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CO


Disclaimer

Gay Manifesto와는 다르다! Manifesto와는! (요즘 그런 글 쓸 힘도 없고 정신도 없음)


ask.fm을 돌리다가, 꽤 의미 있는 질문이 들어왔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의미보다는 흥미로운 질문이겠네요. 커밍아웃은 하였느냐. 네 했습니다. 하고 한 마디를 쳐 넣을 수도 있었겠지만, 조금 복잡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아니, 그렇게 복잡한 이야기는 아니에요. 그냥 커밍아웃은 무엇인가, 누구에게 하는가, 어떻게 하는가, 뭐 이런 거에 대한 경험적인 이야기를 조금.





Comingout이란 뭔가? C*m 말고, 그거랑 상관 없이, 벽장(closet)을 상정한 개념입니다. 거기서 나온다는 의미. 즉, 성적 정체성을 숨기고 있었던 외피를 벗어나 자신을 알린다는 뜻이지요. 필연적으로 성소수자의 자아 실현과 밀접한 연관을 가집니다.


커밍아웃을 ‘했다’는 과거형 동사가 과연 가능한 것일까요? 이성애가 디폴트 상태로 규정되어 있는(이성애정상적Heteronormative) 사회에서 성정체성은 말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이성애자인 것으로 고착되어 있기 마련이지요. 설령 전지구적으로 까발려진 동성애자라 하더라도, 그러니까 대한민국에서 홍석천 씨라 하더라도 커밍아웃은 계속적인 상태에 가까울 겁니다. 이효리가 누군지 몰랐다던 안철수 씨 같은 사람도 있는 거니까요.




그래서 저에게 묻는다면, 네. 커밍아웃 해본 적은 있습니다. 어디까지 했냐고 물으신다면 주변의 좋은 친구들 예닐곱에게 했습니다. 제가 게이인 줄 아는 스트레잇이 얼마나 되냐고 물으신다면, 역시 한 예닐곱쯤 됩니다. 그들과 다 연락하고 친하냐고요? 소위 커밍아웃이 ‘성공’하지 않은 경우도 한 번 있었습니다. 그렇게 공포에 떨진 않았고요.


이성애자 남자에게도 커밍아웃을 해 본 적 있습니다. 그런데 또 할 마음은 없습니다. 그걸 말하는 순간 바보 같은 게 매력이었던 남자들이 너무 약고 똑똑해지더라고요. 정치적 올바름과는 상관 없이 제가 편하기 위한 선택입니다. 가령 제 앞에서 옷 벗는 것을 꺼리는데 그걸 꺼려선 안 된다는 생각까지 하는 이성애자 남자의 곤혹스러움이 읽히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짜증이 납니다. 멍청한 게 매력인 남자들에게 똑똑해질 기회를 주면 안 됩니다. (Oops, I’m not PC again!)




부모님에게 커밍아웃 할 거냐는 질문도 많이 듣습니다. 제가 무슨 커밍아웃 마스터 이런 것도 아닌데 이런 질문을 꽤 들어본 것 보면 적어도 게이들에게는 의미심장한 질문인 듯합니다. 얼마 전 만난 **도 출신 형의 경우 (지역중립적Prinvince-blind 표현을 위해 블라인드 처리합니다) 가족이 워낙 보수적이다 보니 애초에 말할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는 걸 보니, 제 주변 게이들은 꽤 편향된 표본인지도 모릅니다.


하긴, 어떤 게이들은 자기검열을 하기도 하더군요. “부모 가슴에 못을 박아서야 쓰겠냐”는 호모포비아들의 논리를 그대로 가지고 와서 내재화한 정서적 예속 상태를 보기도 합니다. 거의 상대를 안 하긴 하지만, 1. 결혼할 거 아니라면 못 박는 거야 엇비슷할 거야. 2. 근데 왜 그게 부모 가슴에 못 박는 건데? 3. 못 박는 거라도, 굳이 내 잘못이냐 우리 부모님 잘못이냐를 따지자면 그래도 부모 잘못이 좀 더 크지 않을까… 정도의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동의를 받지는 못하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부모님께는 결국 말할 생각입니다. 취업 하고, 제가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했지만(이거 상당히 중요합니다. 부모님이 엄청 쎄거든요…) 우리 부모님이 퇴직하기 전, 즉 경제적으로 저에게 의존하기 전에 말씀 드리는 게 지금의 목표입니다. 결국은 부모님이 저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게 될 수 밖에 없는 구도이므로 경제적 원인에 기인한 인낙을 받아낼 수도 있겠지만, 그 전에 대등하게 이해 받을 기회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는 정도의 나이브한 동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지 않기 위해 제가 더 공부하고, 더 강해져야겠지요.




