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Team Chatterbox입니다.


오늘은 외부필진의 투고글로 찾아뵙습니다. 절대로 저희가 글을 조금이라도 덜 쓰고 싶어 이러는 건 아니지만 Chatterbox는 독자 여러분의 투고를 항상 기다리고 있답니다. :) 심지어 연애상담의 대가로 글을 뜯어내기도 합니ㄷ... 혹시라도 관심 있으신 분들은 트위터에서 저희 필진들 혹은, @chatterbox_gays를 찾아주셔요. 아니면 chatterbox.gays@지메일로 이메일을 보내주셔도 됩니다.


아무튼, 각설하고! 오늘 글을 보내주신 분은 트위터의 반바지 님입니다. 해외에서 항상 즐겁게 살고 계신 듯한 분이지요. 가끔 새벽반 트위터에서 멘붕을 하기도 하시지만... 어딘가 특이하지만 정말 흥미로운 연애 이야길 써주신 반바지님께 이 자릴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Homo Surplus의 독자분들도 저희가 이 글을 처음 읽으며 느꼈던 설렘과 즐거움을 느끼시길 빌며, 글을 시작해볼까요.





안녕하세요. 저는 채터박스 팀은 아니지만 객원 블로거(?)로서 글을 투고하게 된 반바지라고 합니다. 항상 눈팅만 하면서 좋은 글, 유익한 정보가 가득한 글 보다가 갑자기 직접 참여를 하자니 부담도 되고 워낙 지식의 폭이 좁은 사람인지라 많이 고민했었어요. 하지만 잠도 안오는 이 새벽! 소소한 저의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합니다.


저는 2009년에 낯선나라 캐나다로 유학을 오게 되었어요. 여기 오기 전까지는 엄청나게 보수적인 국가 싱가폴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다 온 까닭에 오기전에 혼자 굉장히 떨리면서도 말로만 듣던 서양의 자유를 만끽할 생각에 비행기 타기 전날 잠도 못자고 들떴던게 아직도 생생하네요. 캐나다에 도착한 뒤 첫 한 주는 학교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하며 바쁘게 보냈어요.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았던건 매 년 신입생들을 위해 학교에서 기획하는 “Single and Sexy”라는 뮤지컬. 이 뮤지컬은 대학생활뿐 아니라 사회에서 큰 문제가 되고 있어서 다루기 더욱 힘든  강간, 호모포비아, 인종 차별, 자살, 거식증, 식욕부진, 임신, 에이즈와 HIV, 가정폭력 그리고 alcoholism과 마약중독을 두시간 안에 알기 쉽게 풀어냅니다. 거친 토픽을 명쾌하게 다뤄내는 학교 뮤지컬팀의 실력에도 개인적으로 놀랐지만, 극장 안의 그 수많은 신입생들이 모든 문제에 같이 공감하며 박수치는 모습이 저에겐 일종의 컬쳐쇼크였어요. 싱가폴에 있을때는 공공연하게 호모포빅한 발언을 하는 아이들이 태반이였고, 학교에서도 아무조치도 취하지 않았던 광경에 이미 익숙해져있을 때였거든요. 항상 나만은 누구보다도 오픈마인드인 사람이라고 자부하며 살아왔던 당시 19살의 반바지였지만, 정말 저의 가치관을 통째로 뒤흔들어 놓은 사람을 캐나다에서 만나게 됩니다.


2011년 여름, 저는 캐나다 버프(?)를 듬뿍 받아 지금까지도 가족처럼 가장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 그리고 고등학교때 가장 친했던 친구들에게 이미 커밍아웃을 하고 (심지어 부모님한테도 들켰어) 그 어느때보다 숨김없고 당당(하다고 생각했던)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어요. 그때 친구집에서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친구네 집에 있던 룸메이트가 갑자기 저희보고 오늘 밤 게이클럽에 가자고 하는겁니다. 지금 알게 된 거지만 현재 애인이 그때 그 방에서 놀고 있었는데 저랑 엮이려고 친구보고 저 데리고 가자고 한거래요. (부끄) 그렇게 해서 저는 난생 처음 서양게이(?)와 함께 클럽에 가고…. (중략)…. 정확히 1년 뒤부터 정식으로 사귀게 되었어요. (이미 글이 너무 길어져서 확 끊음)


자 그럼 이제부터 제가 백인과 사귀면서 느낀 점들에 대해 글을 써볼게요! 





