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국 의료보험의 ABC : 개털날리는 미국 의료보험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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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부터1920년대까지
< 씨오도어 루즈벨트 대통령 >
1912년 : Theodore Roosevelt 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 선거유세를 할 때 부터 전국민 의료보험과 여성,노동자들의 인권 향상을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또한 "What Germany has done in the way of old-age pensions or insurance should be studied by us, and the system adapted to our uses"라고 말을 했지만, 그 선거에서 우드로 윌슨한테 졌지요.
여기서 잠깐!
루즈벨트 대통령을 이름을 딴 거의 전세계 사람들이 알만한 물건이 있는데요, 과연 뭘까요?
정답은 테디 베어입니다. 봉제 곰인형말이죠.
< 테디베어와 테디 대통령 >
테디 베어의 테디 (Teddy)는 미국 제 26대 대통령 시오도어 루즈벨트의 애칭인 테디에서 나왔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는 곰사냥을 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곰사냥을 즐기는 것때문에 테디베어가 된것은 아니지요.
곰인형에 테디라는 이름을 붙히게된 계기는 1902년으로 돌아가봐야합니다. 1902년에 루이지애나 주와 미시시피주가 경계선을 둘러싸고 심각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기나긴 대화를 통해서도 합의가 이루어 지지 않았기에 루즈벨트 대통령이 해결을 하러 직접 남부로 내려갔습니다. 대통령은 남부지방에 머무르는 동안에도 취미인 곰 사냥을 나갔습니다. 하지만 그 사냥에서 곰을 한 마리도 잡지못했습니다. 그러자 보좌관들이 어쩔줄 모르다가 1 새끼곰을 산 채로 잡아와서는 사냥하는 분위기를 내도록 총으로 잡으라고 권유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은 새끼곰을 불쌍히 여겨 2 총 쏠것을 거절하고 발길을 돌렸다고 합니다. 그 에피소드 이후 사람들은 루즈벨트 대통령이라고 하면 곰이 떠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03년 독일 슈타이프사에서 만들어진 곰인형이 미국 마켓에 첫 선을 보였는데, 루즈벨트 대통령의 애칭을 딴 '테디베어'라는 이름 3으로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테디베어는 미국 마켓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되었답니다.
< 달라스 >
1929년 : 달라스 (Dallas) 4에 있는 Baylor라는 이름을 가진 병원에서 처음으로 teaching union(교사 노동조합)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 계약의 내용은, 병원비를 선불로 내고 치료를 받는 방식이었는데요, 이것을 근간으로 미국의 건강보험의 형태가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193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 HMOs 를 풍자하는 만화 >
1931년 : 5년간 국가에서 자금 지원을 받은 Ray Lyman Wilbur 의사의 리서치를 통해, 미국 가정들은 매주 $5 5 혹은 매년 $250달러 6 의 돈을 건강보험에 사용한다는 것을 알게 됬습니다. 또한 오클라호마 (Oklahoma)주의 Elk 도시에서 레바논 이민자인 Michael Abraham Shahid 의사는, 농업인 협동 의료조합 (Farmers' union Co-operative Health Association), 즉 HMOs 라고 불리는 그룹을 만듭니다.
< 블루 크로스와 블루 쉴드의 문양 >
1932년 : 대공황이 일어나면서 비영리 단체들과 생명보험 회사들을 중심으로 병과 치료에 대한 여러가지 보장상품이 개발되었습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비영리 단체는 블루크로스 7 와 블루 쉴드 가 있습니다.
< 사회 보장법을 담당하는 부서입니다. >
1934년 : 루즈벨트 대통령이 대공황 중간에 사회 보장법 (Social Security Act) 과 실업보험 (unemployment insurance)과 대국민 건강보험을 법으로 만들려고 했지만, 입법부에서는 콧방귀만 뀌었습니다. 특히 미국 의료 조합 (AMA,American Medical Association)의 강한 반대를 받았죠. 의사들의 자유를 침해할 뿐만이 아니라 의사와 환자 관계를 건드린다는 것이 그들의 반대 이유였습니다.
