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CO
참고하세요: Gay Manifesto #1.: 제국 이태원(帝國 梨泰院)
저는 지금 살짝 당황해 있습니다. 부분적으론 달콤한 오수 중에 깜짝 놀라 잠이 깨버린 것도 있고, 오늘 채터박스 총회가 있는데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기도 하거든요. 그리고 사실 이 글을 Homo Surplus에 올려야 하는지, 아니면 제 개인 블로그에 올려야 하는지 글을 거의 다 쓴 지금까지 결정을 하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총회에 제시간에 출석하려 한다면 상당히 서둘러야 하기 때문에 평소 즐겨 사용하는 완곡화법은 잠시 접어두도록 하겠습니다.
짜~파게티! 라는 트위터 유저에게 제가 Homo Surplus에 쓴 글, Gay Manifesto의 첫 번째 글인 ‘제국 이태원’이 어떤 맥락으로 “소비”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제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퀴어 트윗터들의 특정 행동양태를 에이즈포비아로 규정하고 그런 양태를 보이는 분들께 제 글 링크를 띄우며 읽고 공부나 하라고 일갈하고 계십니다) 이 분을 보시면 뭐가 그렇게 분노에 차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처음엔 호모포비아의 기믹(참고로, 기믹이라는 단어는 Gimmick이라고 씁니다. 혹시 짜~파게티! 님께서는 이를 모르셨다면 이 기회에 알아두시길)으로 시작하였다가 본인이 스스로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게슈탈트 붕괴를 겪은 나머지 에이즈포비아들을 계도하는 신시대의 선지자로 커밍아웃 하고 납신 분인 걸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한 번 글을 띄운 이상 그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읽히는지는 제가 완전히 컨트롤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저 오독의 여지가 크다면 반성하고 다음 글에서 더 잘 하면 될 뿐이고, 혹은 그 오독이 정말로 심각하다면 다른 글로서 바로잡길 시도할 뿐입니다. 저는 여기서 이 두 번째 권리를 사용하려 합니다.
1. 게이 커뮤니티 내의 에이즈포비아를 다그치기 위한 요건으로서의 당사자성
에이즈포비아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제 글, ‘제국 이태원’은 그 중에서도 퀴어 커뮤니티 내의 비이성적인 대 에이즈 공포와 HIV감염인에 대한 포비아적 행보를 지적했습니다. 제가 ‘게이 여론’ – 그런 게 실존한다면 – 을 측정하는 지표로 사용하는 트위터에서 이는 인기 있는 관점이 아닙니다.
물론 저와 뜻이 같은 트윗터도 몇 분 계십니다. 그 분들 중에선 대한민국 동성애자 인권운동의 원로 분들도 계시고, ‘90년대를 콘돔 한 장으로 살아남은’ 분도 계시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현재 HIV/AIDS 인권운동의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계시지요.
‘제국 이태원’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그리고 제가 지금까지 써온 다른 글에서도 일관되게 관철해온 바와 같이 저는 게이 커뮤니티 내의 자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외부 세계의 게이 커뮤니티에 대한 공격으로 치환되는 것을 상당히 경계합니다. 자성을 요구하는 목소리 자체는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공격적 맥락을 최대한 덜어낸 근원 하에서 이루어지는 자성이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데이터와 현실을 직시하자는 목소리는 매우 자주, 포비아들의 무리한 주장에 연동되고는 하지요. “봐 봐, 니들 저렇잖아. 에휴 더러운 것들.” 하고 말이지요.
외견적으로 같은 내용의 주장이라 하더라도 “누가” 발화하느냐에 따라 그 맥락이 전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 긴 논증이 필요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회 전반의 에이즈포비아가 아닌, 게이 커뮤니티 내의 에이즈포비아에 대한 자성을 요구하는 목소리에서는 이 “누가”가 크리티컬한 요소란 점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특히나 지금까지 “남성 동성애자들이 항문성교를 하는 비율이 높으며, 항문성교는 HIV 전파에 취약한 형태의 성교다”라는 형태의 발화를 하고도 집중적인 포화를 맞는 대신 찬반의 논쟁을 벌였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남성 동성애자로서의 정체성을 밝히고 있었다는 점은 적어도 감정적으로 이 부분을 뒷받침해줄 겁니다.
