화해는 얼마나 많은가? 가령 동성애자로 산다는 것 자체가 싸움이었던 시절과, 사회도 분위기도 말랑말랑해진 이후의 기억만을 가진 게이들은 어떻게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가? 끼를 정체화한 게이와 자신 또한 끼를 무서워하는 게이는 어떠한가? 더 나아가, 게이 사회에 존재하는 소득/학력 격차는 우리 사회의 격차 이상으로 유의미한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시도하는 것은, 예측하건대 재미있는 결론을 불러올 것이다.


셋째, 전략과 전술에 관하여도, 결국은 논해야만 한다. 이성애자들에게 혹은 사회에 어떻게 우리의 진실을 제시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이다. 나의 세계관은 포비아의 설득 아닌 배제를 전제로 하지만, 최소한의 배제만이 정당화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동시에 전략과 전술을 빙자한 우리 안의 퇴행성을 배격하기 위한 글이기도 할 것이다. 이를테면 그들이 알아듣지 못하기에, 우리가 숨겨야 할 부분이 있다는 류의 주장들.




이 글은 낭독을 위한 선언문이 아니다. 혹은 글로써 자기완결적인 권위적 텍스트를 구성하지도 않을 것이다. 새로운 주장과 이론을 통해 퀴어-정치성의 저변을 확대하고자 하는 야심은 없다. 어떻게 보면 새로운 이야기란 존재하지 않는 기존 논의의 변용과 부분확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바라는 것은 이 이야기를 지금 이 시점, 이 공간에 다시 변주하여 어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형태의 영향일지는, 바라는 바가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아직까지는 나에게도 확실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결론: 세상은 공허하다. 그리고 무엇도 확실하지 않다.


안녕하세요 본격 불교퀴어철학자 MECO입니다... 죄송합니다. 이게 어딜 봐서 옆집 게이 형이 할 만한 이야긴지는 저도 잘...


다음 글에서 뵈어요. 그 때까지 모두들 평안하시길. 그리고 부디 다음 글로 뵐 수 있길. :)


Posted by MECO


호호, 기갈스러운 새벽이네요.

여러분, 잘 살아가고 계신가요?

  최근 제가 동아리방에서 인상깊게 읽은 만화책이 있습니다. BL만화가로 유명한 요시나가 후미의 <어제 뭐 먹었어>가 바로 그 작품이죠. 여기에 나오는 남자주인공이 게이라는 사실을 더 이상 설명해드릴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여튼 제가 그 만화책에서 깊은 인상을 받은 이유는 그 남자 주인공이 무척 현실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소재로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자신이 먹을 요리를 생각해가며 마트를 돌아다니고 그에 알맞은 저렴한 재료를 사는 모습들은, 적어도 게이들에 대한 로맨스판타지로 가득 차 있는 BL만화책에선 찾기 힘든 것 중 하나입니다. 대부분 욕구불만과 게이판타지에 가득 차 있는 허난설헌 언니들이 집필하는, 지랄수와 집착광공이 난무하는 야오이에선 더욱 나오기 힘들구요.

 

, 게이들이라고 뭐 다를 줄 알아요? 어느 기갈년 남친이 바람을 폈다는 가십이 폭풍처럼 티타임을 휩쓸고 지나가고, 퀴어퍼레이드에 놀러나갔다가 운수좋게도 남친 생긴 년 이야기가 테이블 위에 오르는 경우는 있어도 마트에서 주방세제 1+1할인행사 한다더라, 어디 은행 적금이율이 다른 은행보다 0.5% 높다더라는 이야기는 나온 걸 본 적이 없습니다. 나란 년, 어디 가서 이런 이야기로 게이들끼리 수다 떨어보는 게 소원인데 뭐 그리 어려운 소원이라고 아직까지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내가 언제 원빈 만나고 싶다고 말한 적도 없는데 왜 들어주지 않는거야? 쳇, 짜증나.영화배우들은 정작 많이 만나봤는데 말이죠.

 

각설하고,

 장미빛 환상도 우리 게이들 인생에 그 나름대로 기여하는 바가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다만 전 여러 가지 제약으로 인해 한 파트너를 오랜 기간 만나기 쉽지 않은 사람들 중 한 사람으로서 보다 현실적인 삶들로 꽉꽉 들어찬 세상을 체험하고 싶어합니다. 그런 점에서 <어제 뭐 먹었어>는 비록 허구로 구성된 창작물에 불과하지만 보다 현실적인 정보에 대한 제 욕구를 만족시켜 주었던 거구요. (그런 점에서 조반유리와 샤오즈키님은 반성하도록 하세요! 실생활의 지혜로 가득 찬 야오이를 쓰란 말이다아아아아!) 요시나가 후미가 만화책에서 요리라는 소재로 몸과 마음의 건강을 다뤄 우리 게이들의 삶을 현실 앞으로 얼마 간 끌어당기는 결과를 가져왔다면, 저는 앞으로 기본적인 재테크적 마인드와 상품들에 대한 글을 써서 어슴푸레한 수면 위로 게이들을 끌어올려 숫자들로 빼곡한 회색빌딩숲에 착지시키려고 해요.

