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ess.surplus로 가득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애정어린 눈길로 봐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621일 개봉예정인 김조광수 감독의 두 번의 결혼식 한 번의 장례식을 보았습니다.간단하게 말하면, 온 몸이 붕 뜨는 듯한 유쾌한 부유감을 가득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김조광수 감독의 예전 작품 '친구 사이?'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두 번의 결혼식 한 번의 장례식'(이하 '두결한장') 또한 그 특유의 유쾌함을 여전히 듬뿍 가지고 있습니다. 전작이 사랑하는 두 청년 사이에 존재하는 풋풋함과 천진난만함을 통해 웃음을 피워냈다면 이번 작품은 전반적으로 농밀한 Gay-culture 코드가 그 웃음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죠. '샹년' '우정', '평때박마' 등의 아슬아슬한 수위를 오가는 단어도 대화 중간에 서슴없이 삽입되어 있기 때문에 보고 있으면 지금 제가 있는 곳이 영화관에 있는 희멀건 스크린 앞인지 게이들로 우글거리는 술집인지 헷갈릴 정도로 현실감이 상당합니다적어도 작년 대히트를 쳤던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에서 느낄 수 있었던 유쾌함이 누구의 덕인지 알 수 있겠더군요. (김조광수는 영화 조선명탐정에서 제작자로 참여한 바 있습니다.) 

 김 감독의 손을 거친 배우 중 스타가 안 된 사람이 없다.”는 말이 흰소리만으로 들리지 않는 것처럼 김조광수 감독이 얼마나 탁월하게 연기지도를 하는지  두결한장에서 실감할 수 있습니다. 퀴어를 다룬 영화가 영화계에 나올 때마다 언론 인터뷰에서 기자들이 배우들에게 동성애와 관련된 민감한 질문을 왜 던지는지 이해가 갈 정도로, 게이로 분한 남자배우들은 진짜못지않게 능숙하게 기갈을 부리고 끼를 떨어댑니다. 지난 3월에 개봉했던 김경묵 감독의 퀴어영화 줄탁동시에 출연한 염현준, 이바울 씨가 행사에서의 대담 중에 이 역할을 맡아 베드신을 연기할 때 얼마나 고생했는지 토로한 적이 있는데, ‘두결한장’ GV 중엔 그런 말이 나오지 않은 걸로 보아 배우들이 연기하는 데 큰 수고로움은 없었나 봅니다. 우열을 가리자는 의도는 아니지만 김조광수 감독의 탁월한 연기지도를 드러내는 지표가 아닐까 생각되는군요.

 그 동안 김조광수 감독이 만든 소위 퀴어영화들은 지나친 미화와 비현실성을 지적받기도 했는데, 더티하게까지 들리는 속어들이 난무하고, 영화 내내 웃음이 끊이질 않는 게이들의 기갈들을 보면 그 약점을 보완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김조광수 감독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해서 비껴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본인이 만드는 영화가 퀴어 영화(queer cinema)인지 아니면 막연히 동성애에 대해 갖기 쉬운 성적 판타지-직접적으로 지칭하자면 야오이-상업적 요소를 가미하여 영상화한 영화인지 , 그리고 그게 정말 바람직한지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김 감독에게 직접 물었으면 다음과 같이 선선히 대답해줄 것 같기도 하네요. 그 특유의 목소리로 내가 만들 영화는 모두 잘 팔리는 영화야!” 라고 하지 않으실지:) 하지만 감독 본인이 게이라는 점을 제외하곤,김조광수 감독이 지향하는 퀴어영화가 넷상의 허난설헌이 저마다의 솜씨를 뽐내며 써내려가는 야오이와 어떤 지점에서 차이가 있는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

장면마다, 그에 조응하는 사운드마다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 있습니다. 사람 한 명이 지나가기에도 비좁은 계단에서 두 남자주인공이 처음 마주치고, 이윽고 지나가면서 몸에 걸려 귀에서 이어폰이 떨어지는 장면, 그 가운데 들리는 조야하면서도 과장된 사운드. 비단 이 장면뿐만 아니라 그 후 여러 장면에서도 음악은 영화로의 몰입을 도와주기보단 산만하게 만드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음악이 영상의 이해에 아무런 이해를 주지 못하고 그저 희극적인 분위기만을 두드러지게 하는데 그칩니다.

 

 세련되지 못한 맛이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영화 초반부, 장소를 설명하기 위해 형형색색 네온사인으로 반짝이는 게이바 'Whynot'의 간판으로 카메라를 포커싱하는 샷이 중간에 2번 나오는데, 그 두 번 모두 멍하니 Whynot을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Ctrl+C, Ctrl+V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두 장면이 다르지 않고 동일합니다. 사건이 일어날 장소에 대한 사전정보를 주려는 의도는 알겠는데, 아무리 동일한 장소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라고 해도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 보여줄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감독으로써 사용할 수 있는 영화적 언어가 고갈되었는지 의심마저 들게하구요.