대한민국 기준으로 대가족인 편인데, 다른 형제 자매들에겐 오히려 말하기가 좀 힘듭니다. 여자 형제가 없는 탓도 크고, 형제들은 이해해줘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없기도 하고, 우리 집에서 제가 제일 진보적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라고 해봤자 MECO는 자유주의 중도 우파 거함거포주의자 육식 게이입니다) 오히려 남자 형제들이 득시글하다보니 이야기하긴 쉬운 편인 듯합니다. 여차하면 나 하나 없어도 부모님이 대를 잇는 것에 집착할 일도 없고, 나에게 실망을 해도 다른 형제를 보게 될 테니까요. 다만 보수적이기 그지 없는 형제들에게 폭풍 비난의 화살을 맞으면 꽤나 상처받을 것 같아, 오히려 부모님보다 후순위로 잡고 있습니다, 만 부모님께 이야기 하면 필연적으로 알게 될 거 같긴 합니다.






가장 처음 커밍아웃이 언제냐고 물어보셨죠. 첫 커밍아웃은 꽤나 싱거웠습니다. 그냥저냥 데면데면한 사람과 친구에 친구라며 만나다가 종로에서 마주쳤고,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 남자친구가 든든한 외피로 작용하고 있었으니 더더욱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그 뒤 제가 주체적으로 한 커밍아웃 중엔 기억에 남는 게 하나 있어요. 그 친구가 이 글을 볼 수도 있겠는데 양해를 구하진 않았군요. 하지만 충분히 양해해주리라 믿어요.




당시 저는 학부 졸업 전에 어떤 비영리단체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 단체의 일을 좀 심각하게 떠맡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졸업학기에 과중한 업무부담과 감정노동을 견디지 못한 나머지 1주일 정도 잠수를 탄 적도 있어요. 그것도 11월 중순에. 끝날 때가 다 되어서. (그 때의 경험은 지금의 강철 멘탈 기갈녀 MECO를 만드는 데에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 잠수를 타고 돌아와서, 이제 밀린 일 수습 좀 하고 후계구도를 만들기 위해 이런 저런 노력을 하고 있었는데 뭐 그렇잖아요. 딱히 이 일을 한다고 돈을 주는 것도 아니니까 다들 직책을 맡기 곤혹스러워 하는 거. 그래서 지친 멘탈을 수습할 새도 없이 매일 술자리를 돌리면서 대면 설득을 시도하는 나날이 계속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삐지기도 하고, 미안한 짓도 많이 하고. 뭐 그런 나날들.


제가 다음 대 후계구도를 떠맡기려고 점찍어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여자였죠. (결국 만들고 보니 여초 후계구도가 만들어져 매우 당황했습니다. 왜냐하면, MECO는 전임 여초 권력으로부터 권력을 찬탈한 찬탈자였기 때문에. 역시 퀴어의 삶은 투쟁적이에요. 그리고 게이와 이성애자 기갈녀는 친하기 힘듭니...) 그녀와 새벽 여섯 시까지 술을 마시고, 당시에 머물고 있었던 기숙사에 돌아왔는데,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올 것이 왔구나, 생각하고 심호흡을 하고 (술에 취했던 주제에!) 전화를 받았죠.


