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이 게시판은 그냥 '각자 일상생활이나 잡생각에 대해서 뻣뻣하지 않게 알아서 풀어써보자' 였는데... 메코형이 진지진지한 글을 두 편이나 쓰고 나니 다들 엄두를 못내는 것인지, 귀찮은 것인지. 뭐 암튼 그렇게 됐습니다. 하지만 전 막나가는 인간이니까 그냥 쓰려고요 이힝.


    조만간 거주지를 옮길 예정이라 얼마전까지 방을 알아보러 다녔습니다. 새삼 부모님이랑 같이 본가에 있는게 얼마나 쾌적한 환경인지 알게 되더군요. 서울은 대체... 사전조사로 살펴볼 방들 목록을 짜서 반나절동안 발발발 돌아다닌 끝에- 완전히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럭저럭 타협할만한 공간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가을부터는 학교 근처에서 살게 됩니다. 훈늉한 남자들을 구경하면서 대학다닐 생각하니 마음이 흐뭇하네요. 


    앤더슨 쿠퍼가 커밍아웃을 했습니다. 그가 게이인거 모르던 사람들은... 음... 안됐지만 정말 촉이 후지시다는 말 밖엔 드릴말이 없네요. 모두들 게이인걸 알지만 본인이 스스로 대중에게 커밍아웃하지 않는 사람들 보고 '유리벽장'에 들어있다고 한다죠. 앤더슨 쿠퍼씨는 전형적인 유리벽장게이였죠. 근데 그 분은 분쟁지역 리포터로 명성을 날린 분이었는뎅... 커밍아웃을 한 이상 이제 이슬람권은 취재가 불가능하겠네요. 솔직히 이제 나이도 있고 하시니 그냥 데스크를 지키거나 토크쇼 진행자로 방향을 완전히 틀려고 그러시는게 아닌가 싶어용. 아.. 방탄조끼 같은거 입고 마이크를 든 채로 분쟁지역 뛰어다니는 앤더슨 쿠퍼짜응의 모습이 참 ㅅㅅ했는데...  아 아닙니다.


    채터박스 팀에 대해서 궁금해 하시는분이 가끔 있을 것 같은데.... 나중에 방명록이나 이메일로 질문사항들을 접수 받아서 Q&A시간이라도 가져볼까요?  물론 다른 분들의 동의따위 전혀 없이 그냥 지금 생각나서 싸지르는 글이라 실현가능성은 미지수입니다(...) 


    채터박스 멤버들끼리는 나름 친합니다(다고 저는 생각하는데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만날 수 있는 분들끼리 번번히 계모임(..)도 하고 밥도 먹고 그럽니다. 홀로 외국에 거주하는 알비노 고양이 호랑이씌만을 빼곤요, 솔직히 밥 한 끼 먹자고 한국에 매번 올 수는 없잖아염...


    요즘 날씨가 끈적끈적하지 않나요. 그래도 비 아예 안오던 주보다는 훨씬 선선해서 괜찮은 것 같아요. 곧 옷깃만 스쳐도 살인나는 여름더위가 다시 시작되겠지요 ㅠㅠㅠ  전 여름을 무지하게 싫어합니다. 더위 자체를 많이 탄다기보단 땀이 많이 나는 사람이다보니.. 끈적거리고, 썬크림 녹아들고, 여드름폭발하는 여름이 싫어요 흑흑  여름의 메리트라면 냉면이랑 빙수, 그리고 훈훈한 남성분들의 반팔에서 보이는 근육정도...? 그거 말고 또 뭐가 있죠... 음.... 전 차라리 겨울이 좋아요. 한 살 더 먹는다는 것 빼곤.


    네. 잡답이라서 의식의 흐름기법으로 글을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한 2년동안 멍때리고 잔심부름 하는일만 하다보니 사고의 깊이가 화장품 샘플병보다도 얕아져서 지적인 향유를 즐길 수 있는 글을 쓸 수가 없네요. 뭐 이러니저러니해도 제가 다 게을러서 그랬던거죠 ㅠㅠㅠ 그리고 실은 2년 전에도 전 그냥 무지렁뱅이였긔... 