그리고 저로선 드물게도, 이번만큼은 이성으로서 감정을 합리화해보고자 합니다. 게이 커뮤니티 내의 에이즈포비아는 커뮤니티 내의 노선투쟁일 겁니다. 부외자는 여기에 발언하기 전에 사회 전반의 에이즈포비아라는 ‘필터’를 통과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회 전반의 에이즈포비아라는 화두에서 아직까지 동성애자 문제는 감염인 문제와 연대중인 사안입니다. 한 집단을 탄압하기 위해 다른 집단을 사용하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지요. 설령 그 부외자가 “에, 너희 게이들, 그런 너네도 에이즈포비아로부턴 자유롭지 못하잖아?”라고 지적한다 하더라도, 대답은 이와 같이 나갈 뿐입니다. “그건 우리 안에서도 비판의 움직임이 있으니 넌 상관 마시고, 일단 너부터 에이즈포비아를 떨쳐 보세요.”
커뮤니티 내의 민감한 노선투쟁에 훈수 두기 전에 적반하장은 하지 말란 소리지요. “우리” “자성하자”에서 “우리”를 삭제하고 “자성해”라는 명령형을 취하는 어떤 오만이 참 그렇습니다. 그리고, 설령 그러한 지적을 하는 부외자 개인이 에이즈포비아가 아니라 하더라도, 사회 전반의 감염인 인권의 문제 전에 먼저 게이 커뮤니티 내의 감염인 차별 이야기를 굳이 꺼내든다는 것은 어떤 불순한 목적성을 보여줄 수밖에 없지요. “너희들 잘 걸렸다, 한 번 까여봐라.”라는, 그런 목적성이요. 아, 불순하진 않을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이런 사람이 감염인 인권에 진정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는 저는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 논쟁에서 짜~파게티! 님이 퀴어 커뮤니티 내의 에이즈포비아를 지적할 수 있는 적법한 당사자성, 즉, 우리와 같이 토론하며 노선을 노정하여가는 과정의 동료로서의 당사자성을 확보하였다고는 도저히 생각이 되지 않습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제가 앞에서 나열한 어떤 가능성 – 부외자로서 에이즈포비아이나 호모포비아이기도 하여, 호모포빅한 행동의 수단으로 에이즈를 이용한다는 – 에 대한 의심을 거두기 위한 충분한 이유가 없다는 뜻입니다. (물론, 글쓴이 MECO 자신이 그러한 당사자성을 확보하였는가에 대한 지적 또한, 물론 겸허히 수용합니다) 물론 트윗을 보다 보면 감은 옵니다. 누군가의 세컨 계정인가보다. 그리고 그 원래 트윗터는 아마도 이런 분위기에 환멸과 염증을 느낀 퀴어 커뮤니티, 혹은 이와 가까이에 있는 누군가 이겠구나. 하지만 그걸론 부족합니다. 왜냐고요? 항을 하나 갈고 시작해봅시다.
2. 실패한 드립의 회수책임에 대한 논변
사실 이건 노선투쟁 혹은 인권 운동의 차원에서 이야기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수사학의 관점에서 이야기되어야 할 주제이겠지요. 뭐, 둘 다 동시대가 낳은 대(大) 퀴어 주디스 버틀러의 영역이기는 하니까 한 번 친절하게 설명을 시도해봅시다.
짜~파게티! 님은 참으로 이해하기 곤란스럽습니다. 포비아 기믹을 계속 가져가셨다면 오히려 산파술의 새 영역을 구축하셨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나, 그 기믹이 무너지고 “게이 니들 다 에이즈포비아야 이 멍청이들아”를 택한 순간 그 분에게서 포비아 심증이 거두어지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포비아로서의 연속성을 이어 에이즈를 수단으로 호모포비아를 실현하고자 하는 분이라는 ‘오해’가 가능하지요. 설령 그 분의 트윗을 모두 읽어본다면 어떤 퀴어의 세컨 계정으로 포비아였다는 건 그 분이 말했다시피 ‘기믹’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지라도, 그 기믹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여전히 알 수가 없습니다.
