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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문(發文)







오바마케어(Obamacare), 혹은 환자 보호 및 전국민 의료보험화 법안(Patient Protection and Affordable Care Act; PPACA)이 미 연방대법원에서 살아남았습니다.


필진 호랭군이 별도로 다루겠지만, 오바마케어 판결의 본질은 미국민 전원에게 의료보험을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한다는 ‘이상’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논쟁에 있었죠. 정작 저 법안이 이 목적을 성취하는 데 얼마나 실용적인지, 예산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등의 실제적인 문제와는 동떨어진 논의였지만요.






이 이상에 찬동하는 사람들은 이번 결정에 나름 환호를 하고 있을 것이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선에서 꼭 이겨 폐지하고 만다고 벼르고 있을 겁니다.


오바마케어의 이상과 현실이 어떻게 다른지에 관해서는 저 대신 호랭군이 언젠가는 다루게 될 겁니다. 제가 오늘 해보고 싶은 이야기는 약간 다른 지점에 있죠. 저는 이번 사건을 판결한 미 연방대법원(The SUPREME COURT of the United States)에 관심이 좀 있습니다.




보수 다섯과 진보(liberal)[각주:1] 넷의 미 연방대법원의 정치적 지형에서 존 로버츠 연방대법원장(CHIEF JUSTICE ROBERTS)이 진보측 편을 들어 오바마케어의 생명을 연장하리라는 예상을 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겁니다. 흥미로운 지점이죠.

저는 이 글에서 미 연방대법원이 이 사건을 다루게 된 역사적 배경과, 이번 판결이 연방대법원의 기존 정치적 지형에 비추어 볼 때 어떤 함의를 지니는지에 관해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이 귀결로써 가능하다면 로버츠 대법원장이 ‘변심’한 원인에 대해 나름의 해명을 시도하려고요.

그러나 시작하기 전에, 먼저 설명할 몇 가지 전제가 있습니다.



미 연방대법원(US SUPREME COURT)과 사법심사(Judicial Review)




미국의 사법구조는 상당히 독특합니다. 우리와 달리 검찰은 지방 별로 잘게 쪼개져 있으며 검사는 선거로 뽑히는 정무직입니다. 주(州) 차원에서 지방법원-항소법원-대법원이 존재하고, 이와는 별개로 연방 차원의 지방법원-항소법원(순회법원)-대법원이 있습니다. 그 이외에 각급 특수법원이 존재하고요.

하지만 이 정점에 있는 것은 두말할 것 없이 연방대법원이며, 다른 법원의 판사가 단순히 ‘Judge’라고 불리는 반면, 연방대법원의 여덟 대법관은 ‘JUSTICE’이라고 불리지요. 직업의 호칭이 ‘정의’라니, 뭐 나름의 로망이 있겠습니다. 그리고 연방대법원장은 ‘CHIEF JUSTICE’로 통하는데, 이쯤 되면 크고 아름답죠?



이번 사건을 판결한 현 로버츠 대법원장 시대의 대법관들

: 뒷줄 위로부터, 소토마요르(Sotomayor), 브레이어(Breyer), 알리토(Alito), 케이건(Kagan)

토마스(Thomas), 스칼리아(Scalia), 로버츠(Roberts), 케네디(Kennedy), 긴즈버그(Ginsberg)



1803년 Marbury v. Madison 사건 이후로 미 연방대법원은 단순히 의회에서 제정된 법을 해석적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해당 법의 합헌성(constitutionality)을 적극 판단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를 사법심사(Judicial Review)라고 하지요.

사법심사 기능을 고려할 때, 미 연방대법원은 우리나라의 대법원보다는 헌법재판소에 가까운 기관일 겁니다. 실제로 연방대법원에서 문제되는 대부분의 사건은 헌법조항이 문제가 되는 사건이지요.[각주:2]


최초의 사법심사(Judicial Review) 사건, Marbury v. Madison



이러한 사법심사제도에 대해 두 가지 관점이 존재합니다. 하나는 사법심사제도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 대법원이 단순히 법을 해석적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의회가 정한 법의 합헌성(constitutionality)을 적극적으로 판단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는 전통적인 견해입니다.

