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CO
그들은 언제나 그랬다. 내가 열두 시간 전까지 있었던 게이바와 게이클럽에 굳이 비싼 돈을 주고 들어와 춤을 추겠다는 건 양반이고. 게이 카페에 가입하여 소위 '인증'글을 모조리 캡쳐 뜬 블로그가 있었네, 검색 크롤을 통해 들통이 나자 게이들을 조롱하고 자신들끼리의 서로이웃 블로그로 전환을 했네 하는 이야기들. 이미 모든 커뮤니티는 그들에게 뚫려 있었다. 심지어 위치기반 소셜 데이팅 어플리케이션(지오소셜)에 자신의 얼굴 사진을 당당히 걸어둔 여자도 있다. 친구를 만들고 싶다며 왜 말을 걸지 않느냐고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로 당당한 그들에겐 "faghag"라는 말의 경멸적 어조까지 어울린다.
그런데 아뿔사, 이번엔 심지어 지오소셜을 캡쳐하여 누구나 볼 수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렸다고 한다. "게이이기 아까운 훈남들"이란 제목으로. 이런 미친! 분노와 경악은 당연하다. 나의, 우리의 입장에서 이는 갑작스레 나의 영역을 침범한 흙 묻은 맨발이기 때문에.
아웃팅 배척의 예외성
하지만 조금 다른 이야기로부터 시작해보자. 게이인 당신은 사회적으로 핍박받는다고 느끼는가? 그렇다면 그 핍박은 어느 지점에서 오는가? 자신을 드러내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현실, 사람들의 편견, 손가락질, 과도한 관심과 배척, 불이익, 차별과 같은 지점 아닐까.
게이/퀴어의 목소리 중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 아웃팅 방지에 대한 요구이다. 아웃팅은 범죄이며, 심각한 삶의 위협이라는 것이다. 헌법에 규정된 국민의 권리인 사생활의 자유를 끌어온다. 누구에게나 사생활을 누릴 자유가 있는 법인데 그 사생활에 대해 남들이 왈가왈부하는 것은 헌법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하지만, 헌법은 그런 방식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헌법이 가장 강한 규범으로써 의미를 가지는 것은 국가에 대해 무언갈 요구할 때 뿐이다. 그 이외, 개인과 개인의 문제가 있을 때 헌법은 도덕책보다도 쓸모 없는 수준이다. '친구를 때리면 안 되요. 근데 쟤가 나 때려요' 같은.
조금 더 나아가보자. 아웃팅이 범죄라고 이야기할 때 대부분의 논의는 직관적으로 명예회손명예훼손의 법리를 끌어온다. '사회적으로 핍박'받는 성정체성인 게이라는 사실을 남에게 밝히는 것은 나의 명예를 훼손한다는 것이다. 형법 제307조는 두 항목으로 나뉘어져 있다. (1) 공연히 사실을 적시한 경우와 (2)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한 경우. 즉 아웃팅을 한 사람을 명예훼손으로 잡아넣기 위해선 그렇다면 "A는 게이다"라는 말이 사실인지, 허위의 사실인지를 검증받아야 하는 과정이 남는다. 게다가 형량을 보면, 게이를 게이라고 말하는 것이 게이가 아닌 사람을 게이라 하는 것보다 죄질이 가볍다. 이게 뭐야?!
명예훼손의 개념으로 들어가봐도 모순과 의문점이 남기는 마찬가지이다. 게이라는 사실이 나의 명예를 훼손한다는 게 이 쪽의 주장이 된다. 그리고 같은 입으로 게이임은, 퀴어임은 잘못된 게 아니라는 주장을 하게 된다. 우린 모두 어떤 지점에서 퀴어한 사람들입니다. 남들과 다르지 않아요. 이렇게 태어난 걸요. 교정치료 같은 걸 할 필요 없이, 그냥 이대로 우리를 있는 그대로 보아 주세요.
그런데 제가 게이라는 걸 남들에게 말하면 제 명예가 훼손됩니다. (/두둥!)
