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기에 앞서 저축은행 영업정지로 인해 금전적, 정신적 피해를 입으신 서민게이레즈 및 성소수자 여러분께 삼삼한 위로를 전합니다.)
여러분의 돈은 오늘도 안녕하십니까?
커피 향기가 아주 쥑이는 커피전문점에서 여러분의 이마주름뿐만 아니라 뇌주름까지 펴주겠다고 덤벼드는 진상손님을 맞아가며 일을 하든, 졸기만 하는 애물단지 과외돌이를 공부의 길로 이끌어 사람 만들어보겠다고 노력을 했든 여러분께선 오늘도 다양한 일을 통해 돈을 버셨을 겁니다. 젊은이들 사이에선 심지어 듣도 보도 못한 시체닦이 아르바이트의 벌이가 짭짤하다는 이야기까지 돌고 있다니 말다했죠. 이처럼 세상에는 제가 알지 못하는, 다양한 돈벌이방법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번 돈을 관리하는 방법 또한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여러분께선 그렇게 피땀 흘려 번 돈을 어떻게 관리하십니까? 이상하게도 돈을 벌기 위해서 여러분이 들이는 노력의 엄청난 양에 비하면 돈을 관리하는 데 들이는 노력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귀차니즘이 목까지 차오를 땐 그냥 은행 입출금계좌에 그대로 쌓아놓기 일쑤고, 그나마 어릴 때 소위 싱크빅 가지고 놀아봤다 하시는 분은 이율 좀 높은 예적금상품을 찾으며 발품을 팔죠. 하지만 그래봤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은행’주위를 맴돌고 있습니다. 마치 지구가 태양 주위를 벗어나지 못하듯이, 은행 주위를 벗어나지 못하는거죠.
돈을 관리하는 수단으로 은행이 절대적으로 부적절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집중적으로 받은 ‘은행몰입식 교육’이 여러분의 금융지능을 단순하게 만들고, 때로는 이상한 길로 이끌기도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기업은행은 기업만 이용하는 은행이 아니고 대한민국 여러분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은행이라고 친절하게 알려주시는 6,70대의 아이돌 송해 할아버지, TV에서 많이 보시지 않았나요? 기업은행은 기업만 이용하는 은행이 아니라고 하네요. 물론 :) 농협이 농업종사자의 금융기관이 아니듯 기업은행도 기업들만 드나드는 은행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혹시
여러분께선 저축은행은 어떤 은행인지는 알고 계신가요? 저축하는 사람들을 위한 은행
이제 슬슬 이하늘, 김재박이 시도때도 없이 나타나 현X스위스라고 외치는 광고를 떠올리실 시점이 되었나 봅니다. 그보단 더 아시는 분은 국민은행이나 신한은행 같은 곳보다는 예적금 금리 더 주는 은행 정도로 생각하지 않으실까 싶기도 하네요. 사실 왠지 증권, 종합금융이라는 상호는 어색하고 낯선데 저축은행은 그동안 받아온 ‘은행몰입식 교육’에 어긋나지도 않고 제법 친숙합니다. 게다가 금리도 더 쳐주겠다고 광고까지 하지 않나요? 자연스럽게 여러분은 푼돈이라도 더 벌어보겠다고 저축은행으로 발걸음을 옮기기게 될 겁니다. 하지만, 제발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하시기 전에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제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최근...은 아니고 시간이 꽤 흘렀지만 2011년 말에 이어 2012년 중순에 내려진 저축은행 영업정지명령으로 꽤 시끄러웠던 적이 있죠. 신문을 비롯한 각종 언론사에서도 그쯤 되어서야 저축은행들의 회계장부 조작이 있었다든지 특정 대주주에게 대출한도를 초과해서 불법대출을 해줬다든지 차명대출이 이뤄졌다는 소식을 처음 알았다는 듯이 대서특필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축은행이 부동산시장의 기나긴 침체 때문에 프로젝트 파이낸싱에 대규모로 투자를 했다가 돈을 홀라당 까먹었다는 소식도 쉬쉬하다가 구조조정이 시작된 즈음에야 흘려보내기 시작했죠. 근데 속어로 “싹수가 노랗다”는 말처럼 저축은행 또한 그 싹수가 시작부터 노오랬습니다.
일수(日收)와 계가 바로 그 노오란 싹수입니다.
일수란, 채무자가 채권자인 일수업자들에게 원금과 이자를 하루씩 쪼개서 갚아나가는 대출방식입니다. 신용불량자나 영세한 자영업자들, 그리고 사회초년생들은 담보로 할 자산도 없는 경우가 다반사이며 상환능력 또한 입증할 수 없기 때문에 은행 등의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통해 돈을 빌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옛날에는 더 그랬구요. 지금은 은행에서 돈을 못 빌리면 제2금융권인 저축은행으로 가거나 1566-친구친구로 노래를 부르는 대부업체로 향하지 않습니까? 옛날엔 일수업자에게로 갔습니다.