이 견해에 따르면 사법심사제도는 민주주의와 헌법 가치의 최후의 보루이며, 사법의 독립성과 법원의 정치적 중립성은 최우선가치이지요. 이 가치를 관철하는 방식은 사람에 따라 다소 다를 수 있겠습니다만.

더 나아가 이런 견해는 재판에 정해진 하나의 ‘답’이 있으며, 재판관의 역할은 헌법과 민주주의가 예정한 이러한 답을 찾아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롭게 선고하여 사회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이라고 봅니다. 매우 전통적이며, 사법을 생각하였을 때 우리의 직관에도 합치되는 내용이지요.



그러나 이쯤 와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민주주의의 원리에 의해 볼 때, 국민의 대표인 의회에서 만든 법안을, 선출되지 않은 아홉 명 중 다섯 명의 동의로 없애버린다는 것이 과연 민주적일까요?[각주:3] 외압을 받지 않는 독립된 대법원이 의회의 법안을 사법심사하는 과정이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사실상 그 과정은 의회의 법안보다 더 반민주적이고 다수결에 따르지 않게 되는 결과를 불러온다는 것이지요.

물론 우리 모두들 알고 있죠. 국민이 선출한 대표인 국회에서도 항상 국민을 위한 일만 하지는 않는다는 점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의미에서 대법관들 또한 국민을 위해서 일한다는 보장이 없지 않냐는 겁니다. 그리고 헌법에 합치된다는 말과 다수결 민주주의가 항상 일치하는 것도 아니고요. 예를 들어 소수자를 보호[affirmative action]하는 것은 헌법에 합치되겠지만, 다수결과는 조금 거리가 있을 수 있지요?


Marbury 사건에 관한 역사적 배경을 다룬 예일 로스쿨의 샌포드 교수의 글입니다.


반다수결주의 딜레마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헌법학계에선 많은 진보적인 관점들이 생겨났습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이 사법심사를, 그렇게 엄정한 과정으로 보지 않는 것이지요. 역사학적 관점을 도입하여 분석했을 때 사법심사가 처음 도입된 Marbury 사건은 오히려 대법원이 행정부와 의회의 눈치를 본 사건이었다는 의견이 유력합니다.[각주:4]

많은 경우, 사실상 대법관들은 ‘눈치’를 보게 된다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그런 대법관을 임명하는 것은 대통령과 상원이며, 탄핵할 수 있는 것은 하원이고, 또한 사법적극주의가 퇴조한 이후로 대법원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을 자신들이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에 큰 심리적인 부담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지요.[각주:5] 비록 타당하지 않을지라도 반다수결주의 딜레마와 같은 이론이 제기되는 사회 분위기를 고려할 때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일, 혹은 선거로 판가름이 날 일을 대법원이 나서서 판가름해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사고방식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보수 vs. 진보: 연방대법원의 사상변천사




대법관들은 사상적 경향을 분명히 가집니다. 법관의 정치적 중립성이 명시되어 있다 하더라도 결국 대법관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자리이니까요.

우리나라의 대법관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회가 인준합니다. 헌법재판관은 대통령, 국회, 대법원이 각 세 명씩 지명하여 국회의 검증 절차를 거치게 되어 있지요. 이 두 역할을 다 하는 미국의 대법관은 대통령이 상원의 검증과 동의에 의해 임명하는 절차를 거치고 있습니다. (미국 헌법 제2조) 그러므로 필연적으로, 임명하는 대통령의 정치적 지향과, 임명 당시의 의회의 의석 수가 매우 중요하지요. 대통령이 임명했을 때 통과를 시켜주느냐는 의회에 달려 있으니까요.