    그닥 길진 않았지만 산만한 잡담을 여기까지 할게요. 심심하면 또 블로그를 더럽힐겁니다. 그럼 안뇽.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MECO


지난 6월 11일,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주디스/잭 할버스탐(Judith "Jack" Halberstam) 교수의 강연을 다녀왔습니다.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USC(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 여담이지만, 알비노 호랑이와 대화하다가 제가 그간 ‘남가주’를 South Carolina로 잘못 알고 있다는 점을 깨달아서 멘붕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네, 이 곳이 바로 그 남가주 대학입니다)의 페미니즘/영문학 교수입니다. 위키에서는 톰보이(남성적 매력을 지닌 털털한 여성)와 여성의 남성성(female masculinity)을 주로 연구한 사람이라고 하는군요.


사생활 측면에서 할버스탐은 레즈비언이며, 본인을 가리킬 때 Jack이라는 남성적 이름을 사용합니다.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떠있는 키노트에는 "Jack Halberstam, 2012"라고 적혀 있었지요. 그/녀의 연구는 아마도 다분히 자기경험적 측면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겠죠. 실제 소위 말하는 ‘부치’ 상이기도 하고요. 잘 생기셨더라고요.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이 아마도 물어보실 질문일, 할버스탐은 누구인가: 사실 여기에 답하기에 제가 적합한 사람은 아닙니다. 페미니스트로 이해되고, 퀴어 이론(Queer Theory) 하시는 분들도 이 분의 글을 읽기는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녀의 글을 한 번 제대로 읽어본 적도 없으니까요. 예전에 한 번 2005년 Social Text 紙의 서문을 읽었던 것 같긴 한데 제대로 기억나는 내용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런 글을 적는 이유는, 할버스탐 교수의 강연에 대해 국내에서 적힌 글이 이 정도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링크를 눌러보시면 알겠지만, 정말 한심할 정도의 독해이지요. 마돈나가 여성성의 극화 강조라면 레이디 가가가 여성성의 해체를 반영한다는 것까진 그렇다고 하겠습니다만, ‘심지어 동성애 지지’라던가, 남성을 찬미하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는 인식 등에서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우주를 느낍니다.







그러므로 강연을 들은 사람의 의무감에 정리를 합니다만, 제가 페미니즘을 공부해본 적이 있는 게 아니라서 깊은 이해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저 강연 내용을 최대한 성실하게 전달하는 정도의 노력이 한계가 아닌가, 그리고 그것 또한 나름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할 뿐입니다.

 


 


금번 할버스탐 교수 등의 소위 ‘핫한 페미니스트’들을 한국에 불러모은 것은 한국영미문학페미니즘학회의 2012년 컨퍼런스였습니다.



할버스탐에 한정하여 들은 바에 따르면 이 김에 연대와 이대에서도 강연을 하였다는데, 신촌에서는 애초에 강연 제목이 곧 나올 그녀의 신간인 <Gaga Feminism>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반면 서울대 강연의 제목인 ‘Queer Art of Failure’는 2011년 책의 이름이었죠. (하지만 강연 내용은 큰 차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선 강연 초반부에 failure에 대한 언급이 조금 있었습니다. 시험으로 채점하는 전통적 대학교육은 시험을 잘 보는 학생을 만들 뿐이며, 결국 조직화(Organization)는 그 자체가 목적달성에 저해되는 요소가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자신이 관심 있는 것은 이런 전통적 제도/대학에 포섭되지 못한 소위 ‘실패’들이며, 고위 추상화를 거치지 않고 의미의 더 낮은 층위를 다루는 것(lower register of meaning)이 Low Theory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듯 합니다만, 저는 여전히 Low Theory와 Queer Art of Failure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Low Theory에 대해 관심이 있으신 분은 영국의 문화연구이론가 Stewart Paul을 참조하면 될 것 같습니다. 고차원적이고 추상화된 ‘high theory’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고, High와 Low 둘 다 하지만, Low Theory라 함은 복잡한 것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는 추상적인 이야기를 저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할버스탐이 말하는 바에 따르면 라캉, 데리다와는 다르게 이건 여전히 이론이며, 자신은 이론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이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만, 그래서 그게 뭐야?!라는 질문을 던지는 즉물적인 저에겐 충분한 답이 되지는 못하더라고요.