가장 큰 단점으로는 도저히 작위적이고 개연성이 부족한 이야기구조와, 리고 이야기와 붕 떠 있는 영화분위기를 들 수 있겠군요. 일단 두 남자주인공이 만나서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 지나치게 생략되었습니다. 외나무다리... 비슷한 계단에서깃이 스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가 어느새 보고 있는 장면은 서로의 입을 탐하고 있는 모습이죠. 그 전까지 관객들이 받은 정보는 두 남자주인공이 서로의 외모를 마음에 들어하고 있다 정도까지인데, 그걸 넘어 감독이 관객들에게 두 사람이 사랑하고 있단 사실을 직접 주입하는 느낌이 듭니다.두 남자가 서로에게 어떤 무게를 지닌 사람인지 설명이 부족하다보니 두 남자주인공이 갈등하고 있을 때조차도 몰입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주인공을 결말까지 이끌고 가기까지 사건과 갈등을 숙련된 솜씨로 배치하지 않고 일정 시점에 이르러 손을 놔버려 느닷없이 갑작스럽게 폭주한다는 점도 안타깝습니다. 무난하게 위장결혼을 꾸려가던 게이-레즈비언 커플의 평화를 박살낸 것도, 남자주인공으로 하여금 직장이기도 한 병원 한복판에서 커밍아웃을 하게 만들었던 친구의 죽음도 모두 우연에 의해 일어납니다. 이야기가 탄탄하게 짜여있지 못하고 중심골자를 이루는 사건들마저도 우연에 기대어 진행되다 보니 영화 전체가 매우 불안정하고 설득력조차 떨어지더군요.

또한 후반부에는 누구나 앞으로 들려올 남주인공의 대사를 예측하고  "난 못 가, 아니 안 가."를 대신 흥얼거리게 될 정도로 이 영화의 스토리는 상당히 진부한 구석이 있습니다. 굳이 게이들의 이야기까지 갈 필요도 없고 남녀를 주인공으로 하는 사랑이야기에서도 빈번하게 등장하는 대사를 이 영화는 제법 뻔뻔스럽게 읊어대네요. 결국 영화도 사람 사는 이야기고, 사랑을 주제로 하는 이야기인지라 어느 정도의 예측가능성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지만 '거대한 위기 앞에서 절망에 몸부림치다 못해 현실에서 도피하는 주인공과 이를 대하는 그의 연인' 클리셰는 제아무리 벽장게이의 이야기로 변용되었다고 해도 지루하긴 마찬가지죠. 더군다나 감독 혹은 작가의 입맛대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위해 이야기가 아무런 개연성도 찾아볼 수 없고 위적인 느낌마저 든다면 더더욱. 김조광수 감독 개인의 성적 환타지에 의존하여 영화를 꾸려온 한계점이 여기서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을 수 있는 작품 전반에 깔려있는 밝고 웃긴 분위기가 종종 이야기와 충돌을 일으킨다는 점입니다. 진지해져야 할 대목에서조차 그 특유의 쾌활한 분위기로 인해 이야기와 분위기가 서로 조응하지 못하고 붕 떠있는 느낌을 줍니다. 김조광수 감독이 시종일관 밀고나가는, 작품 전체에 깔려 있는 유쾌한 웃음과 유머는 영화를 먹기 쉽게 떠먹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걸 넘어서 작품 전체를 잡아먹는 결과를 가져오는군요. 작품 전체를 희생시켜서 그 자리에 남은 건 웃음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이 과하고 헤픈 웃음이 영화를 cheesy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저뿐만인 걸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조광수 감독의 장편데뷔작인 두결한장여전히 매력적인 영화로 발전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로를 사랑하는 두 남자주인공이 앞뒤로 거리를 두고 걸어가면서 사랑하는 마음을 듬뿍 담말로는 하지 못하고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 그 어떤 로맨스의 주인공보다도 풋풋함과 아름다움이 느껴집니다. 김조광수 감독이 의도한 것처럼, 생기있는 발랄한 사랑 앞에서 성별을 구분할 생각조차 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남자 주인공이 술에 만취해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상태로 택시에 탔을 때조차 이성애중심적인 질서로 대표되는 택시기사의 눈치를 살피며 친구 석이를 밀어내야 하는 장면은 치밀어오르는 짜증 이상으로 적나라하게 호모포비아들로 가득찬 사회를 보여주죠. 사실상 친구를 죽음으로 내밀고선 모른 척하는 사람 앞에서 온몸이 저릴 정도로 절절하게 분노를 담아 커밍아웃을 외치는 남자주인공의 모습에선 인형의 집에서 당당하게 뛰쳐나오는 로라의 모습을 보는 느낌마저 드는군요.

다시 되돌아가서 말씀드리자면 김조광수 감독이 장편으로 첫 데뷔작을 내놓은 바로 지금, 스스로 결정을 내릴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영화를 만들 것인지,그리고 자신이 만든 영화로 어떤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내놓을 것인지도요.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