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하여 우리는 침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비트겐슈타인의 이 금언을 적용하기에 이 결혼만큼 적절한 사례도 잘 없을 것이다. ‘어느 멋진 날, 당연한 결혼식’이란 캣치프레이즈 아래 준비되어가는 이 결혼은 – 적어도 준비위원들에게는 – 단순히 사랑하는 두 사람이 결혼식을 올린다는 사건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모양이다. LGBT 사회 전체의 축제이면서 지난 1-20년간 부침을 겪어온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태세를 정비하여, 새 일을 도모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야심이 읽힌다.
역시 부침을 겪으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 중인 게이가, 적어도 그 중 한 사람이 된 김조광수 감독과 그의 오랜 연인 김승환 대표가 결혼한다. 이 간단한 사실에 관하여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있을까? 몇 가지 이야기해 볼 수 있겠다.
이들의 결혼은 꾸준히 ‘낭만적인’ 일로 회자되고, 그들 또한 그러길 원한다. 우리 - 성소수자들을 에워싼 강고한 제도권에 머물고 있는 이성애자들의 결혼을 보자. 결혼은 항상 낭만적인가. 아마도 지금쯤 어떤 게시판의 사람들이 조소할 준비를 끝마쳤을 것이다. 그들은 말한다. “결혼(식)은 현실”이라고. 1
이 아름다운 결혼사진조차 피눈물을 머금은 ‘스드메’ 견적의 산물 아닌가. 사람과 사람의 결합이 아닌 가족을 구성하는 제도적 수단 중 하나인 결혼. 그 과정에서 깨지는 예비부부가 얼마나 많은지는, 예의 게시판에서 이미 충분히 보이니 줄이자. 결국 결혼식은 상당한 돈을 쓰게 되는 행사다. 누가 돈을 쓰고, 부부의 생활근거를 합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기여하였는지가 여실히 반영된 파워게임이기도 하다. 2
물론 김조-김 커플이 예단비를 고민하고 있진 않겠지만, 요컨대 결혼은 경제력, 사회적 위치, 사는 나라, 문화, 혹은 인종 및 성별과 같은 요소에 의해 좌우되는 측면이 크단 것이다. 여기에 ‘당연한’ 결혼식이란 네이밍이 주는 불편함을 중첩해본다면 어떨까.
그러니까, 나(MECO)는 당연히 결혼해야 하는 걸까? 그 결혼이 이성결혼이라면 동성애자인 나에겐 이미 논외다. (나는 위장결혼/계약결혼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동성결혼이 법제화된 몇 십 년 후의 대한민국에서라면? 그런 나라에서 결혼하지 못한 결혼적령기의 나는 ‘반편이’거나, ‘어디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혼인이 아닌, 나름의 방식으로 가족을 구성한 수많은 사람들에까지 이 질문을 확장해본다면, ‘당연하다’는 말은 더 쉽지 않을 게다. 독거 3노인 비혼자가 아니라, ‘1인 가구’를 자발적으로 선택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공동주거나, 그 외 다양한 형태로 가족을 형성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4
누군가의 결혼이 모든 성소수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의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오만일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우리 커플에겐 당연한’ 결혼이란 표제를 걸고 오래된 커플인데도 여전히 낭만적인 두 사람을 강조하는, 개인적인 결혼이라면.
동성결혼 법제화, 혹은 혼인평등(Marriage Equality) 운동을 벌여 미 연방대법원으로부터 소기의 성과를 거둔(이전 글 링크) 바다 건너 미국에서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층위는 완전히 분화되어 있다. 복지가 성기기 그지없어 특정 집단의 생존을 위해선 사회적 지원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가장 효율적인 지원방법을 궁리해야만 하는 그 곳에서, 당장 생존의 위협을 받는 사회적 약자인 LGBT의 인권을 보장하자는 운동과, 오질나게 비싼 연방대법원 변론비용을 부담할 수 있을 정도인 탄탄한 중산층 백인 알파 게이/레즈비언들의 혼인권을 주장하는 운동이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후자는 안티-게이 로비에 맞설 정도의 금전적 파워를 자랑한다고는 하지만, 대표적인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이 상근활동가 몇 명 늘리기도 빠듯한 대한민국에선 먼 나라 이야기다. 뭐, 그렇다고 한다. (말 나온 김에 성소수자 인권단체를 후원하기 위해 CMS를 쓰고 싶으시다면, 여기로: 무지개행동(hot! help needed), 동성애자인권연대, 친구사이, 한국레즈비언상담소,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KSCRC) 후원은 퀴어, 플라이도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결혼 난 반댈세? 물론 그건 아니다. 한심할 정도로 아둔한 자들의 ‘이 결혼 반대’시위를 보고 있자면 절로 한소리 나오지 않는가. “왜 남이 결혼하는 데 지들이 하라마라야. 당신들이 혼주임?” 그렇다면 혹시, 김조-김의 결혼은 그들 일이니 괜히 나까지 동참하라 들지 말고 결혼은 조용히 알아서 하시라?