랑시에의 “Ignorant Schoolmaster”를 인용하여 (지식의 주입이 아닌 함께 연구하고 공부한다는 지평을 연 18세기의 가상적인 교수와 교수법을 통해 학문 연구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한 책) 지적 해방을 위한 3가지 요건을 설명하던 중 1. 모든 사람은 똑같이 지적이다(All individuals are equally intellectual)는 부분에서, “not really…?” 로 모두를 터뜨리긴 했습니다만, 강연 제목과 아예 벗어나는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 살짝 언급한 <Queer Art of Failure>에 관한 부분에서는 기억나는 것이 이 정도 밖엔 없네요.

 




아무튼, 이런 이야기를 초반에 잠깐 하고서 이야기는 결국 신간 <가가 페미니즘(Gaga Feminism)>으로 넘어가게 되었는데요. 여기에서 결국 할버스탐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정상성의 종말(the end of normal)과 가족의 해체입니다.


이 과정에서 그녀가 도입하는 사례 – 그리고 누가 보아도, 할버스탐의 취향에 들어맞는 사례 – 가 몇 개 있습니다. 우선 자궁을 제거하지 않은 FTM 트랜스젠더 남성(여성 성염색체를 지녔으나 남성으로 성전환)이 출산한 것. 이것은 결국 전통적인 가정 형태와는 지독하게도 이질적인 ‘남성의 출산’이 되지요.





어느새 정상상태가 되어버린 ‘이혼’도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실 겁니다. 할버스탐은 심지어 ‘국제적’ 트렌드라고까지 표현합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51%의 가정이 이혼을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비율은 올라가고 있고요. 할버스탐은 이를 지적하면서 결혼의 성공률이 50% 이하로 떨어지게 되면 이제는 이혼이 새로운 정상이 되는 거죠(as soon as the success rate of the marriage hits 50% and less, divorce is the new norm)”라고 합니다. 이제 한 명의 상대와 성관계를 가지는 사람은 오히려 더 흔하지 않게 된 것이고, 정상적이지 않게 된 것이지요.







예전에는 ‘평생을 함께 한’다고 한다면 20여년 정도의 결혼생활을 상정하였지만, 이제 25세 젊은이들이 평생을 약속한다면 이는 평균수명의 상승으로 최소 60년 정도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것이 지켜질 수 있을 것인가? 할버스탐은 다시 한 번 숫자를 지적합니다. 이미 절반 이상이 이혼을 하지 않냐고 말이지요. 그리고 이 비율은 올라가고 있고요.


생물학적 성과 사회적 성의 맥락에서 결혼제도의 위기는 게이/퀴어 인구가 결혼을 요구하는 등으로부터 온다기보단, 오히려 이성애자들이 가장 크게 겪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성공적인 결혼생활은 줄고만 있으며, 남자들은 정액을 팔고, 여자들은 결혼 대신 스스로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으니까요.


그러면서 심지어 할버스탐은 남자와 여자는 근본적으로 너무 다른 것을 원하고, 남성잡지와 여성잡지를 보면 이게 정말 같은 사람이기나 한가 싶고, 그러다 보니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류의 책이 횡행하며, 서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노력과 통역이 필요하다고들 하는데 어떻게 보면 서로 너무도 다른 종이라서 처음부터 맞지 않은(incompatible) 것이란 결론을 낼 수도 있잖아요? 라고도 합니다. ㅋㅋㅋㅋ


요즘 젊은 여자들이 보는 책을 보면 어떻게 남자를 찾는지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면서, 게이들만 어떻게 사랑하는 상대를 찾는지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니란 이야기도 하지요. “게이들이 보기에 이성애자들은 상대를 다들 잘만 찾는 것 같지만, 사실 이성애자들도 엄청 어려움을 겪고 있는 셈이지요. 심지어 이성애자들에겐 쉽게 상대를 낚을 수 있는 게이바도 없어요!”