조상들의 전통과 얼이 담긴 계는 많이 들어보셨죠? 그놈의 상부상조 정신을 강조한 나머지 아름다운 공동체 정신으로 끼리끼리 계를 결성하여 계주에게 일정금액을 납입하고 순번이나 추첨을 통하여 일정금액을 받아가는 계^^말입니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계주가 곗돈을 가지고 잠적하는 사건이 빈번히 발생하여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사실상 대출의 성격을 띠는 면도 없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 일제강점기에 <조선무진업령>을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후 계는 법제화되어 무진회사(고리대금업자)로서 경제적 영역에서 활동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네요.
그리고 시간이 흘러 해방도 되고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전후 복구를 위해 자금이 부족한 상태에서 투자수요의 급증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정부는 이에 팽창적 통화정책을 전개했는데 그러자 폭발적인 인플레이션이 발생했죠. 결국 제도권 금융회사의 자금공급은 이를 뒷받침하기 불충분했고 기업들은 사업을 하기 위해 높은 이율의 사채까지 끌어다쓰면서 재무구조가 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제아무리 성장률이 높으면 뭐합니까. 고리대금업자가 그 이윤을 가져가는데. 한 마디로 부실기업으로 전락하는 헬게이트가 열린 거죠. 부실기업 주제에 어디서 돈을 빌리겠습니까. 다시 고리사채업자에게 쪼르르 달려가는 수밖에 없겠죠. 이런 사례가 급증하자 전경련이 일못하겠다고 징징징댔고, 정부는 1972년 긴급명령권을 발동하여 8.3사채동결조치를 내렸습니다.
정부는 그 후 사채를 양성화하려는 목적에서 단기금융업법을 제정하여 기업 사금융회사를 제도권으로 편입하여 단자회사를 만들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서민 사금융회사도 재정비해서 상호신용금고를 만들었죠. 근데 그 상호신용금고의 전신이 일수놀이를 하던 계모임의 업그레이드 버전, 무진회사입니다. 이후 단자회사는 은행으로 전환되거나(하나금융회사, 신한금융회사 등) 혹은 종금사로 전환되어 IMF시기의 주범으로 지목되었구요. 상호신용금고는 IMF시기를 거치면서 부실화되고 주인이 바뀌거나 폐업하는 사례가 속출, 1997년 전국적으로 231개가 있던 상호신용금고는 2001년에는 121개로 줄어드는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줍니다.
상호신용금고는 이렇게 앉아서 망하는 줄만 알았는데, 2002년에 금고업 활성화를 이유로 상호저축은행으로 명칭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저축은행의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은행이라고 하니까 다 같은 은행인 줄 알고, 높은 이자까지 덤으로 준다고 써붙이니까 사람들이 장롱 안에 모셔두던 예금도 가져다가 맡기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저 이름만 바꿨을 뿐인데... 대체 왜?
더군다나 정부가 예금자보호한도를 2000만원에서 5000만원까지 늘려주는 은혜를 베풀어 제1금융권과 동일하게 하시니 진짜 ‘은행’과 다를 바가 있겠습니까.
분명히 알아둘 건, 상호저축은행은 동네일수나 무진업을 하는, 무늬만 은행인 금융기관이라는 겁니다. 국민은행도, 신한은행도, 하나금융지주도 모두 똑같이 무진업에서 출발한 회사지만, 상호저축은행은 비교조차도 할 수 없는 질이 훨씬 떨어지는 회사라구요. 은행이라고 다 같은 은행이 아니라고, 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최근 일련의 사고가 터지고 나니까 저축은행 명칭을 변경해야 한다고 말하기 시작하는 기사가 또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금융당국이 2002년 상호저축은행으로 명칭을 변경해줄 때 몰랐을까요? 알면서도 망해가는 상호신용금고를 살리기 위해서 그런 조치를 취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도 소홀히 하다가 2011년, 2012년 이런 파국을 맞이한 게 아닐런지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가네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또한 이번 사태의 책임을 분명히 져야 할 것 같은데 아직 별다른 소식이 들리지 않는 걸로 봐선... 이것도 그냥 지나가리라?