물론, 대한민국 사회에서 게이라는 사실을 자신의 통제영역 너머에서 까발려지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것이 아니다. 다만 아웃팅 방지 운동은 어디까지나 현실적 필요성에 의해 생긴 것이며, 게이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철폐하라는 주장과는 논리적으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한 극단적인 이야기이다. 1
아웃팅이라는 건 우리의, 아니, 나의 생활에 있어 현실적으론 꽤 중요한 문제이긴 해도 게이로서 사회 개선을 꾀하고자 할 때 가장 중요한 가치일 수는 없다. 그건 '이렇게 해달라'는 요구가 쉽지 않은 문제이기 때문이다. 설령 게이가 대통령이 되어 퀴어 프렌들리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하더라도, 아웃팅이 제1가치라면 무얼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아웃팅을 범죄로 규정하고, 위반하는 자에게 실형을 살게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제 어디까지는 아웃팅이며 아웃팅이 아닌지에 대한 혼란이 빚어질 것이고, 더 문제적으로 '너 게이야?'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될 것이다. 심지어는 나 자신이 '나 게이야'라고 선언했다 하더라도, 아웃팅을 극단적으로 염려하자면 내가 혹시 말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남들은 거기에 대해 왈가왈부하면 안 된다. 이런 금기의 장벽을 쌓는 것이 진정한 퀴어 해방일까.
문제는 그 지독한 타자화
물론 내가 지오소셜 앱에 대한 이러한 침탈, 그리고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핍박과 지독히 사물적인 호기심에 대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니 넘어가자'고 주장하려는 건 절대 아니다. 나는 이걸 아웃팅이라는 프레임 하나로 단순히 묶어버리는 걸 반대할 뿐이다. "그거 아웃팅이야"라는 말은, 많은 양식 있는 사람들의 입을 즉각 묶어버리는 효과는 있지만 가끔 전가의 보도로써 남용되곤 한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서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 처럼.
오히려 이번 사건을 터뜨린 년들사람들의 사고를 조금 들여다보면 어떨까. 그들은 왜 우리에게 그렇게 많은 관심을 기울일까. 게이에게 선망을 가지는 여성들의 기저심리에 관한 이야기는 많지만 자신과의 섹슈얼한 텐션이 없다는 것과, 핑크장갑 님과 같은 패션 게이들, 혹은 주변의 보통 남성과는 나눌 수 없는 여러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다는 점을 높이 사는 것 같다. 정도는 다르지만 동인소설에 심취하여 게이에 대한 비이성적인 관심을 보이는 자들 또한, 결국은 그 근저에는 호감이 베이스된 것 같다.
호감을 베이스로 깔고도 이런 파괴적인 행동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 어긋난 관심, 삐뚤어진 애정이란 것일테다. 나는 문제의 핵심이 그들이 게이를, 다른 퀴어들을 이해하려고 했다기보단 그저 게이라는 사물을 소비하려는 데에 있다고 본다. 아웃팅이 개입되었다는 점은 어디까지나 문제의 부차적인 층위일 뿐이다. 이것이 아웃팅이라는 사실 자체보다도, 그들이 그토록 선망하는 게이라는 존재가 이러한 소비에 반발할 때 그들의 말에 귀기울이는 대신 오히려 비아냥거리는 반응이 나오는 것이 더욱 문제적인 상황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퀴어 운동은 그러한 비아냥을 배척하고 도태시키기 위한 역사와도 같았기 때문이다. 설령 그것이 비아냥의 형태를 띠고 있지 않을지라도.
예를 들어, 이런 글은 어떨까?
아웃팅이 개입되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오히려 퀴어들에 대한 공격을 비난하는 어조의 글이지만, 이 글에서도 비슷한 타자화를 읽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런 문단:
지금껏 내가 ‘배운’ 바로는 퀴어들에게는 오직 사랑밖에 없다. 그들에게는 세상의 명예와 부, 그리고 그것을 위한 전쟁을 좇는 삶이 무의미하다. 나는 나의 퀴어 친구들을 알고 사랑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읽고 또 읽었다. 그것은 그들이 만든 시이거나 음악이었다. 그들이 왜 총을 들기 싫어서 국가를 버리는지, 왜 전쟁 말고 사랑을 외치는지 나는 이제 조금 알게 되었고 그래서 조금 더 사랑을 존중하게 되었다.
양효실, 서울대 미대 동성애 혐오작품 논란, 시사IN 225호 中
- 실제 지금 우리 사회 수준과 비슷했을 90년대 미국에서 게이 유명인을 아웃팅시키는 Queer Nation이라는 단체가 있었다. 물론 그들이 호모포비아라는 건 아니고, 오히려 게이 인권운동의 한 방향으로써 이를 도입한 것에 가까웠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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