 

일단 이런 식으로 ‘정상’이 의미를 가지지 못하며 이성애정상성(Heteronormativity)이 버팀목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가장 쇼킹한 사실은, 이성애자들이 결혼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꾸고 있을 때야 동성애자들에게 결혼이 하나의 선택지로 제시된다는 점입니다. 할버스탐은 “잊어버리세요. 결혼 그거, 얼마나 비싼데요. 그리고 이혼이라도 할라치면 더 비싸요.” 라고 합니다만.


실제 많은 이성애자들이 이런 사고 끝에 단순 동거를 택하고, 이런 결혼제도의 취약성이 드러난 시점에 뜬금없이 미국은 게이/레즈비언들에게 결혼제도를 제시하지요. 샌프란시스코가 잠깐 동성결혼을 허용했을 때 이는 엄청난 경제적인 붐을 불러왔다고 합니다. 할버스탐의 분석은 결혼이 법적, 종교적인 문제라기보단 경제적인 문제라는 것인데, 결국 이러한 동성결혼 이야기는 결국 국가가 동성애자들에게 ‘결혼을 파는(selling the marriage)’ 과정이란 점입니다. “그리고 게이/레즈비언들은 '네 제발요. 우리도 이 대단한 제도의 혜택을 보고 싶어요. 지금까지 그러지 못했다는 게 너무 슬퍼요'라고 하는데, 정작 10년 뒤에, 제 말을 믿으세요, 게이 이혼이 새로운 문제가 될 겁니다.”




 

그리고 다시 아까 이야기했던 트랜스젠더 아버지의 임신 이야기로 돌아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가족들에게 ‘정상’적으로 아이를 제공하기 위한 생식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이러한 ‘비정상’이 가능해졌다는 것부터 우선 할버스탐의 구미를 당겼고, 이는 다른 사례들과 더불어 정상성이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증을 주게 됩니다.


레즈비언 엄마들의 사례가 있죠. 결혼을 통해서만 아이가 만들어지던 시대는 지났고, 이제 남자들은 인터넷에서 정액을 팔고 여자들은 남자가 누구인지 상관하지 않고 그 정액을 사서 수정을 합니다. (이렇게 표현하고 나니 정말 징그러울 정도로 물화되었네요. 그리고 한 남자의 정액으로 수정된 아이들을 일컫는 신조어로 twibling=twins+siblings이 있다고 합니다. 좀 찾아보니 이들이 서로를 찾아다니는 과정이 리얼리티 쇼 등으로 새롭게 조명을 받는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레즈비언 가정에서도 아이를 가지고 싶은 경우 이런 일들이 있고, 그렇게 생긴 가정도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런 레즈비언 엄마들의 가정은 상당히 긍정적이지요. 할버스탐은 우선 보통 가정에서 엄마의 역할은 매우 중요한데, 심지어 엄마가 둘이니 얼마나 좋을까? 라고 농담처럼 제시하지만, 실제로 미국에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성폭력이나 정서적 측면에서 매우 긍정적인 가정이 레즈비언 엄마들의 가정이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대중의 정서에도 상당히 잘 들어맞아 쉽게 받아들여진 측면이 있죠. (그럼에도 모유 수유를 하는 부치 엄마의 사진은 발칙하다고들 합니다)


 

 

 

이런 사례들은 상당히 재미있었지만, 결론을 내릴 시점에서 할버스탐은 살짝 서두르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신간 Gaga Feminism의 한 챕터로 강의를 했다고 하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요) 이와 같은 정상성의 붕괴 시대에 대안은 무엇인가? 아니, 대안이라는 것이 존재는 하나?