< 1937년도에 발행된 1센트 >
1938년 : 의료비를 선불로 내는 것이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초기 건강 보험의 광고는 이랬습니다. "의료비가 하루에 3센트 8!" 하지만 이때도 마찬가지로 실직자나 66세 이상의 노인들은 보험을 들지 못했습니다.
1945년 : Harry S. Truman은 대통령이 되자마자, 미국 의회를 소집하여 health care관련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트루먼 대통령은 10년짜리 플랜을 통해 전 국민 의료보험실시와 병원의 전국적인 증설, 그리고 의료인력 100% 확대를 실시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트루먼 대통령 역시, A.M.A와 다른 비난여론들의 사회 의료 보장제도 (Socialized Medicine)에 대한 견제를 이기지 못했고, 결국 계획은 의회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1948년, 대통령직을 연임하면서 다시 시도를 해보았지만, 한국 전쟁이 일어나서 결국 포기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1946년 : 미국 연방의회에서 도심과 교외지역 간 의료에 대한 접근성의 차이를 파악한 후, Hill-Burton Act 를 가결 하였습니다. 이 법안은 대다수의 교외지역에 병원 증설을 위한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이 Act는 전 병원에서 'Charity Care' (병원에 기부되는 자선금으로 의료비가 지불됨) 을 제공해야 하고 인종, 종교 그리고 국적에 따른 차별을 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Separate but equal'을 하는 시설들을 허가 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내의 인종차별
1970년 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인종차별이란 겉으로 드러나는 일이었습니다. 목화 경작으로 유명한 남부지방들은 특히나 심한편이었구요. 백인들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활동하기 이전까지 ' 분리되었지만 동등하다 (Separate but Equal) 라는 논리로 인종차별을 정당화하며 차별을 멈추지않았습니다. 모든 시민들이 사용하는 화장실, 버스와 같은 공공시설에서조차도 흑인과 백인의 구역을 분리했으며, 흑인들에게는 백인들보다 더 나쁜 환경을 제공했습니다.
1949년 : 미국 대법원이 전국 노동 관계 위원회 (National Labor Relation Board)가 의료보험을 단체교섭 사항에 포함해도 좋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1950년대 부터1960년대까지
1951년 : 동업 단체 중 하나인 의료보험 의원회 (Health Insurance Council)의 통계에 따르면 7700만명 (1950년도 미국 인구수는 1억 3천1백만명)이 보험을 들었다고 합니다.
< 케네디 대통령이 Madison Square Garden에 입장하는 것 >
1962년 : 케네디 대통령이 사회보장 수혜자들의 혜택에 대해 Madison Square Garden에서 처음으로 티비 방송을 했습니다. 2만명이 넘는 청중앞에서 케네디 대통령은 "이것은 의사들을 반대하는 캠패인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책임감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캠패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케네디 대통령 역시 의료계의 무시무시한 로비를 이겨낼 수 없었습니다. 결국 전 국민 의료보험 법안은 의회에서 죽어버리고 맙니다.
미국에서의 로비스트의 힘은 무엇보다 막강합니다. 로비스트가 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인맥입니다. 자신의 인맥을 사용하여 법률을 제정하는 의원들, 그리고 그 뒤에서 실제적인 법안을 작성하는 보좌진들을 아무런 제재없이 자유롭게 만날 수 있어야합니다. 영향력이 큰 인물과 바로 연결되는 로비스트라면 어떨까요? 감이 오나요? 거물(big-shot) 들과의 접근성을 확보하는 것이 로비스트로서 성공하는 지름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인적 네트워크가 탄탄해야 크게 될 수 있는 직업인만큼, 갓 정치에 입문한 새내기들이 로비스트가 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대부분이 전직 거물급 의원이거나 고위 관료들 곁에서 일했던 보좌진들이지요. 이로인해 미국 정치의 많은 부분들이 타락해갔습니다.
< 마틴 루터 킹 주니어 >
1965년 : 1964년, 민주주의의 물결이 의회까지 밀려들어왔습니다. 시민 평등권 운동 (Civil rights movement) 뿐만이 아니라 사회개혁세력, 그리고 노동조합의 힘이 강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린든 존슨 (Lyndon B. Johnson) 대통령의 캠페인의 최우선위가 결정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 프로그램이 창설 되었습니다. 이 두가지 복잡한 프로그램들은 65세 이상의 노인들뿐만이 아니라 빈곤층과 맹인과 장애인들에게 보험혜택이 생긴것입니다. 오늘날 메디케어는 4500만명이 넘는 수혜자를 가지고 메디케이드는 6000만명이 넘는 수혜자가 있습니다.