또 하나 고려할 요소라면 미국의 대법관은 (사임하지 않는 한) 종신직이란 점입니다. 임기가 언제까지로 예측되질 않으니, 똑같이 8년 간 대통령을 하면서도 한 번도 대법관을 임명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여러 명을 한 번에 임명하는 경우도 있겠지요.[각주:6]

아무튼 이런 연방대법원이 한 때는 사법적극주의를 기조로 삼아 적극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챙겨주었던 시기가 있습니다. 1954년부터 68년까지 재직한 워렌 대법원장 시기(WARREN Court)가 대표적이지요. 그러나 이러한 기조는 많이 퇴보하였고, 렌퀴스트(William REHNQUIST) 대법원장 등을 거치면서 미 법원은 많이 보수화되었죠.



WARREN Court 시대의 대법관들



각설하고, 최근 들어 미 대법원의 정치적 지형이 이동한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오코너(O’CONNOR) 대법관의 퇴임이었는데요. 1981년 레이건에 의해 임명된 오코너가 보수적 성향일 것이란 추론이 쉽사리 가능했지요. 하지만 오코너는 상대적으로 보수화된 대법원에서도 몇몇 문제에 있어 진보 대법관들과 시각을 같이하였습니다.[각주:7]



최초의 여성 대법관, 산드라 데이 오코너(Sandra Day O'Connor)


대법원에 네 명의 진보 대법관과 네 명의 보수 대법관이 있고, 중간에서 오코너가 판결의 향방을 가로지르는(Swing-voter) 대법관이 되면서 일각에서는 렌퀴스트 대법원장 시대(REHNQUIST Court)가 아니라 오코너 시대(O’CONNOR Court)라는 비아냥까지 나왔습니다. 대법원에 가면 변호사들이, 어느 정도 확고부동한 다른 대법관들이 아닌 오코너 대법관을 설득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는 양상이 반복되었으니까요. 이런 오코너가 퇴임하고, 후임으로 아들 부시 대통령이 알리토(ALITO) 대법관을 임명하게 되자 이제는 과거 보수 성향 대법관으로 평가되었던 케네디(KENNEDY) 대법관이 새로운 스윙 보터가 되었습니다.

오바마 행정부 들어와서 진보 성향의 수터(SOUTER)와 스티븐스(STEVENS) 대법관이 사임하고 후임으로 케이건(KAGAN), 소토마요르(SOTOMAYOR) 대법관이 지명되었지만, 진보대법관의 수는 4명으로 고정되어 있고 스윙 보터인 케네디 대법관은 오코너가 있었을 때는 보수 인사로 평가 받은 사람이지요. 사법부가 보수 성향이고, 공화당에 유리한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높으며, 무엇보다 워렌 대법원장 시대의 사법적극주의가 많이 퇴색된 시대라는 것은 분명합니다.[각주:8]

이런 상황에서 소위 ‘오바마케어’가 헌법합치여부를 시험받게 된 것입니다.



오바마의 건강보험법안, 시험을 받다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 조언자인 현 시카고 시장 람 이마뉴얼(Rahm Emanuel)은 이번 판결이 난 이후 “오바마가 나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라는 발언을 하였습니다. 이마뉴얼은 건강보험법안을 오바마 행정부의 핵심 의제로 선정하는 것을 반대하다가 영부인 미셸과 갈등을 빚었다는 소식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건강보험법안이 대법원에 갔을 때 합헌 판결이 나기가 쉽지 않으리란 전망이었죠.



결과적으로 오바마 행정부는 예상치 못한 승리를 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네 명의 진보 대법관과 의견을 같이 한 로버츠 대법원장이 주효한 역할을 하였지요.