<여태까지 고작 인트로였다니>




***주의: 이 아래로는 때때로 염장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제 남자친구 블레이크는 캐나다의 온타리오 주 해밀턴에서 태어나 온타리오 밖으로 나가본 적도 없는 캐나다 토박이 촌놈이에요. 그래서 정말 캐나다스러운 관념만이 머리에 박힐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랐고, 그렇기 때문에 조금 더 캐나다인의 general한 마인드셋을 대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 글의 소재로 삼았어요. (그렇다고 저를 “남자는 ~~~ 여자는 ~~~ A형은 ~~~” 따위의 글이나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없기)




1. Acceptance가 아닌 당연함



제가 인복이 많은지라 여태껏 제가 커밍아웃한 친구들은 한명도 빼놓지 않고 저를 응원해주고 사랑해주고 있어요. 물론 이 친구들이 정말 눈물나도록 고맙지만, 상당수의 친구들은 “나는 너가 게이지만 너를 친구로 인정하고 앞으로도 응원할 것이다” 아니면 “나는 너가 고자라도 내 친구임은 변함이 없다” 등의 [내가 이렇게나 좋은 친구인 것이다!!!]하는 뉘앙스가 없지 않아 있는데, 캐나다에서는 그와 다르게 딱히 커밍아웃이 충격적인 소재가 아닌지라 거꾸로 “야, 그얘기 들었냐? xxx가 호모포비아래” “헐 뭐 그런 애가 다 있냐” 하며 극소수의 호모포빅한 사람들이 비웃음과 멸시를 당하는 환경이에요. 


블레이크와 사귀게 된지 고작 두 달만에 블레이크의 할머니 생신파티에 초대를 받게 되어서 매우 떨리는 마음으로 가게 되었어요. 그때 이모 삼촌 안가리고 다 모인 자리여서 왠 처음보는 아시안이 와서 어색하진 않을까 걱정도 했는데, 원래 알고 지내던 가족처럼 반겨주고, 심지어 초등학생인 블레이크 사촌동생도 새로운 오빠가 생겼다며 좋아해주는 게 정말 신세계였달까. 어릴 때부터 제대로 된, 확실한 성교육과 윤리교육을 받으며 자란 이 나라 사람들에 비해, 제 자신이 얼마나 생각보다 꽉 막힌 사고방식을 여태 가지고 살았는지를 느끼게 되었어요.


예전에 길을 걷다가 남자친구가 갑자기 손을 잡아서 저도 모르게 흠칫하면서 누가 볼까 무서워 손을 뺐던 일이 있는데, 그때 저는 단지 한국과 싱가폴에서 숨어살던 (;ㅅ;) 습성이 튀어나와서 그런건데 블레이크는 제가 자기를 별로 안 좋아해서 손을 안 잡은걸로 알고 엄청 상처 받았거든요. 왜냐면 자기한테는 밖에서 숨기고 다니거나 눈치볼 이유가 하나도 없으니까, 제가 사람들 시선 때문에 그랬다는 건 생각조차 못한 거에요. 같은 이유로 한국게이들의 통칭 “게이스북”도 여태 블레이크는 그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밖에서도 손 꽉꽉 잡고 다녀요 ^.^)




2. 꾸밈없는 사람



제가 여태 사귀었던 애들이 하나같이 가식적이었던 건지, 아니면 블레이크가 유난히 이런건진 모르겠지만. 이렇게 사람이 편할수가 있나? 할 때가 있어요. 저를 실제로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제 성격부터가 우선 가식적인 건 정말 질색하는 타입이여서, 이미지 관리를 안합니다. (사실 관리할 이미지가 없음) 그래서인지 실제로 “너무 애인 같지가 않고 친구 같기만 해”서 차인 적이 있습니다. (진짜) 그 당시 감히 저를 찬 나쁜 놈에게 그때의 의미가 무엇이었느냐 물어보니 제가 자기 앞에서 너무 꾸밈없이 편하게만 해서 자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네요. (사실 아직까지도 그게 무슨 개소리인지는 이해가 안 됨)


물론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제 주변에 있는 한국 애들은 한결같이 저보고 “이미지 관리 좀 해라” “피부관리좀 해라” 등 별 듣기 싫은 소릴…. 실제로 얼마 전 아는 게이동생에게 “형은 남자친구 앞에서 그렇게 막 놔버려도 남친이 괜찮아 해?” 라는 말을 들었는데, 생각해 보니 이 질문 한 동생 포함 제 친구들은 목소리 톤 낮추기부터 시작해서 걷는 포즈 신경 쓰고, 배나와 보일까봐 배에 힘주고 다니고, 심지어 아침에 얼굴 부은거 못 보인다고 일어나자마자 집에 간다던지….


(쓰면서 혼자 생각해 보는 건데, 이것도 일종의 peer pressure가 아닐까 싶음. 한명이 갑자기 심하게 자기 관리하고 그러니까 옆에 있는 애들도 덩달아서 안 뒤쳐지려고, 응?) 라고는 하지만 사실 내가 그렇게 관리할 성품과 인물이 못됨.


저는 원래도 뭐 그렇지만, 남자친구가 저에게 있는 그대로 다 보여주고 또 저를 있는 그대로 좋아해주니까, 그런 종류의 스트레스(예를 들면 방구참기)가 사라진 것 같아서 굉장히 만족하고 있어요.


하지만 저도 제 나름 한국 살때 주워먹은 습관이 아예 없지는 않은지라(예를 들면 거울만 보면 앞머리 옆으로 샥샥 넘긴다든가, 구레나룻 정리를 한다든가), 아무리 노력해도 아직까지도 완벽히 제 자신에게 편해지지 않은 것 같아요. 제가 저런 짓 할때마다 블레이크가 옆에서 “니가 아무리 그렇게 머리 정리하고 해도 밖에 나가면 다 모르는 사람들이고 그 사람들은 니 앞머리가 5대5든 앞머리가 없든 신경 하나도 안 쓴다”라고 하면서 비웃습니다…. 얘는 머리도 안말리고 나가요.