1968년 : 많은 미국인들이 메디케이드와 메디케어를 통해 보험 혜택을 받기 시작하면서, 국가의 의료비용 지출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의료비용 지출의 증가와 동시에 정치적 논쟁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 돈을 어디다가 쓰는거냐! 나라 망하게 하려는거냐! 이러면서 서로를 깐거죠..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 리처드 닉슨 대통령 >
1971년 : 의료비용의 급증으로 인해 의료보험이 또다시 미국 정치판위에서 태풍의 핵으로 서게 되었습니다. 닉슨 (Richard M. Nixon) 대통령은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고용주들은 고용인들에게 최소한의 의료보험을 보장하는 법안을 상정했습니다. 이 법안은 직장인들에게 의료보험을 제공함과 동시에 사보험회사들의 경쟁상대를 만들어 시장경쟁을 유도하는 방법이었죠. 그러나 당시 상원의원 이던 에드워드 케네디 (Edward M. Kennedy)가 그 법안 대신 "Health Security Act"라는 다른 법안의 제정을 추진하였습니다. 이 법안은 전 국민들이 건강 보험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는데, 너무 현실성이 없고, 닉슨 대통령을 반대하려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에 제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법안을 기점으로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의 의료 법안 상정에 대한 노력이 시작되었습니다.
1973년 : 닉슨 대통령이 375 million dollar (현재 1.9 trillion dollar 즉 2.2조원 가량 합니다)를 지원하는 H.M.O.s Law (Health Maintenance Organizations Act)에 서명을 하였습니다.
1974년 : 미국 의회에서 종업원 퇴직소득 보장법(Employee Retirement Income Security Act 혹은 ERISA)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법안은 주법을 따른 건강보험을 대기업 자체에서 만들 수 있도록 하는 법입니다. 이후, 많은 주에서 법안 분쟁과 환자의 건강권 소송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 지미 카터 대통령 >
1976년 : 지미 카터(Jimmy Carter)는 대통령으로 선출된 후 대국민적 의료보험을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깊고긴 불황 (recession)의 수렁에 빠지게되면서, 이러한 시도는 또다시 실패하고 말았지요. 하지만 경기가 안 좋았기 때문에, 국민 의료보험이 재조명이 되기 시작했죠.
1986년 : 미국 의회에서 "Emergency Medical Treatment and Active Labor Act"가 통과하였습니다. “Consolidated omnibus Budget Reconciliation Act” 역시 통과되었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실직이 된다해도 18개월 동안은 그 회사의 의료보험을 적용 받을 수 있게 하는 법안입니다.
COBRA 란? (쉬이익 하는 뱀말고요..혹은 님들이 자주 봤다는 코리건이 출현한 비디오회사도 아니고요..)
20명 이상의 근로자가 있는 직장에서는 COBRA라는 이름의 의료보험을 제공 합니다.
COBRA의 가입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1. 20명 이상의 고용인이 있는 직장에서 고용주가 제공하는 그룹 건강 보험에 가입했던 사람으로써 직장을 그만 두게 되었거나 풀 타임에서 파트타임 직원이 되어 보험 혜택을 못 받게 된 사람
2. 고용 중 사망한 직원의 배우자나, 배우자가 실직, 배우자의 고용시간이 풀 타임에서 파트타임이 된 경우, 또는 현재 배우자가 메디케어 수혜자가 되는 경우, 그리고 이혼, 별거 중인 배우자가 있어도 COBRA의 가입조건에 충족됩니다.
3. 부양 자녀로써 자격 요건인데 배우자의 자격 요건은 배우자의 자격 요건과 같습니다.