판결문은 크게 두 층위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우선 건강보험법안의 내용 측면에서, 전국민에게 건강보험의 보유를 의무화하는 것은 헌법이 의회에 부여한 권한 이상이라는 것이 첫 번째 논지입니다. 행정부가 이를 합리화하는데 사용한 두 가지 헌법 조항 중에서 상업 조항([Interstate] Commerce Clause)[각주:9]은 무언가를 ‘하는’ 것은 규제할 수 있어도,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을 규제할 수는 없다고 부정하였고, 다른 하나인 필요성-합리성 조항(Necessary and Proper Clause)은 이미 있는 권한으로부터 파생된 권한을 합리화하는 데에만 사용할 수 있어 새로이 창설된 건강보험의 보유라는 의무를 합리화할 수는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 부분만 본다면 건강보험법안을 대법원이 부정한 것으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후의 부분에서 대법원은 추가적인 논리를 구성하여 건강보험법안의 많은 부분을 합리화시켜 줍니다.

두 번째 논지에서 대법원은 건강보험을 보유할 의무가 건강보험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것과 같다고 인정하였습니다. 상업 조항으로 합리화되지 않을 때를 대비한 행정부의 예비적 주장을 인정한 것입니다. 헌법은 상업 조항과 별개로 정부에 세금을 징수할 권한을 인정하고 있고, 대법원은 지금까지 최대한 헌법에 합치되는 해석을 합리적인 해석으로 인정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 법안의 내용을 통해 볼 때 세금으로 인정할 만한 근거가 충분하며, 헌법에서 특별히 규제 되는 직접세(Direct Tax)로도 인정받지 않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논지에서 대법원은 또한 65세 이상 노인을 위한 메디케어 확대방안에 따르지 않는 주의 메디케어 지원을 중단한다는 조항은 위헌 소지가 있지만, 의회의 의사를 고려할 때 이 조항을 제외한 나머지 법안은 계속적으로 효과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일부를 부인 당하였음에도 건강보험법안의 핵심은 살아남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건강보험법안의 형식적 측면에 관해 행정부는 세금에 관한 소송은 우선 세금을 납부한 다음 환급을 요구하는 방식으로만 이루어져야 한다는 과세보류명령금지법(Anti-Injuction Act)에 의해 이런 형태의 소송은 금지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실제로 건강보험을 가지지 않아 벌금을 낸 사람이 우선 벌금을 내고 나서 그 다음에 세금을 돌려달라는 형태로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에 대해 다수의견은 법문의 표현이 ‘세금’이 아닌 ‘벌금’이므로, 표현에 따라 헌법에서 말하는 ‘세금’인지 여부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의회법인 과세보류명령금지법의 적용여부는 법문에 따라야 하므로 ‘세금’이 아닌 본 사건에 과세보류명령금지법을 적용할 수는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헌법학의 논리에 따르면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얼핏 보면 짤방과 같은 논리처럼 보이죠. 그만큼 대법원이 고심하였단 뜻입니다.



판결의 분석



이번 판결의 다수의견을 작성한 것은 로버츠 대법원장입니다. 평소 진보측 대법관의 좌장 격인 긴즈버그 대법관은 별개의견을 작성하여 몇 가지 부분을 보충하였지만 다수의견에 역시 합류하였습니다. 나머지 세 진보 대법관은 사안에 따라서 다수의견 혹은 긴즈버그의 별개의견에 합류하였죠. 그리고 물론, 반대의견으로 나머지 네 명의 보수측 대법관들이 똘똘 뭉쳤습니다.

이 세 가지 의견 축에서 단연 특이한 것은 보수 대통령에 의해 지명된 로버츠 대법원장입니다. 그러다 보니, 일부 인지부조화를 심하게 겪은 공화당 지지자들은 이와 같이 로버츠가 세뇌당했다거나, 아니면 이보전진을 위해 일보후퇴했다고 주장하기에 이릅니다.[각주:10]





아까 말씀드렸던 ‘사법심사에 관한 전통적인 관점’을 따른다면 로버츠 대법원장의 이러한 결정을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그에 따르면 법안에 관한 사법심사는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니까요. 정답이 무엇이라 보는 관점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너무도 명확히 보수측의 관점에서 사건을 봐온 로버츠 대법원장이 뜻을 바꾼 이유를 알 수는 없을 겁니다.