물론 이토록 거대한 사회적 격변에 있어 한 레즈비언 학자에게 답을 요구하는 것이 무리라는 관점도 있겠습니다만. 결국 사회적 성역할로부터 자유로운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들(Children born and raised under Gender-queer parenting)에게 미래가 있다는 정도의 원론적인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Cisgendered”라는 신조어도 언급합니다. 이제 아무도 ‘정상’적이지 못하며, 당신의 몸과 사회적 성별이 일치한다면 당신은 성동일적(cisgendered)인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성다변적(gender-variant)이란 것이지요. 요즘의 미국 퀴어 커뮤니티에서는 이와 같은 언급이 횡행한다고들 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대한민국 퀴어 커뮤니티에 흔한 ‘일반(一般)’과 ‘이반(離般)’ 용어의 정제에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지 않나, 혹은 저 용어들의 탈맥락화가 이루어질 시점이 되었다 정도로 치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가가' 페미니즘인가? 버클리에서 강연할 때 나붙은 팜플렛에서는 할버스탐이 2008년 레이디 가가가 MTV에서 드랙을 하고 레이디 가가의 가상 남자친구인 것처럼 연기한 것에 충격을 받아 이론을 정립한 것처럼 나와 있습니다.





그럼에도 레이디 가가와의 연결지점은 여전히 분명하지 않죠. 할버스탐 교수 자신도 이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 듯합니다. 레이디 가가가 기괴한 모습으로 영감을 주었지만, 그녀는 하나의 상징에 불과할 뿐이라고. 결국은 이러한 정상성의 종말과 가족 체제의 붕괴에 대해 말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변명합니다.


정말로 똑똑하신 서리 님은 “할버스탐은 참 학문을 쉽게 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물론 전 그런 할버스탐도 잘 못 읽겠긔 ㅠㅠㅠ) 이는 질문과 답변에서 현장에 자리한 많은 변두리-전통적-페미니즘 학자들이 미국의 티 파티 등의 보수적이고 기독교적인 기치를 들고 가족제도를 ‘수호’하려 드는 움직임에 대해 코멘트를 요구했을 때, 할버스탐 교수의 답변에서 드러납니다.


“티 파티는 자극적이지만 그렇게 미국 사회에서 큰 지분을 차지하지는 못해요. 사실 가족제도의 위기는 벌써 왔고, 티 파티는 그 마지막 발악 정도일 뿐이지요.”


캘리포니아에 한정하여서는 그것이 실체적인 진실 그 자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대통령 선거판만 챙겨 본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해석할 수 있을지요. Homo Surplus의 필진 알비노 호랑이가 이에 대해서 할 말이 많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

 



아무튼 커밍아웃한 외국 퀴어 이론 학자(?)가 한국에서 강연을 하였고, 저는 다른 많은 퀴어 꿈나무들과 함께 가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왔다는 것으로도 참 의미 있다고 박수치고 싶은 경험입니다.


하지만 저와 같은 야매와 달리 제대로 칼을 갈아 학문을 하는 친구들이 하였던 한탄에 공감이 가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그 초청료라면 할버스탐의 저작을 세 권은 번역할 수 있었겠지요. 그리고 무엇이 더 필요한지에 대해 제가 감히 판단하지는 않겠습니다만, 할버스탐의 초청이 게이/레즈비언 커뮤니티에서 크게 회자되지도 못하고 이번과 같이 ‘영문학자들만의 리그’로 끝나고 만 것이 아쉽다면 저는 그 한탄에 조금은 더 공감을 하는 쪽일까요.