근데 눈치가 이상한 겁니다. 아니, 후계구도를 떠맡겠다는 이야긴 없고 왠지 이야기가 빙빙 돕니다. 취했기 때문에 이게 뭔가 좀 이상하다는 눈치를 너무 늦게 차려서, 전화를 끊을 타이밍을 놓쳐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질렀죠. "뭐 너도 내가 너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알지 않느냐. 네가 거기에 부응할 수 있다면 뭐, 네가 바라는 후계구도도 못 떠맡을 건 없…."



아니, 이 여자야. 내가 무슨 매매혼 되는 왕녀야?!





이런 거라던가





혹은 이런 거나




이런 거?!




충분히 이성적인 상태였다면 적당히 잘 타일러서 그런 건 후계구도와는 별개의 문제고, 많이 취한 것 같으니 자러 가라고 잘 다독여주었겠지만, 감정노동에 지쳐 있었던 저는 거기서 그만 폭발을 해버리고 만 겁니다. 그리고 그녀와 저는 잘 아는 사이였기 때문에 제가 그렇게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자기 의사를 꽤나 명확히 표현했어요.


그래서 저도 행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새벽 여섯 시의 기숙사에서도 가장 사람이 오지 않을 곳으로 가서, 주변을 살피고, 심호흡을 합니다.


그리고 전화로 질렀죠.


“어, 근데 미안. 난 게이다.”


!@#$%^&*(*&^%$#$@#$%^&^%$#!!!!!!!


말해놓고 보니 그 말이 그렇게 오글거리는 말인 줄 몰랐습니다. 정말이에요….


그녀는 기가 차다는 듯이 “…정말?”하고 물었고, 제가 거기서 뭐라 대답할 수 있겠어요…. 그냥 넙죽 엎드린 목소리로 네… 하곤 자러 가라고 다독여서 보냈죠. 들어와서 씻고 깊게 잘 잤습니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카카오톡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가 난무하고 있더군요. 둘 다 하이킥을 좀 하면서, 오그라든 손발을 펴면서, 뭐 그렇게 대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1주일 뒤, 그녀는 다음 대 후계구도를 떠맡겠다고 선언했지요. 요캇타 요캇타.


이걸로 끝난 줄 아셨겠지요?





그녀와 저는 계속 긴밀한 카톡을 하고 있었고, 업무뿐만 아니라 업무 외 이야기도 많이 했습니다. 즉, 그녀는 소위 말하는 faghag가 되어 저의 지지리도 찌질한 게이 연애 이야기 같은 걸 들었던 게지요. 제가 막 만나기 시작한 우리 학교 게이 이야기 같은 것들. 그러다 어느 날 그녀가 뜬금 없이 제 신경을 건드리는 말을 합니다. 저 때매 혼란스럽고 짜증난다는 거에요. 전 처음에 그녀가 제 커밍아웃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줄 알았죠. 상처 덜 주고 거절하기 위해 게이인 척 한다고 생각해?! 라는, 꽤나 명확한 분노에 그녀는 즉각 해명했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나도 그건 거 같다고.”



… 뭐?!


고백하고 나서 얼마 안 되어 그녀는 저에게 마주 커밍아웃을 합니다. 나에게도 이런 시티 백일장급, 아니 그 이상으로, 퀴어문학상을 받을 일이. 그녀는 여성 동성애자 커뮤니티인 M모 넷에 가입하여 이런 저런 사람을 만나보기 시작합니다. 그 와중에 후계구도를 끈끈히 만들기 위한 술자리가 몇 번 있었고, 한창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그녀는 술을 먹고 몇 번 죽었고, 저는 그녀가 헛소리라도 할까봐 그녀 주변을 지키느라고 집에 가지도 못하고 재미도 없는 그 술자리를 대여섯 시까지 지키는 일도 있었지요. 심지어 다음 날 M모 넷에서 귀요미를 만나기로 했는데 폰을 잃어버렸다고, 누가 카톡을 보면 어떡하냐는 걱정에 저도 잠 못 이룬 밤도 있습니다. 세상에, 심지어 내 커밍아웃을 해놓고도 쿨쿨 잘 잤던 이 MECO가 말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연상의 애인을 만나 재미있게 잘 살고 있는 듯하고, MECO는 보시다시피… (씁쓸) 이러고 삽니다.