(게다가 특히 제가 사는 곳이 대학가라서 새벽이 되면 잠옷만 걸쳐 입고 맥도날드 사먹으러 나오는 애들도 허다함….)



아무튼 저는 그러한 이유들로 머리칼 한 가닥 한 가닥 정리할 시간을 아껴서 데이트를 1분이라도 일찍 나가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자신감을 가지게 된 거에요.



3. 야! 내가 자연인이다!



제가 외국물 좀 먹었다고 훈계하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커플들, 아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스마트폰에 대한 의존도가 과할 정도로 높은 것 같아요. 작년 이맘때 저랑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친구 사이인 여자동창이 캐나다에 놀러왔었어요. 저 보러 돈 모아서 비행기까지 타고 왔다는 생각에 너무 기쁘고 들떠서 친구가 오면 어디를 데리고 가야 할지, 뭘 해야 할지 엄청 고민하고 고민했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당시 캐나다에 도착한 친구에게 많이 실망했었어요. 도착하자마자 첫 질문이 “여기 와이파이 비밀번호 뭐야” 였기도 하고, 어디를 데리고 가도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를 못하고 지금 현재 옆에 있는 저보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카톡 친구들과 대화하기 바빴으니까요. (이러니까 되게 뒷담화 같지만 아직도 제가 정말 아끼는 친구에요 친구야 미안ㅋㅋㅋ 사랑해) 그 당시에는 저보다도 블레이크가 많이 언짢아해서 저도 못마땅한 와중에 친구 커버해준다고 땀 뻘뻘 흘리고…. 아무튼 그래서 그때는 친구가 너무 미웠는데. 한국에 부모님 뵈러 잠깐 들렀는데 길거리에 제 친구 판박이가 수백명이 돌아다니는 거에요.


한국이 워낙 기술이 빨리 발전하는 나라라 제가 1~2년에 한번 돌아올 때마다 많이 놀라긴 하지만, 저번에 갔을 때의 놀람은 솔직히 말해서 별로 좋지 않은 광경이었어요. 사람 대 사람의 교류가 거의 사라지고 커피집에 마주앉아서 서로 스마트폰만 바라보는 기괴한 모습. 핸드폰과 인터넷을 이 사람들에게서 빼앗아버리면 서로 무슨 얘기를 할까요?


캐나다는 땅덩이가 워낙 넓은 탓에 사람의 발길이 아직 닿지 않은 곳을 찾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덕분에 그 동안 블레이크와 바닷가 조용한 별장에도 가보고 깜깜한 숲 속에 텐트치고 캠핑도 가봤어요. 바닷가에 횟집, 조개구이집과 시끌시끌한 밤문화가 주인 한국 문화도 물론 정말 즐겁지만, 이렇게 그저 “쉬는 것”이 목적인 여행은 너무나 오랜만에 와보는 기분이라 감회가 남달랐어요.


같이 처음 캠핑을 간 게 사귄지 아직 2달정도 밖에 안 되었을 때라(심지어 그중 3주는 제가 한국에 들르느라 같이 있지도 못함), 서로의 비밀을 다 알지도 못했고, 지금만큼 편한 사이도 아니었어요.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제가 캠핑 가기 1주일 전부터 이유 모르게 블레이크에게 너무나 화가 나서 소리도 지르고 집에서 내쫓기까지 하고 (블레이크 말로는 그때 정말 헤어지려고 마음까지 먹은 상태였다고) 서로 관계가 나빠질 대로 나빠진 상태였는데, 해가 지고나니 하늘에 별빛과 작은 모닥불 주변 말고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둘만의 공간에서 비로소 처음으로 서로 heart to heart의 대화를 할 수 있었어요. 일과 학교에 쫓기지 않는, 서로 말고는 신경 쓸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숲 속에서 밤새 대화를 하고 나니 “아 내가 이제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정말 알 수 있겠다” 하는 안정감이 들었다고나 할까요.


아마 그때 그 대화가 없었다면, 지금 저는 이 글을 쓰고 있지도 못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사랑하는 사람과 재미있는 영화, 공연을 보러 다니고 맛집도 함께 찾아 다니고 하는 것도 정말! 정말! 멋지고 달콤할테지만, 가끔 정말 쉬고 싶을 때 마음 놓고 기댈 수 있는 애인도 좋다고 생각해요.





처음에 쓰고자 한 글이 어쩌다 보니 반 애인자랑, 반 연애팁으로 진화해 버렸지만,

여기까지 쓸데 없는 제 글 읽어주신 여러분께 경의를 표합니다….











블로그 글에 비해 제 글이 수준미달이라 알비노호랑이 형의 심의(?)에 통과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상 저와 코쟁이와의 소박한 연애담이었습니다. 모두들 굉장한 사랑 꾸며 나가시길 바라요 ^o^



- 반바지의 칼럼 끄ㅌ -




추! 천! 버! 튼!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