물론 한편으로는 지적 허영의 발로로, 백날 읽기만 하였던 저자들이 직접 와서 자기 저작을 해명하는 것을 보고 듣는 체험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될 것인가 굳이 옹호하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우리에겐 그런 시각화와 동기부여가 여실히 필요하죠. 그리고 저는 이런 글을 결국에 써내고 있으니, 조금이나마 죄질이 가벼워지지 않을까요? ㅠㅠ


그리고 정말로 재미있었어요. 그/녀의 글을 읽는 것과는 별개로, 강연을 듣는 것은 말이지요. 시험도 덜 끝난 퀴어 꿈나무들을 동아리방에서 선동하여 갔을 때는 못 알아들으면 어쩌나 조금 떨었는데, 정작 강연이 시작하자 빵빵 터지며 정신 없이 몰입할 수 있어서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흔치 않게도, 제가 이성애자가 아니었기에 조금 더 즐길 수 있었던 경험이기도 합니다. 저는 고정관념을 넘어 생각하는 걸 잘 하지 못해서, 저에게 가상의 것일지라도 이성애정상성이 당연한 것이었다면 웃고 있으면서도 이 강연이 불편했을 것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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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CO



저 개인으로서 첫 글을 드디어 엽니다. 어떤 명작으로 찾아 뵈어야 하나 고민을 거듭했지만 별 것 없다는 것, 우린 사실 이미 잘 알고 있죠. 알아요, 저의 의도는 몇 번인가의 왜곡을 거쳐 결국은 여러분에게 의미 있는 만큼만 받아들여질 것이란 걸요. 이를 감수하고서 글을 쓰는 것이야말로 진정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니까 글과 공부를 멀리하고 남자를 가까이 하면 좋습니다. (?)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시를 잘 읽는 편이 아닌 내가, 저런 시를 읽어 주자 전 남자친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걱정도 고민도 없이 집의 애물단지로 잘 자랐던 그는 상처에도 불구하고 행복하려 든다는 걸 감히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런 그가 나와는 너무도 다르지만 사랑스러워 보여 수줍은 뽀뽀를 날려주었던 것 같다.





이태원, 적어도 3년 전



주말 한정으로, 해가 진 후 이태원과 종로는 유난히 상처가 많은 세상이다.

우악스러운 태도로 세상을 향해 끼를 떨며 게이들은 누구나 자신에겐 남모를 어려움이 많았음을 간증한다. 간증과 푸념이 게이의 전유물은 물론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주된 정조이다. 아니, 그런 듯하다. 태동기에 있는 퀴어적 표현수단 – 글, 소설, 시, 영화 등 – 은 결국 추억, 아픔, 고난을 조명한다. 그리고 심지어 그 고난에 극복 또한 예정되어 있는지조차, 잘 모르겠다. 적어도 ‘기적’ 정도로는 예정된 고난의 극복이라 하기엔 심히 곤란하다.


일종의 피해의식 또한 존재하는 것 같다. 나는 게이라서, 성소수자라서 이토록 내 삶이 힘들고 팍팍한 것이라는 종류의 피해의식 말이다. 성소수자라는 말조차 움츠러든 것처럼 들린다. 퀴어라는 말을 써 보자. 그러나 말은 말일 뿐이다. 그 말을 신성불가침으로 싸고 돌며, 맥락의 결락을 지적하면 소수자 집단 내 x맨 정도로 취급 받는 현상은 매우 흥미롭다. ‘나는 비판 받을 정도로 강하지 않다’는 것이 결론이라면, 공격은 최선의 방어이므로 이런 전략을 택한 것을 탓할 마음은 없다. 하지만 그것으로 좋은가?


내가 게이라는 사실이 나를 얼마나 결정한 것인가? 어쩌면 나는 우연히 게이일 뿐이고 이성애자로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내가 만나는 사람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는 것만 빼면) 지금의 나와 동일한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는 비현실적이다. 나는 게이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성애 고착적 관념에, 몇 가지 논리적 맹점에 민감하다. 이는 나를 너무도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런데 그건 전적으로 내가 게이이기 때문일까? 즉, 다시 말하자면, 나는 게이이다, 그러므로 존재한다(Gay, therefore I am)라고 말할 수 있는가?