 

게이, 더 나아가서 성소수자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어서 각자의 경제적 능력에는 큰 편차가 있을 겁니다. “돈에 쪼들려서 그런데 10만원 가지고 한 달 동안 도시락 싸들고 다닐 수 있을까요?”라고 질문을 수시로 웹에 올려서 이에 짜증난 나머지 제가 그냥 소림사 들어가서 벽곡단 먹으면서 한 달 동안 면벽수련하세요.”라고 조언을 드리고픈 생활고에 가득 찬 게이도 있겠죠. 반면에 제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새벽에도 강남에 위치한 고급스런 이자카야에서 애인으로 삼고 싶은 남자 앞에서 거들먹거리며 사케를 킵해놓는 부유한 게이들도 어딘가는 있을테구요.

 

저만 해도 아직은 대학생이라서 제대로 된 경제적 소득은 없는 한계로 큰 돈을 벌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글은 쓰질 못해서 괜히 죄송한 마음이 앞서네요. 그저 제 분수에 맞게 제가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은 글은 은행, 카드사, 보험 등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용할 수밖에 없는 금융상품 등을 고르고 이용할 때 자신의 이해관계에 충분히 맞는 상품을 고를 수 있는 안목을 기르는 데 그 목적이 맞춰져 있습니다. 또한 고기를 직접 잡아주기보단, 고기를 쉽게 잡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힘있게 꿋꿋하게 쓸 것입니다. 현실적 한계로 인해 얼마나 자주 밀도 있는 글을 쓸 수 있을지는 불투명합니다만, 적어도 이 글을 그만 두게 되었을 즈음엔 여러분도 저도 어느 정도 목적했던 바를 이루기를 바랄 뿐입니다.

 

여러분 모두 부자 되셔서 행복하게 사세요~

 

-stress surplus로 가득찬 삶을 살아가는 잉여게이 stress surplus 올림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6. 2. Sat.


Scene #1.  PM 2 : 40   을지로 어딘가.


'아... 메코형 졸 늦어...'    '지금 한 정거장 남았대요' 

'저기 염색한 머리 봐봐 ㅋㅋ'     '오..... 바지봐 완전 스키니해' 

'아까 3번 출구에 있던 L분 좀 귀엽지 않았슴? ㅋㅋㅋ' 






......

'아 저기 흰바지 완전 쩔어! 완전 모델!'      '어디!!!!!!'       '지금 지나갔어요'     '당장 다시 오라그래'

'근데 우리 GS25 앞에서 너무 기갈부리는거 같지 않아요?'  

'어...음... 괜찮아 다들 그럴거야 호호(...)'

(벨이 울린다)

 - 너네 어디에 있어?! 나 지금 밖으로 나왔는데 안보이네?

 '아. 저희 아래에 있어요 올라갈게요~' 





Scene #2.  PM 3 : 10 한빛광장 

BGM : 축제 장소에서 흘러나오는 적당한 음악과 인파들의 소음



'우어. 처음이다

'헐 저기 훈도시 봐....'        '오 마이...'  

'어? 안녕하세요'      '너도 왔구나 ㅋㅋㅋ' (조잘조잘)


'어머, 저기 00님도 오셨네'       '헐 옆에 남자분봐 대박

'....녹차(te verde), 저기봐'        '....' 

'저거 나시 맞아요?'   

'저게 무슨 나시니, 나시가 아니라 이브닝드레스지'




......

'대충 둘러본거 같으니까 카페에서 좀 쉬다 올까요'      '저기 할리스 위치가 좋겠다'       'ㅇㅇ'





Scene #3. 한빛광장 근처 카페  PM 3: 40


... (Blah Blah)

'형 남친 개귀요미네 부럽다 ㅠㅠㅠ'  

'이게 다 예전부터 내가 굿 카르마를 착실히 쌓아서 돌아온 보상 아니겠니?' 

'네?'

'응?'

'뭐?'

'이년들이....' 



.......

'자 우리 오늘 채터박스 이사 중 80%가 참석했으니 이사회라도 할까'      '안건이 뭔가요?'   

'잘 굴러가는데 뭐 문제되는 거 있나?'     '근데 왜?'      '(토달지좀 마 이년아)'




...... 

'맞다, 우리 이제 네이버 검색도 되요'     '수고했어요 잉여(stress surplus)님ㅠㅠ'          


'난 이거 검색어 유입이 제일 신기해 ㅋㅋㅋㅋ'                                                          

'아 그거 알아요? 야생형 피부글 올라가자마자 바로 추천 10개까지 올라간거?'     '역시 게이들이란 후훗'  

'언니, 언니의 글은 우리에게 너무 소중한 빛과 소금이에요, 저 언니가 알려준 이후부터 선크림 매일 바르고 다님'      

'퀴퍼 글도 써야할텐데 누가 쓰지?'     '난 이런거 쓸 자신 없는데..

'(손을 잡으며) 언니는 지금 하시는 것 만으로도 충분해요. 그럼 녹차가 좀 쓸래?'     

'아오 내가 왜요'





.......

'이제 퍼레이드 시작하려나보다'       '그럼 우리도 나가볼까요'      






Scene #4 청계천 앞 도로  PM 4 : 30

BGM : Born this way - Lady GAGA, 몰라- 엄정화, 난 괜찮아 - 진주, Step - 카라 등

 





- 종로구 마스코트(X)  '아이샵 마스코트(O)'







Scene #5. 한빛광장 PM 5 : 50

BGM : 너랑 나 - 아이유, The Boys - 소녀시대



'너랑 나랑은 지금 안되지~'

'ㄲ꺄아안란알날ㅇㄹㄴ 000님 색기 어쩔 ㅠㅠㅠ'     '장난 아니네요 군계일학이네'    

'대박....'





Last Scene. 식당 PM 6 : 20


(Chatterbox 멤버들, 유쾌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며 식사)






A dark change.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