반대로 조금 전향적인 태도를 가지고 본다면 그의 결정을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우선, 진보 행정부에 법원을 손댈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한 움직임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연방대법원은 매우 정치적인 조직이고, 대법관들은 정치적인 부담을 가지기 싫어한다는 견해에 따른다면, 대법관들이 가장 피하고 싶은 것은 자신들에 대한 탄핵(Impeachment)일 것입니다. 그리고 대법관에 대한 탄핵권을 가지고 있는 하원은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지요. 이번 대선과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지금보다는 유리한 의석수를 가져갈 것이 확실한 만큼 오바마케어 자체를 폐지하는 대신, 조금씩 조금씩 잘라내서 오바마케어 자체는 살려주는 편이 유리하다는 정치적 판단을 내렸을 수 있지요.

역시 선거가 목전인데, 선거 결과로 해당 법안을 통과시킨 행정부와 의회에 관한 심판이 내려지기 전에 굳이 법원이 나서서 이 부분에 대해 과단성 있는 결단을 내릴 필요는 없다는 판단 또한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어떻게 보면, 진보의 긴즈버그와 보수의 스칼리아 대법관[각주:11] 둘이 대립하는 형세로 고착화되어 가던 대법원에서 상대적으로 경험이 부족한 로버츠 대법원장[각주:12]이 자신의 입지를 고려해 편을 들었다는 것 또한 유력한 해석이 될 수 있을 겁니다. 특히나 스칼리아의 그림자 아래에서는 영영 ‘보수의 아이들’ 중 하나로 밖엔 자리매김할 수 없을 테니까요.





앞으로



우선 산을 하나 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건강보험법안은 많은 위기를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정치적인 부분을 차치하고, 법리적으로만 봐도 법안 자체가 폐기되지는 않았지만 핵심적인 강제조항을 삭제당하였으니까요.




또한 상업 조항의 적용이 부인되고, 세금 논리가 인정받게 된 것도 장기적으로 보아서는 부담입니다. 오바마 행정부는 증세를 혐오하는 공화당 지지자들의 감정을 고려하여 그 동안 건강보험 미보유자에 주어지는 부담은 ‘벌금(penalty)’일 뿐이지 ‘세금(tax)’이 아니라고 주장해왔기 때문입니다. 연방대법원이 이 부담을 세금이라고 규정한 이상 이제 다시 정치의 영역에서 많은 논쟁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물론, 선거로써 검증 받는 길고도 지리한 과정이 남아 있지요.

그 과정에서 미 연방대법원은 정치적 중립과 대법관들의 정치성, 사법적극주의와 사법소극주의의 사이에서 표류하면서 법원의 역할과 사법심사의 한계에 관한 고찰을 계속적으로 해나갈 겁니다. 이번처럼 굵직한 사안에 관해, 250여년 전에 만들어진 헌법의 텍스트와 현대적인 적용 맥락을 따져나가면서요. 이후에도 이러한 내용을 더 많이 소개할 기회가 있었다면 좋겠네요.



끝까지 읽으셨다면 아래의 손가락 좀… _(__)_ 더 많은 분들이 읽는 데에 도움 됩니다.