숙연한 존재론적 질문으로 보이지만, 술에 취해 종로 바닥을 굴러다니며, 혹은 이태원 클럽에서 흐느적거리다가 한 질문이 바로 이것이다. 나의 성지향을 어디까지 탓할 수 있을까? 우린 게이라서 힘들다는 그 푸념을 어디까지를 인정해야 하나, 이는 막막하지만 중요한 질문이다. 결국은 내가 해명하고자 하는 질문은 이것으로 끝나지는 않을지라도, 여기에서 시작한다.




What comes up when you google "Manifesto"



A Gay Manifesto(게이의 정치적 선언)이라는 거창한 글을 쓰고자 무익한 시도를 벌이면서, 제목에 짓눌리지도 않고 다른 이들을 짓누르지도 않는 글을 어떻게 쓰고야 말 것인가 고민한 나의 결론은 유보적이기 그지 없다. 이 글과 앞으로 올라올 글은, 세 가지 중에서 한 가지에 대한 글이다.



첫째, 당연하게도 정치적 견지에서 관용적이지 못한 분위기를 배격한다. 전통적인 정체성-정치(Identity-Politic)의 영역에 포섭될 수 있는 글이다. 나는 전형적인 인권 투사의 분위기를 내뿜을 생각은 전혀 없지만, 본질이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내 감에 이는 대한민국이 글감을 제공할 영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에 관해 쓰겠노라고 감히 약속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 앞으로 이런 글을 쓸 일이 드물지는 않을 것이다.


둘째, 우리 내부의 합의점을 찾기 위한 일종의 교통정리를 시도한다. 게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생각을 공유한다는 것은 얼마나 비현실적인 가정인가? 다양한 사람들의 사회적 연대라는 정치성의 본질을 일구기 위해 우리가 이루어야 하는 화해는 얼마나 많은가? 가령 동성애자로 산다는 것 자체가 싸움이었던 시절과, 사회도 분위기도 말랑말랑해진 이후의 기억만을 가진 게이들은 어떻게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가? 끼를 정체화한 게이와 자신 또한 끼를 무서워하는 게이는 어떠한가? 더 나아가, 게이 사회에 존재하는 소득/학력 격차는 우리 사회의 격차 이상으로 유의미한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시도하는 것은, 예측하건대 재미있는 결론을 불러올 것이다.


셋째, 전략과 전술에 관하여도, 결국은 논해야만 한다. 이성애자들에게 혹은 사회에 어떻게 우리의 진실을 제시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이다. 나의 세계관은 포비아의 설득 아닌 배제를 전제로 하지만, 최소한의 배제만이 정당화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동시에 전략과 전술을 빙자한 우리 안의 퇴행성을 배격하기 위한 글이기도 할 것이다. 이를테면 그들이 알아듣지 못하기에, 우리가 숨겨야 할 부분이 있다는 류의 주장들.




이 글은 낭독을 위한 선언문이 아니다. 혹은 글로써 자기완결적인 권위적 텍스트를 구성하지도 않을 것이다. 새로운 주장과 이론을 통해 퀴어-정치성의 저변을 확대하고자 하는 야심은 없다. 어떻게 보면 새로운 이야기란 존재하지 않는 기존 논의의 변용과 부분확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바라는 것은 이 이야기를 지금 이 시점, 이 공간에 다시 변주하여 어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형태의 영향일지는, 바라는 바가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아직까지는 나에게도 확실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결론: 세상은 공허하다. 그리고 무엇도 확실하지 않다.


안녕하세요 본격 불교퀴어철학자 MECO입니다... 죄송합니다. 이게 어딜 봐서 옆집 게이 형이 할 만한 이야긴지는 저도 잘...


다음 글에서 뵈어요. 그 때까지 모두들 평안하시길. 그리고 부디 다음 글로 뵐 수 있길. :)


Posted by MECO


2012. 6. 2. Sat.


Scene #1.  PM 2 : 40   을지로 어딘가.