1988년 : 로날드 레이건 대통령과 의회의 만장일치를 얻은 첫번째 major health care bill이 통과하였습니다. "Medicare Catastrophic Coverage Act"는 의료비 때문에 길거리에 나앉게 된 많은 노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었습니다. 메디케어에 가입된 환자들의 의료비 청구에 상한제를 적용해 보호하는 방식이었지요. 하지만 노령인구들이 다른 보험을 통해 얻는 일반적인 보장에 비해 특별히 뛰어난 것도 아니고, 근데 비용은 이중으로 들게 만들고, 서민층 노인들은 오히려 등골이 휘게 되었지요. 과도한 보험료가 고정지출이 되니까요. 대신 부유층에게는 약간의 돈만 더 내고 쏠쏠한 용돈을 챙길 수 있는 제도로 인식되었습니다.
1989년 : 미국의 많은 부유한 노인네들이 MCCA에 대한 혜택을 받으면서 여러가지 이유로(보험, 연금 등등) 돈을 중복수령하는 상황이 일어나자 -레이건은 의료문제를 개인문제로 취급하고 마켓원리를 도입해서 의료비가 급증하는 이딴 병맛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레이건 개객기- 많은 단체들에서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존나게 놀란 의회에서는 이 법안을 폐지 해버렸지요. 11
1990년대 부터 2008년까지
< 빌클린턴의 스켄들관련 풍자만화 >
1993년 : 우리의 ㅅㅅ덕후 아니 힐러리의 와이프 아니 남편으로 알려져있는 빌 클린턴이 다시한번 이 마의 의료개혁 법안에 손을 대기로 합니다. "포괄적 의료보험제도 (Managed Competition"의 형태로 구상을 하고, 힐러리 누나 (Hillary Rodham Clinton)을 주도로 개혁을 이끌어 갔습니다. 하지만 의회에서는 너무 비공개적으로 일을 추진하는 클린턴을 두고 깠지요.
1994년 : 결국 ㅅㅅ덕후 클린턴 대통령의 스캔들로 백악관이 뒤집혀 Health Security Act는 통과를 못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섹스스캔들 뿐만이 아니라 여러가지 interest group(이익단체) (의사들, 보험회사들, 제약회사들)의 엄청난 로비에 의회가 분열되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미디아에서 국민 의료보험 내용을 다루기보다, 정치적 균열 때문에 발생한 진흙탕 싸움질만 보도했기 때문에 국민들의 지지도 최대로 이끌어내지 못했습니다.
1996년 : Health Insurance Portability and Accountability Act가 재정되었습니다.
1997년 : 아동 건강 보험 시행안 (Children's Health Insurance Program)이 통과되었습니다. 현재 800만명이 넘는 아이들이 이 제도의 혜택을 받고있습니다.
2002년 : 1990년도 중반부터 안정회 되있던 건강보험의 가격이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경제가 탄탄하지 못해서 대다수의 직장인들도 이 무시무시한 보험료를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2003년 : 조지 부시 대통령이 "Medicare Modernization Act"를 사인했습니다. 이 법안은 Part D라는 새로운 섹션을 만들어 메디케어 수혜자들을 확장시켰습니다. 하지만 이 법안은 "도넛 구멍"이라는 불명예 스러운 이름을 가지기도 하는데요, 왜냐하면 Part D는 사 보험회사에서 독점적으로 서비스하기 때문에 financial gap가 엄청 나기 때문입니다. 12
2006년 : 2006년 의료보험에 미국 개인당 7400달러 이상을 부담하며 총 2.2 trillion달러를 사용한다는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또한 5월달에 메디케어의 Part D인 prescription drug 프로그램(의사의 처방에 의해 약을 제공하는 제도)이 시작했을 때 여러가지 옵션들때문에 혼란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13
2008년 : 당시 상원의원이었던 버락 오바마는, 경제 위기라는 타이밍을 잘타서 4600만명의 uninsured(보험미가입자)들의 마음 뿐만이 아니라 실직자가 될 것같은 사람들의 마음까지 사로잡는 의료보험 개혁법을 주장했습니다.
2009년 : 그리고 오바마가 대통령직위에 올랐습니다.
흐하 여러분 오랜만에 이렇게 글을 써보네요 ㅜㅜ
한동안 너무 바빠서 글을 별로 못썼어요..
기다리신분들은 없을듯하지만 흑흑 그래도 이렇게 글을 써서 올려봅니다!
재미없지만 그래도 약간의 주석을 곁들여가면서 약간 부드럽게 만들어봤는데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여러분 사랑합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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