  1. 앞으로 이 글에서는 미국식 진보=민주당 지지=liberal을 ‘진보’로 표현합니다. [본문으로]
  2. 연방대법원은 들어오는 모든 사건을 다루는 대신 상고허가제도(writ of Certiorari)에 의해 당사자가 연방대법원에 탄원(petition)을 하면, 사건을 대략적으로 살펴 다룰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판단하죠. 구체적인 수치로는, 2009-2010년 회기 동안 들어온 8085건 중에서 연방대법원이 약식으로 처리한 91건을 제외하고 정식으로 검토해 판결을 내린 사건은 77건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들 중 헌법조항이 문제가 되지 않는 사건은 극히 일부의 경우 연방대법원이 원심법원이 되는 경우 정도밖에 없다는 것이 통계적으로 증명되었으며, 학계에서는 연방대법원이 사실상 헌법재판을 위해 존재한다고 까지 표현합니다. [본문으로]
  3. 비켈(A. Bickel)이라는 학자는 이를 반(反)다수결주의 딜레마(Counter-Majoritarian Dilemma)라고 표현한 바 있습니다. [본문으로]
  4.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별도의 글로 찾아 뵙겠습니다. [본문으로]
  5. 전문가가 아닌 의원들이 만든 법의 의도를 파악하여 사법이 적극적으로 그 가치를 관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이 사법적극주의입니다. 이 입장에서는 또한, 헌법을 해석할 때 원문 그대로보다도 취지를 현대에 맞게 재해석하는 것이 진정 헌법에 합치하는 사법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비원전주의와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혹은 사법은 헌법이 말하는 바를 그대로 적용할 뿐이고, 선출되지 않은 사법부의 자의적인 해석은 안 된다는 주장 또한 설득력을 가질 겁니다. 이는 사법소극주의이며, 또한 헌법에 그대로 따르자는 원전주의이기도 하지요. [본문으로]
  6. 혹은 자신의 의사를 대법원에서 관철하고 싶다면 선거를 이겨 의회 다수의석을 차지하여 법원 조직에 관한 법을 개정해 대법관의 수를 늘리는 방법도 있겠지만, 뉴딜 정책이 위헌이라는 사법심사 결과를 받은 루즈벨트 대통령이 이런 방법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이후로 아무도 감히 시도하려 들지 않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7. 예를 들어 낙태와 같은 이슈에서 오코너는 대법관으로 지명되기 전에는 반대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려 고심했지만, 결국 낙태를 기본권의 일부로 보는 시각에 동의하였지요. [본문으로]
  8. 현재 대법관 중 가장 강성 보수주의자일 스칼리아(SCALIA) 대법관의 경우, 사법이 적극적으로 국가의 어떤 가치를 이루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사법적극주의를 배격하며 사법은 소극적으로 주어진 일에 충실할 것이며, 건국자(Framers)들이 의도한 헌법의 원문에 충실해야 한다는 원전주의자(Originalist)이기도 합니다. 토마스 대법관은 스칼리아에게 상당 부분 동조하고 의지하고 있으며, 부시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알리토 대법관과 로버츠 대법원장은 이 정도까진 아닐지라도 상당히 공화당에 우호적이며, 이는 케네디 대법관에게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지요. [본문으로]
  9. Ollie’s Barbeque 사건 등에서, 연방대법원은 연방정부에 주(State) 경계를 넘나드는 상업활동을 규제할 권한이 있음을 인정하여 많은 경우, 심지어 사안의 본질이 상업활동 자체가 아닌 인종차별 등에 있는 경우에도, 주의 자치권을 넘어서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본문으로]
  10. 물론 민주당 지지자 중에서도 만만찮게 로버츠가 전국민에게 의료보험을 준다는 숭고한 이상에 감화되었다거나, 법안이 너무도 명백히 옳아서 반대할 수 없었다는 아노미 상태를 겪는 부류가 있습니다만, 멍청한 이들은 어느 쪽에나 존재하는 법이니까요. [본문으로]
  11. 아래 코끼리를 타는 그림에서도 보이듯이 두 대법관은 개인적으로 매우 친한 친구입니다. http://www.usatoday.com/news/washington/2007-12-25-ginsburg-scalia_N.htm 참조. [본문으로]
  12. 그는 전임 대법원장 렌퀴스트의 로클럭 출신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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