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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6.11 A Gay Manifesto 6


MECO



저 개인으로서 첫 글을 드디어 엽니다. 어떤 명작으로 찾아 뵈어야 하나 고민을 거듭했지만 별 것 없다는 것, 우린 사실 이미 잘 알고 있죠. 알아요, 저의 의도는 몇 번인가의 왜곡을 거쳐 결국은 여러분에게 의미 있는 만큼만 받아들여질 것이란 걸요. 이를 감수하고서 글을 쓰는 것이야말로 진정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니까 글과 공부를 멀리하고 남자를 가까이 하면 좋습니다. (?)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시를 잘 읽는 편이 아닌 내가, 저런 시를 읽어 주자 전 남자친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걱정도 고민도 없이 집의 애물단지로 잘 자랐던 그는 상처에도 불구하고 행복하려 든다는 걸 감히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런 그가 나와는 너무도 다르지만 사랑스러워 보여 수줍은 뽀뽀를 날려주었던 것 같다.





이태원, 적어도 3년 전



주말 한정으로, 해가 진 후 이태원과 종로는 유난히 상처가 많은 세상이다.

우악스러운 태도로 세상을 향해 끼를 떨며 게이들은 누구나 자신에겐 남모를 어려움이 많았음을 간증한다. 간증과 푸념이 게이의 전유물은 물론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주된 정조이다. 아니, 그런 듯하다. 태동기에 있는 퀴어적 표현수단 – 글, 소설, 시, 영화 등 – 은 결국 추억, 아픔, 고난을 조명한다. 그리고 심지어 그 고난에 극복 또한 예정되어 있는지조차, 잘 모르겠다. 적어도 ‘기적’ 정도로는 예정된 고난의 극복이라 하기엔 심히 곤란하다.


일종의 피해의식 또한 존재하는 것 같다. 나는 게이라서, 성소수자라서 이토록 내 삶이 힘들고 팍팍한 것이라는 종류의 피해의식 말이다. 성소수자라는 말조차 움츠러든 것처럼 들린다. 퀴어라는 말을 써 보자. 그러나 말은 말일 뿐이다. 그 말을 신성불가침으로 싸고 돌며, 맥락의 결락을 지적하면 소수자 집단 내 x맨 정도로 취급 받는 현상은 매우 흥미롭다. ‘나는 비판 받을 정도로 강하지 않다’는 것이 결론이라면, 공격은 최선의 방어이므로 이런 전략을 택한 것을 탓할 마음은 없다. 하지만 그것으로 좋은가?


내가 게이라는 사실이 나를 얼마나 결정한 것인가? 어쩌면 나는 우연히 게이일 뿐이고 이성애자로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내가 만나는 사람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는 것만 빼면) 지금의 나와 동일한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는 비현실적이다. 나는 게이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성애 고착적 관념에, 몇 가지 논리적 맹점에 민감하다. 이는 나를 너무도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런데 그건 전적으로 내가 게이이기 때문일까? 즉, 다시 말하자면, 나는 게이이다, 그러므로 존재한다(Gay, therefore I am)라고 말할 수 있는가?


숙연한 존재론적 질문으로 보이지만, 술에 취해 종로 바닥을 굴러다니며, 혹은 이태원 클럽에서 흐느적거리다가 한 질문이 바로 이것이다. 나의 성지향을 어디까지 탓할 수 있을까? 우린 게이라서 힘들다는 그 푸념을 어디까지를 인정해야 하나, 이는 막막하지만 중요한 질문이다. 결국은 내가 해명하고자 하는 질문은 이것으로 끝나지는 않을지라도, 여기에서 시작한다.




What comes up when you google "Manifesto"



A Gay Manifesto(게이의 정치적 선언)이라는 거창한 글을 쓰고자 무익한 시도를 벌이면서, 제목에 짓눌리지도 않고 다른 이들을 짓누르지도 않는 글을 어떻게 쓰고야 말 것인가 고민한 나의 결론은 유보적이기 그지 없다. 이 글과 앞으로 올라올 글은, 세 가지 중에서 한 가지에 대한 글이다.



첫째, 당연하게도 정치적 견지에서 관용적이지 못한 분위기를 배격한다. 전통적인 정체성-정치(Identity-Politic)의 영역에 포섭될 수 있는 글이다. 나는 전형적인 인권 투사의 분위기를 내뿜을 생각은 전혀 없지만, 본질이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내 감에 이는 대한민국이 글감을 제공할 영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에 관해 쓰겠노라고 감히 약속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 앞으로 이런 글을 쓸 일이 드물지는 않을 것이다.


둘째, 우리 내부의 합의점을 찾기 위한 일종의 교통정리를 시도한다. 게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생각을 공유한다는 것은 얼마나 비현실적인 가정인가? 다양한 사람들의 사회적 연대라는 정치성의 본질을 일구기 위해 우리가 이루어야 하는 화해는 얼마나 많은가? 가령 동성애자로 산다는 것 자체가 싸움이었던 시절과, 사회도 분위기도 말랑말랑해진 이후의 기억만을 가진 게이들은 어떻게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가? 끼를 정체화한 게이와 자신 또한 끼를 무서워하는 게이는 어떠한가? 더 나아가, 게이 사회에 존재하는 소득/학력 격차는 우리 사회의 격차 이상으로 유의미한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시도하는 것은, 예측하건대 재미있는 결론을 불러올 것이다.


셋째, 전략과 전술에 관하여도, 결국은 논해야만 한다. 이성애자들에게 혹은 사회에 어떻게 우리의 진실을 제시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이다. 나의 세계관은 포비아의 설득 아닌 배제를 전제로 하지만, 최소한의 배제만이 정당화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동시에 전략과 전술을 빙자한 우리 안의 퇴행성을 배격하기 위한 글이기도 할 것이다. 이를테면 그들이 알아듣지 못하기에, 우리가 숨겨야 할 부분이 있다는 류의 주장들.




이 글은 낭독을 위한 선언문이 아니다. 혹은 글로써 자기완결적인 권위적 텍스트를 구성하지도 않을 것이다. 새로운 주장과 이론을 통해 퀴어-정치성의 저변을 확대하고자 하는 야심은 없다. 어떻게 보면 새로운 이야기란 존재하지 않는 기존 논의의 변용과 부분확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바라는 것은 이 이야기를 지금 이 시점, 이 공간에 다시 변주하여 어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형태의 영향일지는, 바라는 바가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아직까지는 나에게도 확실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결론: 세상은 공허하다. 그리고 무엇도 확실하지 않다.


안녕하세요 본격 불교퀴어철학자 MECO입니다... 죄송합니다. 이게 어딜 봐서 옆집 게이 형이 할 만한 이야긴지는 저도 잘...


다음 글에서 뵈어요. 그 때까지 모두들 평안하시길. 그리고 부디 다음 글로 뵐 수 있길. :)


Posted by ME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