누군가의 결혼에 찬성하고 반대할 권리란 타인에겐 없다. 그러나 김조광수 커플이 허락해준다면. 난 이들의 결혼을 찬성한다고 말하고 싶다. 이들 결혼으로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자유롭게 결혼할 권리가 우리 사회에 뿌리내렸으면 한다.
— 허재현 (@welovehani) August 7, 2013
(결혼 홍보가 시끄럽다면서 위와 같은 논조로 시비 걸던 트윗이 있었는데 못 찾았다. 그래서 시비는 아니지만 비슷한 관점에서 결혼을 지지하는 다른 트윗으로 대체한다.)
아까 끌려나온 비트겐슈타인, 그가 침묵을 요구했던 ‘말할 수 없는 것’들은 기실 그 자신에게도 진정으로 중요한 주제들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이 결혼엔 침묵이 가장 안전해 보일지라도, 나는 침묵과 판단유보 이상 나아갈 필요가, 혹은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결혼은 조금 더 활발하게 언급되어야만 한다. 왤까?
혼인평등 운동이 성소수자 모두의 의제가 될 수 없다는 관점에는 인권운동의 맥락에 대한 어떤 전제가 존재한다. 이미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고도로 분화되어, 폭력과 가난에 직면한 LGBT의 생존권을 주장하는 운동과 연대지점을 찾기 어려워졌다는 전제가. 그럼 과연, 대한민국의 성소수자 인권운동 또한 그토록 고도로 분화되었는가? 아직 우리는 전반적으로 한국 성소수자 전반의 권익을 옹호하는 운동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성애적 결혼 테두리의 바깥에 있어 야기되는 차별이 한국 성소수자들을 옭아매는 빈도도 광범위하다. 혼인평등 운동은 성소수자 모두의 최우선 과제가 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대한민국 성소수자들의 문제가 될 수 없다고 하기에도 의문이 있다. 5
그리고 비록 로맨틱을 강조할지언정, 이 결혼이 두 사람의 낭만적인 이벤트를 공사구분하지 못하고 많은 사람 ‘귀찮게’하는 일이라고 단언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 아직까지 성소수자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결코 자연스럽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계속 성소수자들이 언론에 언급되고 평등의 가치가 언론 인터뷰에 등장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이 과정에서 이목을 끌기 위해 이런저런 이벤트를 벌이는 것은 인권운동의 기본이기도 할 것이고. 물론 이 결혼은, 우리 안에서도 꾸준히 이야기될 화제이기도 하다.
성소수자의 존재를 꾸준히 보여주는 것 역시 중요한 역할이다. 말로만 듣던 그 사람들이 바로 여기, 당신 근처에, 만만찮은 수로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우선시되어야 할 운동전략 아닐까. 성소수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 못지않게, 성소수자의 낭만화 또한 경계할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돈두댓’의 슬럿워크가 대비한 아름다운 몸을 가진 서양 게이들의 퍼레이드와 한국의 퀴어퍼레이드, 그리고 그에 대한 네티즌들의 차이나는 반응은 무엇을 의미할까? 성소수자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고정된 이미지에서 탈피하여 다양한 관점을 가지도록 하는 데 이 결혼식 홍보는 확실히 기여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
이쯤 되면 결혼 이야기에서 벗어나는 일이지만, ‘당신들이 알아서 하세요. 개인사니까.’는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낙인과 차별에 적극적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성소수자들에 대해 ‘당신들 일이니 난 알고 싶지 않다’는 태도를 취하는 것은 결국 차별상황을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말도 안 되는 오지랖을 당하고 있자면 ‘신경 좀 끄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이 태도가 성소수자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라는 인식이 고착화된다면 이 역시 걱정스러울 것이다. 역시나 ‘신경 끄’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조금 더 많이 이야기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 결혼은 그 동안 한국에서 혼인평등 운동이 경시하고 있었던 법적 해결책을 적극 도모하려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혼인신고서를 제출하고, 예상가능하다시피 신고의 수리가 반려되면 법적인 절차를 통해 이를 싸워볼 생각이 있는 것이다. 아직 한 번도 법적으로 이 절차를 다투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은, 어떻게 보면 놀라운 일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별도의 입법 없이 사법적으로 동성결혼이 이루어질 가능성이야 희박하지만, 법이 가진 논리의 안에서 성소수자의 논리를 펼치는 것은 비단 동성결혼이 아니라 성소수자 인권의 현장에서도 중요한 일이다. 법은 모르는 것에 대한 상상력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2013. 9. 2.
MECO, of Team Chatter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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