이야길 들어봐도 이런 커밍아웃은 잘 풀린 편인 듯합니다. 저는 꽤 커밍아웃 운이 좋은 편입니다. 이야기하자마자 여성주의적 상상력을 극한으로 발휘하여 그 동안 했던 발언을 되짚어 “MECO쨩, 미안해”라며 사과해주는 친구라던가. (그런데 그 친구는 필진 stress_surplus의 동기, 그리고 저희가 아는 가장 똑똑한 녀성)


모든 커밍아웃이 이렇게 낙관적으로 풀린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커밍아웃이란 이름 하에 반 아웃팅을 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고요. 잘 풀렸다고 생각했던 커밍아웃이 몰지각, 몰이해, 심지어는 추가적 아웃팅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지요.


아무리 조심한다 하더라도 커밍아웃에는 위험이 따릅니다. 커밍아웃이 주는 해방감과 고양감, 정서적 유대는 가져가면서 위험을 아예 없앨 수는 없어요. 어떠한 가능성도 미연에 차단하고 살고 싶다면 누구에게도 자신이 성소수자라는 걸 알리지 않고 사는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필연적으로 답답합니다. 결국은 납득할 수 있는 정도의 리스크를 감당하면서, 최대한 안전하게 소수의 사람들에게 털어놓고 사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봅니다.




다만 커밍아웃을 하고 싶지 않다 하더라도, 점점 대한민국 사회가 성소수자를 인지해가고 있다는 점은 지적하고 싶습니다. 당장 이번 주말 이태원 클럽에 갔는데, 남자들과의 성적 긴장감 없이 춤을 추고 싶어 3만원을 내고 입장한 아는 누나를 만난다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든지 있을 법한 일입니다. 누나는 ‘너 같이 생긴 애도 게이니?’라고 상처를 줄 수도 있고, 생각 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소문을 낼 수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내면서 스칠 때마다 심장 떨리게 만들 수도 있지요.


혹은 50 넘어서도 혼자 사는 남자/여자를 상정해봅시다. 우리 시대에는 그런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고, 그들 중 일정 수는 성소수자라는 것 또한 지금보다는 더 알려져 있을 겁니다. 그런 시대에는 그냥 내가 있는 그대로 사는 것 자체가 셀프 아웃팅이지 않을까요. 그리고 좀 억울할 겁니다. 난 이태원 길바닥 끼순이도, 걸커(걸어다니는 커밍아웃)도 아니었는데, 왜 이렇게 된 걸까.


결국 성정체성을 전혀 알리지 않고 살아간다는 일은 허구에 가까워질 겁니다. 적극적으로 속이기 위한 행동, 가령 결혼과 같은 것을 하지 않는 한. 위장결혼을 할 수 있다면 조금 편하긴 하겠죠. 하지만 역시 현실적으로, 쉽지 않죠. 기혼이반이 설 자리는 줄어들 겁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면서. 기혼자이면서 동성 애인을 사귀는 것과 같은 행동은 말할 것도 없겠죠. 이혼사유와 위자료 청구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분명 있을 겁니다.


성소수자 인권 운동이 ‘나댄다’며 싫어하는 성소수자들 또한 이 움직임을 분명하진 않을지라도 예감하고 있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토록 격렬한 반응이 나오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전에도 지적하였듯이, 아웃팅을 방지하는 것과 아웃팅의 낙폭을 줄이는 것 중에서 결국은 낙폭을 줄이는 것이 우선입니다. 낙폭을 줄이기 위해서는 그늘에서 필연적으로 나와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여전히 냉엄한 남들의 시선과 편견 속에서 조용히 숨어사느냐, 전향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들 속에서 그래도 좀 숨 쉬면서 사느냐의 차이입니다. 사람들을 전향적으로 만들기가 고통스럽고 힘들기 때문에 조용히 숨어사는 쪽을 선택하겠다 하더라도, 그건 점점 어려워져 갑니다. 그들을 바꾸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이 영영 모를 건 아니거든요.


그러니 쉽진 않을지라도, 커밍아웃을 조금 더 준비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Posted by ME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