'아... 메코형 졸 늦어...'    '지금 한 정거장 남았대요' 

'저기 염색한 머리 봐봐 ㅋㅋ'     '오..... 바지봐 완전 스키니해' 

'아까 3번 출구에 있던 L분 좀 귀엽지 않았슴? ㅋㅋㅋ' 






......

'아 저기 흰바지 완전 쩔어! 완전 모델!'      '어디!!!!!!'       '지금 지나갔어요'     '당장 다시 오라그래'

'근데 우리 GS25 앞에서 너무 기갈부리는거 같지 않아요?'  

'어...음... 괜찮아 다들 그럴거야 호호(...)'

(벨이 울린다)

 - 너네 어디에 있어?! 나 지금 밖으로 나왔는데 안보이네?

 '아. 저희 아래에 있어요 올라갈게요~' 





Scene #2.  PM 3 : 10 한빛광장 

BGM : 축제 장소에서 흘러나오는 적당한 음악과 인파들의 소음



'우어. 처음이다

'헐 저기 훈도시 봐....'        '오 마이...'  

'어? 안녕하세요'      '너도 왔구나 ㅋㅋㅋ' (조잘조잘)


'어머, 저기 00님도 오셨네'       '헐 옆에 남자분봐 대박

'....녹차(te verde), 저기봐'        '....' 

'저거 나시 맞아요?'   

'저게 무슨 나시니, 나시가 아니라 이브닝드레스지'




......

'대충 둘러본거 같으니까 카페에서 좀 쉬다 올까요'      '저기 할리스 위치가 좋겠다'       'ㅇㅇ'





Scene #3. 한빛광장 근처 카페  PM 3: 40


... (Blah Blah)

'형 남친 개귀요미네 부럽다 ㅠㅠㅠ'  

'이게 다 예전부터 내가 굿 카르마를 착실히 쌓아서 돌아온 보상 아니겠니?' 

'네?'

'응?'

'뭐?'

'이년들이....' 



.......

'자 우리 오늘 채터박스 이사 중 80%가 참석했으니 이사회라도 할까'      '안건이 뭔가요?'   

'잘 굴러가는데 뭐 문제되는 거 있나?'     '근데 왜?'      '(토달지좀 마 이년아)'




...... 

'맞다, 우리 이제 네이버 검색도 되요'     '수고했어요 잉여(stress surplus)님ㅠㅠ'          


'난 이거 검색어 유입이 제일 신기해 ㅋㅋㅋㅋ'                                                          

'아 그거 알아요? 야생형 피부글 올라가자마자 바로 추천 10개까지 올라간거?'     '역시 게이들이란 후훗'  

'언니, 언니의 글은 우리에게 너무 소중한 빛과 소금이에요, 저 언니가 알려준 이후부터 선크림 매일 바르고 다님'      

'퀴퍼 글도 써야할텐데 누가 쓰지?'     '난 이런거 쓸 자신 없는데..

'(손을 잡으며) 언니는 지금 하시는 것 만으로도 충분해요. 그럼 녹차가 좀 쓸래?'     

'아오 내가 왜요'





.......

'이제 퍼레이드 시작하려나보다'       '그럼 우리도 나가볼까요'      






Scene #4 청계천 앞 도로  PM 4 : 30

BGM : Born this way - Lady GAGA, 몰라- 엄정화, 난 괜찮아 - 진주, Step - 카라 등

 





- 종로구 마스코트(X)  '아이샵 마스코트(O)'







Scene #5. 한빛광장 PM 5 : 50

BGM : 너랑 나 - 아이유, The Boys - 소녀시대



'너랑 나랑은 지금 안되지~'

'ㄲ꺄아안란알날ㅇㄹㄴ 000님 색기 어쩔 ㅠㅠㅠ'     '장난 아니네요 군계일학이네'    

'대박....'





Last Scene. 식당 PM 6 : 20


(Chatterbox 멤버들, 유쾌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며 식사)






A dark change.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