왜 그런데 어떤 분들은 뭘 믿고 저축은행에 피땀흘려 번 돈을 죽자사자 가져다 맡기고, 자금보호도 안되는 후순위채까지 사는 걸까요? 돈 앞에선 며느리도 아내도 못 믿는 게 사람이라던데...그런 '용감한' 행동의 배경에는 저축은행의 역사를 모르는 무지도 어디엔가 있겠지만, 재테크가 숫자 몇 개에 달려있는 양 호들갑떠는 나쁜 습관이 몸에 배어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1금융권의 수신예금금리가 많아야 4%였던 그 상황에서 이자율 7%를 넘게 제공하는 저축은행의 상품은 분명 매력적인 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보다 안정적인 재테크수단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벌충할 수 있는데도 그런 노력을 하기는커녕 편하게 앉아서 돈을 얻으려 하는 사람이 많지요. 고작 얼마를 더 벌자고 위험한 곳에 돈을 넣는지 알고 싶지 않으신가요? 이해를 돕기 위해 구체적인 숫자들로 예시를 들어드리겠습니다.
수신금리가 연4%인 수시입출금 상품에 100만원을 예금할 경우엔 이자소득제를 제외하고 대략 34,000원이 이자로 들어옵니다. 월마다 2,833원입니다. 이율이 연7%인 저축은행의 금융상품에 100만원을 예치하면 59,500원의 이자를 얻을 수 있겠네요. 월 4,958원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아직 카드에 대해선 설명을 해드리지 않았지만, 카드를 사용할 때 영화할인이나 패밀리레스토랑 할인, 놀이동산 할인 등의 소비지향형 할인을 제외하고 사용하는 금액 대비 3~5%를 할인받을 수 있다면 체리피커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혜택을 얻기 위해서 요구되는 실적이 20만원이라고 할 때 6,000원에서 10,000원을 절약할 수 있는거죠. 이는 연7%이자를 제공하는 저축은행 상품 기준으로 120~200만원을 한 달 동안 예치해야 얻을 수 있는 금액입니다.
하지만 그 금액을 피킹하자고 한 달에 쓰지 않아도 되는 금액 5만원을 써야 한다면 그 5만원은 연7%대의 저축은행 상품에 1,003만원을 한 달 동안 예치해야 얻을 수 있는 금액입니다. 즉 아무리 높은 금리의 저축은행 상품을 찾아다녀도, 제대로 하는 카드피킹만 못하고, 그런 카드피킹마저도 절약에 당해내지를 못합니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가장 훌륭한 재테크수단인 절약을 내버려두고, 조그마한 숫자에 이토록 목을 매는 걸까요? 미시경제학에서 잘 알려진 포트폴리오 이론에 따르면 기대수익률과 부담해야 하는 위험부담률은 비례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아무리 예금보험을 감안하더라도 저축은행의 금융상품에 가입하는 행위는 예상되는 기대수익률에 따른 위험부담률의 적정선을 넘어가는 위험하면서도 비효율적인 선택입니다. 적어도 정치인 테마주나 선물, 옵션은 기대수익률이라도 높은데 저축은행은 내세울 것조차 없습니다.
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로 부각되는 이러한 모습들은 되려 숫자에 집착하다보니 정작 재테크의 중요한 본질을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앞서 올린 글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생각하는 재태크의 본질은 성소수자에 국한하지 않고 우리 모두가 ‘회색빌딩숲’으로 대표되는 차디찬 현실 속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웰빙에 있습니다. 얼마 되지도 않는 금리 차이에 집착한 나머지, 안전하지 않은 선택지에 돈을 몰빵하는 행위가 과연 여러분의 웰빙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것만큼 저축은행 영업정지가 초래한 고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진은 없을 겁니다. 생업을 팽겨치면서까지 굳게 내려진 셔터 바깥으로 달려온 그들의 고통스러운 심정은 아직 겪어보지 않은 저로선 알 수 없는 그 무엇이고, 솔직히 앞으로 몰랐으면 좋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잃어버리고만 것들, 즉 피땀어린 돈과 시간, 정신적 스트레스는 기대했던 수익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사실을 짐작해내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우리 모두가 이르고자 하는 웰빙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요인들일 겁니다.
부끄럽게도 앞으로 제가 쓰고, 써야할 글들은 이보다 더 자그마한 이익을 다투는 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작은 금액의 이익만이 있는, 그만큼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알아야만 필요가 있는 정보가 아닐 가능성은 더더욱 높습니다. 아직까지 우리에겐 아직도 채워지지 않은 공백이 많이 남아있으며 그 공백을 채우는 데 시간을 들이는 편이 웰빙에 이르는 데 더 빠른 지름길일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부족하디 부족한 제 글을 통해서 그동안 놓쳐왔거나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들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맞이하고, 이를 통해서 여러분들이 웰빙에 이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나마 글 쓰는 목적을 달성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다시 강조드리지만, 여러분 모두 (부자 되셔서) 행복하게 사세요.
-stress.surplus로 가득 찬 삶을 살아가는 stress.surplus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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