(황현희의 말투로) 왜 저러는 걸까요? 대체 왜 저런 수단을 택하는 것이며, 그렇다면 그 분은 왜 호모포비아들 사이에 녹아들어가 트로이 목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애먼 게이들과 치고 박고 계신 걸까요? 미대 1학년생도 작품을 하나 할 때는 의도를 고민하고 크리틱에서 가루가 되도록 까이는데, 이 분의 트위터 행위예술에서 제가 읽어낼 수 없는 의도는 무엇인가? 뭐 이런 의문들이 있습니다.
… 역시 안 되겠네요. 누군가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일부러 ‘쎈’ 발화를 하였는데, 그 발화가 자신이 의도한 효과를 불러오지 않았을 때, 거기서 더 나아가 화자는 자신이 이런 의도를 가지고 발화를 하였는데 너희들이 멍청해서 이해하지 못하였다고 이중의 정신승리를 택하였을 때 그게 속되게 말해 ‘후지다’는 걸 설명하는 것은 결국은 미감의 영역 아니겠습니까. 이 트위터 행위예술은 실패한 것이라고 말할 때도 마찬가지고요.
한 가지 생각해볼 수 있는 수단으로는 해체적인 ‘전시’ 정도가 가능할 것 같으나, 여기서 굳이 짜~파게티! 님의 트윗을 전시하여 그 처절한 게슈탈트 붕괴의 과정을 추적하는 것은 처연하기도 할뿐더러 굳이 필요성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제가 그 과도한 귀여운 척 트윗에 (“~~욧!” “~~죠!!”) 꽤 큰 심적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뭐 첨언만 하도록 합시다.
아무튼 ‘쎈’ 발화가 의도한 효과를 점화하지 못하였을 때 ‘너희가 멍청하다’며 정신승리를 하는 것은 자유지만, 그 실패한 드립의 회수책임을 타인에게 돌리는 것은 분명한 문제가 있는 부분입니다. 제가 썼던 ‘제국 이태원’은 어디까지나 퀴어 당사자성을 가지고, 인권 운동의 장(field)로써의 퀴어 커뮤니티 내부에 대한 목소리였습니다. 퀴어 커뮤니티 내부에만 발화하는 수단이란 게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목소리가 있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오픈된 곳에 공개하였습니다만, 그럼에도 퀴어 당사자성을 확보하는 데 실패한 누군가가 보편적으로 언급하기엔 적절하지 않은 논변입니다. 지금 이렇게 되어버린 짜~파게티! 님이 불특정 다수의 게이들에게 던져주시며 “니들 공부 좀 하고 와라”는 식으로 ‘사용’하시기엔 그리 적절한 글이 아닌 듯합니다.
혹시 아직도 짜~파게티! 님은 인권 운동 맥락에서의 본인의 퀴어 당사자성이 부정되는 걸 이해하(고 싶)지 않/못하실까요? 본인이 링크 던져주신 글쓴이들이나
“최소한 태클 걸지 않을 줄 알았던” 분들이 왜 이러시는지 생각을 조금 해보시라는 말 밖엔. 저는 능력이 부족하여 이 정도에서 마무리를 지어볼까 합니다.
3. 다 같이 놀자 동네 한 바퀴
몇 가지 남았네요.
먼저, 전체 인구 대비 에이즈 감염인 비율인 0.00171%와 질 성교 감염률 0.1-1%, 혹은 항문성교 감염률 0.3-5%를 단순 곱하시던 분, 통계 그렇게 다루다간 교수님 이전에 대학원생 조교들에게 혼납니다. 섹스를 대한민국 인구 중에서 랜덤하게 추출해서 나온 한 명과 할 거 아니라면 저런 계산법은 도무지 근거가 없죠. 게이-MSM 인구 대비 감염인 비율을 구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남-녀나 나이대 별의 “변인통제” 정도는 해주세요. 그런다고 그 무의미한 비교에 의미가 생길 거 같진 않지만요. (대학 입학 후 수학 포기한 나를 통계 하게 만드는 퀴어 인권 운동신을 규탄한다!)
둘째, 기믹인 줄 알면 휘둘리지 마라고 하시는데, 기믹에 휘둘리는 게 아니라 기믹이 후져서 비웃는 거란 걸 왜 모르시는지… 네 왜 그러는지는 압니다. 기믹이 후지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지요. 선천적으로 유머감이 후진 것은 불치병이라곤 하지만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기보단, 만성적으로 관리 가능한 질병입니다. 불편하긴 하지만요. 인정하고, 나아지기 위해 수련을 해보세요. 아니 이건, 진심으로 저 또한 그렇기 때문에 동질감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셋째, 그럴 리는 없어 보입니다만, 노파심에 한 마디 드리자면 설령 짜~파게티! 님의 정체가 저와 평소 퀴어 커뮤니티 내의 에이즈포비아에 대해 우려를 공유하던 분으로 드러난다 하더라도 앞에 보였던 논변으로 인해 저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 디스플레이, 혹은 프레젠테이션은 “실패했습니다.” 백인 WASP 개그맨이 크리스 락의 개그를 하고 있는 듯한 불편함이라고 굳이 친절하게 비유해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제국 이태원’을 작성하고 서리 님으로부터 받았던 우려 중 하나는 퀴어 커뮤니티 내의 어떤 ‘불온성’을 쉽게 ‘에이즈포비아’로 네임콜링하는 것에 대한 것이었(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려가 사실로 드러났지만, 분명히 글을 써서 보완해주겠다고 하였던 서리 님이 글을 채무불이행 선언하셨으므로 서리 님을 규탄합니다. (이 문단에 한하여 농담입니다, 물론)
글이 생각보다 길어졌으므로 세 줄 요약.
1. 왜 본인의 센스가 후진 것을 남의 글로 갈음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제 글은 짜~파게티! 님의 태도와 양립 가능하지 않아 보입니다.
2. 친절하게 말씀드리자면 짜~파게티! 님이 까이는 이유 중 절반 이상은 트위터 게이들이 모두 에이즈포비아이기 때문이 아니라, 발화 방식이 후지기 때문입니다.
3. 그러니 세상에 대한 분노를 꺼트리시고 저까지 물귀신으로 끌고 들어가지 말아 주세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형태의 비판을 가장한 비난과 인신공격을 매우 즐깁니다만, 이 싸움에서 어떤 공익과 필요성도 찾지 못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 한 번 짜~파게티! 님의 헛소리에 대응한 것은 깨진 유리창 효과를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큰 건물에 하나 있는 깨진 유리창을 방치하면, 사람들이 유리창을 깨도 되는 줄 알고 다른 유리창도 깨먹고 말지요. 당황스럽게도 짜~파게티! 님의 헛소리에 제가 근거를 제공하는 모양새가 되어 –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음에도 – 그대로 고착되어버리는 것을 피하기 위해 굳이 긴 글로 답변합니다. 트위터에서라면 블락을 해버리면 되지만, 제 블로그 글이 링크하는 걸 막을 수 있는 기술적인 수단은 없거든요.
그러므로 이 글을 읽으신다면, 짜~파게티! 님께 제안합니다. 실패한 드립으로 정신승리 하시는 걸 막을 수야 없습니다만, 그 근거로 제 글을 다른 게이들에게 던져주시는 것은 자제해 주시길 바랍니다. (솔직히, 관심이 필요하신 거라도 A4 다섯 장 정도 드렸으면 이제 제 관심은 충분하잖아요) 그렇다면 저도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짜~파게티! 님과 같은 분은 없는 셈 치고 조용히 살겠습니다. 사실 오늘 저녁 채터박스 총회에서 굳이 깔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할 거에요, 정말로.
비아냥으로 점철된 이 글이 읽기 편하지 않으셨을 다른 독자분들께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리며 /
두 시간 정도 뒤에 시작되는 채터박스 정기총회를 매우 기대하며
MECO, of Team Chatterbox